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언장담의 끝은 결국 공수표
일본 백신 수급 문제가 상상 이상으로 심각한 듯해서 간단히 정리해볼까 한다. 올림픽을 앞두고 야심 차게 시작한 계획들이 모두 틀어지고 있는 모양새다.
일본 정부는 현재 백신을 얼마나 들여오고 있고, 부족량은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지자체, 집단 접종할 것 없이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일본 접종 체계를 다시 한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크게 ①지자체별 접종(화이자) ②자위대 접종센터 접종(모더나, 접종권 있으면 누구나 접종가능) ③직역접종(대학, 회사 등, 모더나)으로 나눠지고 절차적으로 ①, ②는,
지자체별로 특정 연령대/기저질환자에게 순차적으로 접종권 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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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날짜부터 예약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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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날짜에 1차 접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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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접종 뒤 2차 예약 및 접종
③은 개별 회사, 대학에서 접종하므로 자율적으로 진행되고, 정부에 사람 숫자를 파악해서 신청하는 방식이다. 공급량은 널널하니 많이들 신청하라는 게 정부의 선전문구였다.
먼저 문제가 나오기 시작한 건 ③이다.
직역접종을 시작한 지 이틀째인 6월 23일 신규 신청을 막아버렸다. 생각보다 훨씬 많은 신청이 있었다는 이유였다. 그러자 정부만 믿고 집단접종을 추진하던 회사와 대학들이 패닉에 빠졌다. 처음에 일시중지라 하던 일본 정부는 돌연 직역접종 자체가 없어질 수 있다고 말을 바꾼다. 아무리 신청이 많았다한들 그 범위를 예측 못한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에 있다.
②도 사실상 신규 예약을 받지 않게 됐다. 오늘 자위대접종센터와 관련해선 두 가지 뉴스가 있었다. 다음 주 1차 예약분을 갑작스럽게 열었는데 '8분 만에' 마감됐다는 소식과 8월 말로 해당 사업을 끝내겠다는 방침이다. 7월 중순 이후 자위대 접종장은 2차 접종에 주력할 계획이기 때문에 더 이상 역할을 못할 것으로 보인다 (필자도 여기서 7월 말쯤 2차 접종 계획).
지금 가장 크게 문제가 되고 있는 건 ①, 즉 가장 많은 공급량을 담당할 거라던 지자체다. 아래 고베시에서 내놓은 문서를 보면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다.
고베시는 화이자 공급량이 크게 부족하다는 이유로 1차 접종을 당분간 받지 않고 7월 6일 이후 예약자에 대해선 취소할 수밖에 없다고 발표했다. 해당자가 고베시만 5만여 명에 달한다고 한다. 다만 일부에 대해선 모더나로 교체하는 게 가능하다고 하는데, 이것도 완전히 확실한 상황은 아니라고 한다.
대략 각 지자체에서 보자면 1차 예약의 절반 이하만 확보 가능한 상태로, 일부에서는 1차 접종분 상당량을 2차 접종으로 돌리는 일도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에선 누구 하나 속 시원하게 대답해주는 사람이 없다.
백신담당장관으로 임명된 고노 타로는 7월 하순 백신 공급량이 희망치의 3분의 1에 그친다면서 "일단 재고를 최대한 활용해달라"는 말을 하고 있다. 오죽하면 아래 NHK는 기사 맨 윗 사진에 "서두르라 했으면서..."란 제목을 달았다.
당장 7월 23일에는 올림픽 개막식이 예정돼 있다. 우간다 선수단 몇 명이 감염된 채 입국했음에도 제대로 관리가 안된 마당에 유일한 희망인 백신 공급마저 이 지경이다.
게다가 도쿄는 확진자가 다시 늘기 시작했다. 전략적으로 고령층이나 기저질환자에게 충분히 접종이 되지 않은 듯싶은 게 중증환자가 증가 추세로 돌아섰다. 사망자도 전국적으로 여전히 하루에 몇십 명씩 나온다. 오로지 백신에만 올인하는 것처럼 보였음에도 무엇 하나 속도를 내서 맞출 준비가 돼 있지 않은 것이다.
코로나 이후 계속된 일본 정부의 과도한 '희망적 관측'과 '어떻게든 되겠지'하는 안일한 마인드는 아마도 크게 변하지 않을 듯싶다. 올림픽도 그냥 열릴 가능성이 크다. 물론 그 뒤에는 일본 국민들의 체념, 포기가 있다는 것도 잊어선 안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