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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랑꾼 Jan 12. 2022

알아차림, 네가 보는 너는 알고 있다.

나는 매일 나를 본다.


정말 속없는 소리를 해보겠다.

과연 유전학적으로 옳다고 해도 나에겐 핑계대기라고 손가락질을 해주길 바란다.


'엄마가 우울하면 아이도 우울하다?'

감성지수는 닮는다고 한다. 툭하면 죽고 싶다거나 살고 싶지 않다거나 아니면 글쎄 무기력한 대답을 하곤 한다. 물론? 속으로. 이건 우리 큰언니도 마찬가지인데 젊었던 엄마의 입버릇이나 행동 영향으로 더 짙게 관계 맺어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나는 요가를 가르친다.




'왜 요가를 하니?'

수업이 한참 바삐 있을 때 생활 패턴 속에서 나침반 잃은 사람처럼 둥둥 넘실 넘실 수업을 말하고 수련하며 지냈다. 언제나 열정과 비전이 있을 수는 없으니까. 이 또한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래, 지금 나는 <나에게 던질 질문>을 찾는 중이다라고. 


"나도 내 마음을 모르겠어."

누가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하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누군가가 열정적으로 욕망을 실현하고 계획을 세우고 비판하고 비관하고 이런 걸 보면서 '와,  저것도 열정이다. 난 저 사람이 참 부럽네.' 


질문은 떠올랐다. 


'너에게 지금 열정을 쏟을 것은 무엇이야? 열정은 언제 느끼지?'

바람이라는 건 삶을 바꿀 의지가 있을 때 따라오는 단계이다. 그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 바라는걸 내놓으라는 건 아무래도 순서가 잘못됐다. 매 순간 귀로 듣고 눈으로 보고 가고 맡았던 감각으로 켜켜이 쌓인 나의 잠재의식과 무의식, 의식적으로 계속 바라본다. 왜야, 어디야, 무엇이야, 어째서야, 그래서, 그런데


바람과 기대 절망이 없고 기쁜 감정이 없다는 건 아무래도 삶을 쓸모없이 살고 있는 것 같아서 허망했다. 살 이유, 목표가 지워지는 건 숱 차례 그렇게 된 과정을 찾아봐도 해답이 아닐 때가 있다.

'너무 상처받아서.', '너무 좌절해서.', '계산해보니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서.', '흥미를 잃어서.' 판단하고 평가를 하면서 미래를 설계해 나가는 것이다. 


돌아봐도 난 열정을 잃을 이유가 전혀 없었다. 행복한 가정과 사랑하는 둘도 없는 남편, 건강한 가족들, 건강한 친구들이 옆에 있는데 왜 이렇게 마음이 공허할까.


자책으로 넘어가기 전에 "스톱~!!!!!!" 생각의 꼬리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었다. 삶의 기준이 너무 높다던가 열정적으로 계획하고 지켜내지 못하니까 스스로에게 실망이 쌓였다거나 뭐 이렇게 생각하면서 악순환의 망태에 갇히기 일보직전이었다.


이러면서 우울증으로 가는 거다. 절대 발로 딛고 일어서기 어려운 앉았다 서는 자세 상태의 '레벨'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그럴 동력 하나 둘 셋! 하고 힘주며 벌떡 설 그 '에너지'를 잃는 게 우울증이라고 생각한다. 레벨이 바뀌어도 우울할 수 있고 그냥 누워있는 자세에서도 꽤 매우 열정적이게 온 힘 대해 누울 수 있으니까. 엔진을 꺼트리는 순간.. 불 지피 기란 더 오랜 시간을 소요하니 난 마음을 단단히 면밀히 살펴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충분한 시간을 주고 명상을 하다 보면 '발견'이 이뤄진다. 의식적으로 발견의 문구를 캐치하지 못하였다고 해도 내 무의식은 안다. 발견을 느꼈고 변화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았으며 직관적으로 그곳을 향해 마음을 이끌어준다. '너에겐 지금 이게 필요해. 이걸 해봐.' 또는 '누구를 만나.', '어디를 가봐.' 이런 것.



강하게 들어온 욕구는

책을 읽고 싶었다.




책을 시간을 배제하고 할 일을 제치고 읽고 싶었다. 교보문고 2곳을 갔다. 찾지 못했다.

마음의 열쇠를 쥔 책은 없었다.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4시간의 수다를 떨었다. 무언가 도전하는 남을 본다는 것, 예쁜 사람을 만난다는 것, 감각적으로 환기된다는 건 마음에 더 강한 조명을 가져다준다. 


'바로 이곳, 여기를 들여다보렴.'



그렇게 꽤 들여다보고서 나의 우울의 씨앗, 아주 저미게 자기 파괴적인 생각의 근간을 찾았다. 

"해서 뭘 해." 이 괴물 같은 말의 명치를 케이오시킬 준비를 했다.


그걸 문장으로 적어보라. 아주 적나라하고 구체적이게.

착한척하지 말고 그게 뭔지 보라.



"넌 어느 순간 돈을 벌려는 마음이 앞섰고 진심으로 요가를 안내하지 못했어."

"넌 과거에도 지금도 너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고 있어. 왜 인정해주지 않니?"

"넌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을 부러워하고 있어. 아니라고 말하지만 연기를 잘 하고 싶어해."



핵심적인 세 문장을 거둬드렸다.

그리고 그 문장들 속에 나를 비릿하게 기분 나쁘게 했던 나의 본질을 재확인한다.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네가 제일 잘 알아.' 맞다. 자신이 제일 잘 안다.

난 그게 자신의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명상을 하면 거둬진다. 그게 본질이다. 


나는 위의 문장으로 표현된 말속에서 내 인생 키워드들을 고를 수 있었다.


진심, 사랑, 실력


나는 진심으로 사랑하고 실력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이다.

이 문장이 삐뚤어지거나 해지고 가려진 채 오래 일상생활을 하면 변질된 내가 된 기분이고 병이 찾아온다.


위 가치는 중요하다. 내가 자기 발견을 해오며 알게 된 알아차림이니까.

아마 모두들 자기의 핵심 키워드는 다를 것이다. 활력이나 생기를 잃는 데든 저마다 이유도 다르다. 다시 거꾸로 가면 이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


해결 방법>


진심으로 요가를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진심으로 일을 한다는 건 무엇일까 고민하면 되고, 수련생을 대하며 배우면 된다.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 자기 비하 발언은 절대 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남에게 관대한 만큼 나에게 관대하기로 했고 설사 내가 잘못했다고 하더라도 나에게 엄격한 잣대는 대지 않기로 했다. 안 그래도 난 너무 검열이 심하니까 내게 맡는 처방이다.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되기 위해서는 연기 연습을 꾸준히 하면 된다. 방법은 생각보다 매우 간단했다. 



그렇게 해서 바뀐 점은>


매일을 기쁘게 살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다. 

상처받을까 봐 거리 뒀던 마음을 이길 만큼 한번 더 다가가 알려주고 싶은 마음을 수업 때 전달할 수 있게 됐고 그 생각으로 재밌고 다양한 수업을 꾸릴 의지가 불끈 생겨났다. 연기 연습은 항상 뒷전이었는데 이제 앉아서 조금씩 하기 시작했고 기분도 좋다. 특히 하루 종일 뒤 따라다니던 자기비판적인 태도는 수용의 마음으로 바뀌어 모든 일에 '자신감'을 선물해줬다. 





이렇게.... 평화가 찾아오다니.

모든 건 마음먹기에 달렸구나~ 하며 다시 한번 웃는다.


모두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또 나는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최근 겪은 작은 마음의 과정과 경험담을 나눠본다. 새해엔 더 바라는 자신이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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