만 이 개월하고 열흘 된 아가가 알려주는 행복의 비결
콩콩이는 잘 자요. 생후 70일 정도 된 아가치곤 잘 자요. 밤에는 대략 일고여덟 시간을 자는데 어제는 깨지 않고 아홉 시간을 푹 잤어요. 잘 때 소리를 치거나 허공에서 손짓 발짓을 해서 엄마 아빠가 깰 때가 있지만요. 그래도 이 정도면 아주 잘 자는 편이에요. 보통 백일이 지나야 아가들이 푹 잔데요. 그런데 콩콩이는 백일도 되지 않았았어요. 조리원에서 집으로 온 순간부터 잘 자요.
콩콩이는 잘 먹어요. 150ml 분유는 5분 내에 주파가 가능해요. 엄마는 콩콩이가 빨리 먹는 통에 걱정이 많아요. 엄마는 먹는 중간에 트림을 시키려고 노력하지만 콩콩이가 젖병을 내놓으라고 악을 쓰기에 그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어요. 콩콩이는 다행이라고 안도감을 내쉬어요. 가르쳐준 적 없는데 한숨을 쉬어요. 반면, 엄마 아빠는 걱정이 커져만 가요. 그래서 엄마 아빠는 다른 의미로 한숨을 쉬어요.
콩콩이가 빨리 먹는 이유는 자는 시간이 길어 공복시간 역시 함께 길어져서인 점도 있어요. 그러니까 잘 자서 배가 고픈 거고, 허기를 채우기 위해서 빨리 먹어요. 그리고 오래 자요. 그래서 빨리 배고파요. 일종의 악순환이라고 생각할 수는 있어요. 그런데 무슨 일이든지 side effect(부작용/부차적 효과)는 있는 법이에요. 콩콩이가 잘 자는 덕분에 엄마 아빠는 밤에 잘 자는 중이니까요.
콩콩이는 잘 싸요. 쉬아도 잘하고 응가도 잘 해요. 그러나 쉬아와 응가에 대한 감정적 반응은 상이해요. 쉬아는 빠른 시간 내에 냉각되므로 콩콩이는 불편해해요. 그러나 응가는 그렇지 않아요. 응가는 장시간 따뜻함을 유지하게 해 줘요. 그래서 콩콩이는 응가를 하면 미소를 지어요.
그날도 콩콩이는 응가를 했어요. 보통은 아랫도리만 뜨뜻한데 그날따라 허리까지 살포시 따뜻했어요. 옷에서도 온기가 느껴졌어요. 콩콩이는 배시시 웃었어요. 엄마 아빠는 몹시 당황한 표정이었어요. 아빠는 콩콩이의 기저귀를 벗기더니 옷도 벗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옷을 벗긴 채로 화장실로 직행했어요. 콩콩이는 추워서 악악 울었어요. 아빠는 콩콩이를 목욕시켰고 엄마는 응가가 묻은 옷을 빨았어요. 엄마 아빠는 한 숨을 푹 쉬었어요. 이내 콩콩이를 달래주려고 미소를 지었어요. 콩콩이는 150ml 보다 더 달라고 악을 써서 엄마 아빠는 10-20ml 더 주곤 했어요. 그 영향으로 응가가 기저귀 밖으로 넘친 거 같아요.
콩콩이는 잘 놀아요. 최근에 엄마 아빠는 아기 체육관이라는 근사한 물건을 단 돈 만원에 구매했어요. 아기 체육관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딸랑이가 걸려있고요. 발로 구르면 음악이 연주되는 근사한 장난감이었어요. 콩콩이는 흥분을 감출 수 없었어요. 신세계였어요.
콩콩이가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아기 체육관을 했는지 몰라요. 엄마 아빠 말로는 그렇게 콩콩이가 집중해서 놀이를 하는 걸 처음 보았다고 해요. 여전히 아기체육관을 할 때마다 콩콩이는 기분이 짜릿한가 봐요. 손과 발의 신경을 곤두서게 만들고 시각과 청각의 자극이 주어지는 놀이라서 그런가 봐요.
아리스토텔레스라는 사람이 "니코마코스 윤리학"에서 행복이 무엇인지 말했대요. 인간은 행복해지려면 "인간다움"을 추구해야 하며 그 인간다움에 바탕을 두어야 행복에 다다를 수 있다고 그랬대요. 아빠 말로는 아리스토텔레스는 우리가 정의하는 행복, happiness를 얘기한 적이 없다고 해요. 뭐라더라, eudaimonia를 잘못 번역한 거래요.
모르겠고, 여하튼 심각한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자꾸 행복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려고 들어요. 인간의 목표 같은 거창한 논의를 해요. 그런데 행복은 그렇게 목표하는 게 아닌 것 같아요. 단지 경험하면 될 일을 말이죠.
소확행이라는 말이 오래전부터 유행이라고 해요.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하던가요. 아빠도 심리 상담 중에 꼭 물어본대요. 잘 자는지, 잘 먹는지, 잘 싸는지, 잘 노는지를. 그중 한 가지만 빠져도 정신 건강에 안 좋대요. 그러고 보면 굳이 "소소하지만 확실한"이라는 형용사를 덧붙이지 않아도, 네 가지를 잘하면 행복은 찾아오기 마련인가 봐요.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고, 잘 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