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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 Jun 28. 2021

뜨개질의 교훈

색연필 그림일기


뜨개질은 무엇을 의도하든 한 코에서 시작한다. 이 한 코가 물건의 용도와 크기, 무늬와 모양을 만들어낸다. 한 코가 모여 가방이 되고 옷이 되며 생활에 유용한 물건들이 된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지루한 작업이라 속단하면 안 된다. 어디서 코를 늘이고 줄여야 할지 계산해야 하며 의도한 대로 형태를 만들고 무늬를 이루는 한 코 한 코를 실수 없이 정해진 순서에 정확히 실행해야 오류가 생기지 않는다. 얼핏 졸거나 딴생각을 하여 기계적인 손놀림을 방관하면 사고가 생긴다.


단 몇 코에서 시작하는 뜨개질

주간에 있었던 일들이 순환열차처럼 꼬리를 물고 밀려오고 또 밀려왔다. 밤이 깊었으나 잠이 오지 않는다. 뜨개바늘을 집어 든다. 뜨개질 한 코에 원망 하나, 또 한 코에 후회와 자책을 넣는다. 연이어 해삼, 멍게, 말미잘을 넣고 무늬를 만들어 단을 이룬다. 여전히 잠은 오지 않는다. 손목이 아프다. 헛된 생각은 끝이 없고 뜨개질은 계속된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좀 참지. 나만? 됐어...... 아예 시작하는 게 아니었어'.


손가락에 쥐가 난다. 손을 주무르며 뜨개를 살펴보는 순간 알아차렸다.

'아, 잘못 떴구나.'

되돌릴 수 없는 일을 곱씹는 동안 손은 쓸데없이 성실하여 오류가 생긴 작업을 상당히 진행하고 말았다.


작업자는 벌어진 고민에 잠긴다. 이 실수를 덮고 그대로 가는 방법은 없을까? 최상의 선택은 작업 진도와 상관없이 바로 풀어버리는 거지만 대부분은 실수를 덮을 생각을 한다. 이 지점이 본격적으로 망치는 부분이다. 그리고 실수를 덮기 위해 더 열심히 뜨개질을 한다. 자신이 그럴만한 기술을 가졌다고 자부한다. 상당 부분 진행된 뜨개를 보면서 실수가 드러나지 않을 거라고 뿌듯해하는 순간, 뼈 아프게 알게 된다. 오류는 감출 수 없다는 것을. 그리고 두 번째 잘못을 저지른다. 작업량이 많을수록 이 잘못은 반드시 저지르게 된다. 어리석음을 인지하고도 이미 진행된 작업량을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이 더 큰 오류를 범하는 지점이며 뜨개질 작업자의 가장 큰 어리석음이다.


'아, 망했다. 처음에 풀어 버릴걸. 몇 시간을 떴는데 이 많은 걸 풀어? 에이, 때려치울까?'


이 의미 없는 내적 갈등은 왜 하는 것일까. 작업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면 완성을 전에 두었더라도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리석다고 생각하면서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다. 특별한 용기도 필요 없다. 그저 풀어버리면 되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자신의 미련함에 치를 떨면서도 오류를 덮기 위해 더 큰 오류를 보태고서야 그간의 작업량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새벽을 맞으며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생각이 번진다. 실수와 오류는 비단 뜨개질 뿐일까.




잘못 뜬 뜨개는 풀어버리면 되지만 문제는 다른 실수요, 다른 오류다. 설핏 기억나는 것만 해도 손가락이 넘친다. 그 실수들을 나는 어떻게 다루었던가. 과연 실수이긴 했을까. 나의 나쁜 선택을 '실수'라는 표현으로 합리화하며 다시 비겁해지고 있는 건 아닌가. 기꺼이 원점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 얼마나 주저했던가. 비겁한 변명 없이 다시 선택을 한다는 것은 집 앞 동산도 올라가지 않는 사람이 어느 날 킬리만자로 산을 오르는 것과 같다.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결과가 눈앞에 있을 때 스스로 오류를 인정하고 포기한다는 것은 더욱 어렵다.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고통스럽고 억울하다. 온갖 명분을 갖다 대며 계속해도 된다고 다른 자아가 꼬드기는 유혹에도 버텨야 한다.


여명 속에 앞산의 실루엣이 드러나며 피곤이 해일처럼 밀려온다. 마음이 무겁다. 그렇다면 잘못 뜬 뜨개도 실수도 풀어버려야 한다. 다른 방법이 없다.


실을 풀어버리는 일은 묘한 쾌감을 준다. 조금 과장하자면 마치 억압되어 있던 존재가 자유를 맛보는 기분이다. 끌어 온 시간이 길다면 이 일은 더 후련하다. 풀어버리는 것은 새 기회를 얻는 것이다. 실수와 잘못은 덮어버린다고 덮어지는 것이 아니다. 실수를 풀어버릴 수 있는 것,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은 뜨개질의 교훈뿐 아니라 삶이 우리에게 주는 몇 안 되는 너그러움이 아닐까.


다시 한 코에서 새로 시작한다. 오류가 생긴 지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것은 헛수고가 아닌 완성의 시작이다. 이번엔 전과 다르게 천천히 손을 놀린다. 실수는 경험으로 축적되어 한층 더 능숙해진 손놀림으로 음미하며 한 코 한 코를 이어 나간다.


인생이 뜨개질 같다면 사는 일은 좀 더 쉬워질까? 그럴 리가. 실수 투성이 우리네 삶과 뜨개질의 실수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유감스럽게도 인생의 교훈은 뜨개질의 교훈처럼 단순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지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 늦더라도 되돌리면 되니까. 손해를 감수하고 욕은 좀 먹어야겠지.


창이 훤하다. 어느새 아랫집 닭소리, 새소리, 풀벌레 소리로 주위가 시끄럽다.

아픈 손가락을 주무르다 서서히 어둠이 빠지고 아침 햇살이 비치며 환해지는 앞산을 바라본다. 실은 풀었고 뜨개질은 언제든 다시 할 수 있으니 다른 실수를 풀기 위해 우유를 넣은 커피를 마시고 좀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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