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서 하는 취미들이 뮌헨스러운 건에 대하여
오랜만에 시끌벅적한 지하철을 타고 알리안츠 아레나로 이동했다. 바이에른 뮌헨 유니폼을 개성 있게 차려입은 사람들이 지하철을 꽉꽉 채웠다. 잔뜩 상기된 얼굴을 보니 괜히 나까지 들뜨는 기분이었다. 벌써 해리 케인 유니폼을 입은 사람도 많다. 잉글랜드에서 온 슈퍼스타를 본다는 생각에 아마 더 흥분했을 거다.
그들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도 한때 바이에른 뮌헨 팬이었는데, 뮌헨에 온 후로 한 번도 유니폼을 입고 경기를 보러 간 적이 없네. 이미 축구가 나의 직업이 된 후 뮌헨에 와서 그렇다. 매주 기자석에서 축구를 볼 수 있어 어떤 갈증도 없고, 유니폼에 대한 욕심도 없었다. 기회를 만들려면 만들 수 있지만 ‘굳이..?‘ 하는 생각에 금세 접었던 것 같다.
그래도 부러웠다. 저렇게 열정적으로 즐기는 취미가 있다니. 한때 내게도 축구는 취미였다. 편하게 앉아 맥주를 마시며 즐기는 영역. 그냥 좀 아쉬운 거라면 그 취미를 친구들과 함께 즐기지 못했다는 것. 지금은 각종 스타의 등장으로 축구를 좋아하는 친구가 많아졌는데, 그때는 다들 나를 ‘돌연변이’처럼 봤다.
아쉬움에 잠식되려던 찰나에 생각났다.
맞다, 나 지금 취미 엄청 많지?
한국에서는 갖지 못했던 취미들을 많이 즐기고 있다. 헬스장에 주 4, 5회 가서 근력 운동을 하고, 고소공포증을 이겨보려 볼더링도 하고, 혼자 하는 등산을 즐긴다. 최근에는 스케이드 보드까지 시작했다.
뮌헨에는 즐길거리가 많다. 기차를 타고 30분만 나가면 넓은 호수가 펼쳐지고, 알프스 산맥이 사방에 뻗어있다. 등산 코스가 워낙 잘 되어 있어서 멋진 풍경을 보며 낮고 높은 산을 오르내리기 좋다. 등산을 특별한 취미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로 접근성이 좋다. 예전에는 친구들과 함께 등산하다가, 요즘은 혼자 산을 오른다. 나만의 속도로 오르고, 내가 원하는 만큼 먹고 쉴 수 있다. 무엇보다 좋은 건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내가 생각하고 싶은 생각을 실컷 할 수 있다는 점. 머릿속이 깨끗하게 정리되기도 하고,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안고 하산할 때도 있다. 같은 등산 코스도 계절에 따라 느낌이 다르기도 하다. 또, 오르내리며 마주치는 사람들과 나누는 인사, 가벼운 스몰톡도 재미있다. 평소 도시에서는 수줍어 - 나는 뮌헨 출신이 아니므로 - 하기 어려운 Servus(바이에른식 인사)도 산에서는 실컷 하게 된다. 이유는 나도 모른다. 다들 그렇게 하니까?
헬스에 재미가 들릴 줄은 몰랐다. 한국에 있을 때도 헬스장을 다녔지만 목적이 확실했다. 다이어트. 지금은 별다른 목표가 없다. 체지방률 몇 퍼센트, 바디 프로필, 근육량 몇 퍼센트 등은 나와 거리가 멀다. 그냥 재미있게 한다. 어느 순간 원판을 하나 더 끼우고, 세트수를 한 번 더 늘리는 나를 보며 신기함을 느낀다. 점점 몸이 탄탄해지는 기분이 든다. 주로 하루를 시작하기 전 새벽 5시 45분쯤 헬스장으로 출발해 8시 정도에 돌아온다. 나의 오늘을 위한 준비 운동이다. 자전거를 타고 새벽 공기를 헤치며 달리는 순간은 글로 옮기기 힘들 만큼 상쾌하고 시원하다.
등산을 할 때 가파른 경사도 전보다 가볍게 오르고, 볼더링을 할 때 매달리는 힘도 강해진다. 역시 얼굴이 익은 사람들도 많이 생겼는데, 내가 가끔 안 보이면 ”휴가 다녀왔어? “라고 묻기도 한다. 알게 모르게 정이 들고 있는 헬스장 멤버들. 서로 동기부여도 된다.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이 취미에 재미를 잃을 일은 없을 것 같다.
매달리기에 자신감이 생기면서 볼더링을 시작했다. 다른 운동은 혼자 하는 걸 좋아하지만, 볼더링만큼은 친구와 하는 게 더 즐겁다. 어려운 문제는 함께 풀고, 서로 응원해 준다. 1, 2시간이 훌쩍 지나버린다. 다른 사람들이 문제를 푸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미세한 고소공포증이 있어 일정 높이 이상 못 올라가고 그대로 내려오곤 했는데 조금씩 극복하고 있다. 그런 내 자신이 기특하다. 가끔 손바닥에 물집이 심하게 잡히고, 찢어지기도 하지만 도저히 끊을 수 없는 볼더링. 꽤 중독적인 취미다. 마지막 홀드에 두 손을 가져갔을 때 느끼는 짜릿함. 마음 같아서는 매일 하고 싶다.
스케이트 보드를 시작한 건 우연이었다. 앉아있다가 문득, 아, 보드 타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길로 곧장 보드 전문 매장에 갔다. 홈페이지에 대여 서비스가 있다고 해서 갔는데, 1년 전에 종료한 서비스란다. 마음먹은 건 당장 해야 하는 성격이라.. 바로 스포츠 전문 매장에 가서 마침(!) 할인 중인 보드를 구입했다. 그날부터 일주일에 한두 번씩 보드를 탄다. 스킬을 하나씩 늘릴 때마다 뿌듯하고, 성취감이 든다. 널찍한 평지가 있는 테레지엔비제 - 옥토버페스트가 열리는 곳 - 에서 친구와 각자 보드를 가져와 실컷 타고 돌아간다. 혹은, 땀에 흠뻑 젖어 근처 비어가르텐에서 라들러를 한잔 시원하게 마신다. 땀 흘린 후 마시는 맥주는 꿀맛이다.
이런 취미에 대해 비뮌헨 출신 독일 친구와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네 취미 아주 ‘뮌헨 사람’ 스럽다!”
등산과 헬스, 볼더링 등의 키워드만 들어도 뮌헨에 사는 사람이라는 답이 나온단다. 뮌헨에 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여기서 접하기 쉽고, 그래서 인기가 있는 취미를 수집하고 있나 보다. 말타기까지 추가됐으면 어쩔 뻔했냐는 친구의 안도(?)까지. 승마는 ‘뮌헨 사는 여자’하면 떠오르는 클리셰한 이미지 중 하나다 (긍정적이지는 않다).
아무렴 어때. 나는 내 취미들을 사랑한다. 취미 축구를 잃어 속상했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예전에는 ’아, 퇴근하고 할 게 없네'라며 슬퍼했다. 지금은 당일 출장을 다녀오는 이 순간에도 내일 헬스장에 가서 오늘 못한 운동을 보충할 생각에 설렌다.
사실 친구의 ‘뮌헨 사람’ 스럽다는 말에 큰 동의를 하지는 않았다. 내가 좋아서 시작했을 뿐, 뮌헨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생각은 1도 없다. 다만 축구라는 키워드가 더해지면 어느 정도 동의할 수는 있을 것 같다. 너희 못지않게 나도 축구장 좀 다녀봤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