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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Jul 22. 2021

남편의 뒷모습

색연필 그림일기


남편이 잠만 잔다.

피곤하다고 했다.

백신을 맞고 왔기 때문이다.


남편의 말이 더 줄었다.

사는 게 재미없다고 했다.

백신 때문일까.


남편은 빛바랜 청바지를 즐겨 입고 머리숱이 많았다. 턱을 살짝 들고 바람 부는 방향으로 머리칼을 내주던 모습이 생각난다. '여림'이라는 필명으로 단정한 글씨의 엽서를 보내고 늘 카메라를 메고 다니며 그는 사진을 찍었다. 처음 만나 함께 걷던 날의 거리와 약간의 더위, 어색함을 감추며 웃던 그의 관자놀이가 생각난다.


술을 마시고 있으면 언제 사 왔는지 속이 편해지는 음료를 슬쩍 건네주던 사람. 아픔에 익숙해 보였던 사람. 속 깊은 사람(어떤 것은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타고나는 것도 있다). 그는 첫 만남 후 전화번호 대신 편지를 쓰라며 주소를 적어주었다. '목신의 오후'란 카페에 들어가 차를 마실 때 우리는 우리가 결혼할 줄 알았을까. 드뷔시가 아닌 해바라기의 노래를 틀어놓은 찻집 주인은 우리가 처음 만난 사이라는 것도 모르고 의 얼굴이 닮았다며 남매냐고 물었다.


찻집 주인의 말대로 얼굴이 닮은 우리는 남들처럼 결혼을 했고 친구로 평생의 도반으로 살자고 약속했다. 우리를 위협했던 크고 작은 일들은 강물이 되어 30년의 희로애락으로 흐르고 나는 오늘도 그 강 앞에서 익숙하지만 낯선 그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남편보다 30년 지기. 내가 나이 들고 있음을 그를 통해 안다

그는 가끔 자기만의 동굴로 들어가 웅크려 있곤 한다. 스스로 회복될 때까지 말없이 출근을 하며 휴일이면 먹지도 않고 24시간을 잔다. 무슨 일이 있느냐, 어디 아프냐 해도 대답이 없다. 약을 사다 주어도 먹지 않고 혹시나 죽을 끓여도 먹지 않는다. 세심하게 남을 먼저 배려하는 평소의 그가 아니다. 특별한 방법 없이 그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면서도 여전히 나는 그의 '피곤' 앞에서 흔들린다. 이것은 30년을 살아도 항체가 생기지 않는 불안이다. 그의 어딘가가 잘못된 건 아닐까 하는 불안, 내 가정의 평화가, 안녕이 깨지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집안을 서성거리게 하고 그의 '피곤'이나 '재미없음'에 내가 일조한 것은 아닌가 회의하며 내 행동과 말을 몰래 복기해 보곤 한다.


남편의 등을 바라보며 그의 회복을 기다리는 동안 나는 외롭다. 아이의 학교 상담을 다녀오고 모임에 가며 그가 빠진 가족 식사를 하고 서랍 정리를 하며 홀로 일상을 겪어낸다. 하지만 이 외로움은 내가 '우리'를 지키고 있다는 표징이다. 그 또한 그의 방식으로 홀로 무언가를 견딘다는  알기에 나 또한 내 몫의 외로움을 견딘다. 산다는 일은 견뎌내는 일이기에....


이 외로움은 한 때 고통이며 어둠이었으나 세월의 관대함으로 지금은 오히려 내 안을  채워주는 빛이 되어 삶의 경계들을 넘어서게 한다. 30년의 강물로 함께 흐르는 동안 제것으로 지니고 있던 것들이 '우리'의 지평 안에서 섞이고 공유되어 그가 동굴에 있든 '우리'와 있든 더 이상 그의 시간과 나의 시간은 별개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며칠간 집안의 적막이 흐른 후, 온다 간다 말도 없던 남편이 다녀오겠다며 입을 열었다. 나는 남편이 좋아하는 계란찜과 감자탕을 끓여놓고 그의 퇴근을 기다렸다. 평소보다 조금 늦은 그의 손엔 내가 좋아하는 빵이 들려 있다. 나의 배려가 그의 동굴행을 모른 척하는 것이라면 그의 사랑은 일부러 길을 돌아 빵을 사 오는 것이다. 그는 동굴에서 나온 것일까. 이 질문은 의미가 없다. 우리는 삶이라는 더 큰 동굴 안에 있기에.


남편과 나는 감자탕과 프랜치 파이를 먹으며 TV를 보았다. 같은 장면에서 웃고 더러는 함께 의미 없는 화를 내면서 캔맥주를 부딪쳤다. 아들의 눈이 안심해하며 웃었다. 나의 동지가 자신의 동굴에서 나와 우리의 동굴로 돌아왔다.

 


( 두 달 전에 그림을 그리고 이제야 탈고를 한다. 그토록 달아나고자 했던 세상 일에 다시 매여 몸과 마음이 번잡하고 시끄럽다. 낭패스럽다. 그러나 그 또한 소중한 시간이고 주어진 삶이니 감사하다, 그리 고개 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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