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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주영 May 22. 2023

오월의 찬란함이 슬픔으로 남지 않기를

 그저께는 아빠 꿈을 꿨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어느덧 십 년이 훌쩍 넘었네요. 강산도 변할 시간, 대학생이던 저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고, 삶의 희로애락을 느끼며 나이를 차곡차곡 쌓는 동안 아빠는 여전히 50대 초반의 젊은 모습 그대로입니다. 주름이 하나둘 늘어가는 큰아빠나 작은 아빠의 모습을 보며, 아빠는 어떤 모습으로 나이 드셨을지 상상해보곤 합니다.

 등산과 야영을 즐기는 듯한 작은 아빠는 최근 차량 루프탑 텐트를 샀다며 기뻐하셨는데, 아빠가 살아계셨다면 아빠는 지금쯤 무엇을 가장 즐거워하시려나 궁금했습니다. 시간이 흐른다고 그리움이 사라지거나 옅어지는 건 아닌가 봐요. 세상에 존재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받아들였지만, 여전히 보고 싶고 그립습니다.

 얼마 전엔 버스 노선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무심코 탔던 버스가 이태원으로 향하더군요. 저는 10월의 그 날 이후 이태원에 가는 것을 피했던 터라 순간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버스가 이태원을 향해 갈수록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밀려왔지만, 버스는 유유히 노선을 따라 해밀턴호텔 앞 도로를 지납니다.

 창밖으로 보인 이태원은 활기찼습니다. 봄의 햇살은 고왔고, 거리엔 사람이 많았습니다. 길을 걷는 이들의 평온한 표정과 뉴스에서 보았던 아비규환이 펼쳐진 밤의 풍경이 교차하며 도로 곳곳에 퍼져있는 평화로움이 저는 어쩐지 생경하게 느껴졌습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살아야지, 이태원에도 많은 사람의 생계가 걸려있으니까’라고 생각하면서도, 선뜻 이태원에 다가가기 어려웠던 건, 여전히 끓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이 존재함을 알고 있어서가 아닐까. 슬픔은 가림막을 세우거나 흔적을 지운다고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최근 회사 선배님이 지인의 자녀 장례식에 다녀왔다고 하셨습니다. 많은 조문객이 상주를 위로했지만, 장례의 연유에 대해선 그 누구도 물어볼 수 없었다고 합니다. 어떤 까닭에서든 자녀를 먼저 하늘로 떠나보낸 부모에게 남은 삶은 사라지지 않는 고통과 깊은 슬픔을 껴안고 살아있는 시간을 버텨내는 거라고, 감히 짐작해봅니다.

 길가에 장미가 아름답게 폈어요. 예쁘고 아름다운 걸 보면 자연스레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떠오르기 마련인데,  일상의 기쁨 대신 공허함이 내려앉은 이들에게 오월의 찬란함이 너무 슬프게 다가오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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