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7월, 독일 뮌헨에 처음 왔다. 마치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한국과 너무 다른 풍경에 넋을 놓고 이리저리 걸어 다녔다. 한여름인데도 습하지 않고 발길이 닿는 곳마다 눈을 뗄 수 없이 예뻐 대중교통을 타기 아까웠다. 첫 나흘은 매일 3만보를 기록할 정도였다.
그렇게 걸어 다니면 당연히 목이 마르다. 한국인이라면 역시 아이스 아메리카노지. 스타벅스는 가기 싫어서 독일인들이 야외 테이블이 주루룩 앉아있는 노천카페에 들렀다. 유럽 감성을 한껏 느끼며 앉아 외계어가 잔뜩 쓰인(당시엔 독일어를 못했다) 메뉴판을 펼쳤다. 그때 내 눈에 들어온 글자. Eiskaffee. 발음을 해보니 아이스커피와 비슷하다. 좋아. 영어로 따로 적혀있지 않아 살짝 불편할 뻔했지만 나는 천연덕스럽게 Eiskaffee를 주문했다.
잠시 후 내 앞에 놓인 거대한 커피... 쉐이크? 프라페? 이건 뭐지?
아무래도 다른 테이블로 가야 하는 프라페가 잘못 나온 것 같아 직원을 불러 설명했다. 나는 아이스커피를 주문했다고. 그는 말했다. 이게 아이스커피라고.
그때 받은 충격은 여전히 잊히지 않는다. 아이스커피가 나라마다 개념이 다른가? 빨대를 휘휘 저어보니 라떼안에 바닐라 아이스크림 한 스쿱이 큼지막하게 들어가 있고 그 위엔 생크림이 묵직하게 쌓여있다. 초코 드리즐까지 친절하게 뿌려주고 과자까지 무심하게 꽂아줬다. 내가 기대한 건 차가운 얼음이 들어간 씁쓸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인데.....
재빨리 구글에 검색했다. 그리고 배웠다. Eis는 독일에서 아이스크림이란 뜻이다. 즉, Eiskaffee는 아이스크림 커피 정도. 독일식 발음은 아이스카페다. 주위를 둘러보니 이 아이스카페를 마시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여럿 보였다. 독일인들이 사랑하는 여름 알콜이 아페롤 스프릿츠라면, 커피는 바로 이 아이스카페. 나는 그렇게 노천카페에 앉아 얼떨결에 현지인 체험(?)을 했다. 나름 달고 맛있었다. 물론 이걸 다 마시고 곧장 스타벅스로 달려갔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 했던가. 난 그새 노천카페에서 마시는 이 아이스카페의 매력에 빠지고 말았다. 언젠가부터 자발적으로 주문하고 있다. 빨대로 힘껏 빨아들이면 라떼와 함께 살짝 녹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입안으로 함께 들어오는데 어찌나 황홀한지. 생크림을 흡수한 쿠키도 달콤함을 더해준다. 머리가 띵할 정도로 차갑지만 한여름엔 이만한 디저트가 없다. 가을이나 겨울에는 만나볼 수 없는 메뉴.
여름이 지나가는 이 시점에 가장 붙잡고 싶은 존재다. 이제 또 이듬해를 기약해야겠지. 올여름도 만나서 반가웠어, Eiskaffee.
사진=정재은, 언플래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