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나도 휴지 하나로 두세 번 코 푼다
7년 전 어학원에서 만난 한국 친구에게 들은 일화다. 약한 코감기에 걸린 그는 코를 훌쩍이며 수업을 듣고 있었다. 독일인 선생님은 그에게 가서 “코를 푸는 게 어떻겠니”라고 말했다. 친구는 당황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곳에서 대놓고 코를 풀으라는 건지. 선생님은 “코를 훌쩍이거나 먹는 건 독일에서 오히려 더 매너가 없는 행동으로 여겨진다“라고 말했다.
독일에 막 도착해 다양한 문화를 스펀지처럼 흡수하고 있던 차였다. ‘코 풀기 문화’를 듣고는 약간의 급정거를 하게 되었다. 대놓고 코푸는 건 한국에서 막 온 우리에게 영 어색한 행동이었다. 보통 보이지 않는 곳, 이를테면 화장실이나 사람이 없는 곳에서 풀고 오는 게 매너라고 배워왔는데 말이다. 그때부터 독일인들이 얼마나 대놓고 코를 잘 푸는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가장 전형적인 예시는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코를 푼 후 휴지를 접어 다시 바지에 넣는 것. 한 휴지를 요리조리 접어가며 코를 몇 번 풀고 나서야 버린다. 그 때문인지 독일의 휴대용 휴지는 유난히 튼튼하고 두껍다. (가끔 한국에 방문할 때 마치 실크처럼 얇고 부드러운 휴지 촉감에 당황하곤 한다.)
특히 봄이 되면 꽃가루 알레르기를 앓는 사람이 많아지는데, 그만큼 길거리에서, 지하철에서, 회사에서, 파티에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코를 푸는 사람이 많이 보인다. 한국에선 공공장소에서 코를 좀 훌쩍인다고 눈살이 막 찌푸려지진 않는데 여긴 그게 더 매너 없고 이상한 행동으로 여겨진다. 한 번은 내가 나도 모르게 코를 먹었는지, ”여긴 독일이니까 코 마음껏 풀어“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었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았다. 내가 코를 푸는 모습이 흉해 보이지는 않을까? 소리가 이상하게 나면 어쩌지? 조준을 잘못해서 휴지 밖으로 새면?
몇 번 풀고 나서야 조금씩 손에 익기 시작했다. 한번 익숙해지고 나니 훨씬 속편하긴 하다. 콧물이 코에 잔뜩 껴있는 그 찝찝한 기분을 덜 느끼니까. 이제는 한 휴지로도 두세 번 코를 풀기도 한다. 새로운 문화는 때때로 어색하고 받아들이기 힘들지만 적응이 된 후 얻는 이점도 분명히 있다. 이제 내 옆자리 독일인들은 내가 무의식에 내던 훌쩍임 소리에 괴로워하지 않는다.
혹시 콧물이 자주 나는 분이 있다면 독일에서 이렇게 생긴 휴대용 휴지를 구입해 가시길. 정말 도톰하고 튼튼하다. 음, 이런 결론으로 글을 맺을 줄은 몰랐는데...
사진=정재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