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아침부터 어둑하니 흐렸다. 느긋하게 앉아 빌려온 책을 읽었다. 며칠 기다려 받은 책이다. 이런 시간이 제일 좋다. 침대에 반쯤 몸을 누이고 읽고 싶었던 책을 읽는 시간. 그 책이 기대한 것만큼 좋을 땐 더할 나위가 없다. 비가 내리는지 마당 처마에 토도독, 토도독 비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창을 여니 반가운 빗소리와 함께 흙냄새가 한꺼번에 밀려 들어왔다.
우리 집 개가 하듯이 코를 킁킁대며 비와 섞인 흙먼지 냄새를 맡았다. 우리 개에게 배운 것 중의 하나는 이거다. 냄새를 맡는 행위도 육체의 적극성이 필요하다. 어떤 냄새가 저절로 느껴지는 것과 스스로 냄새를 향해 코를 킁킁대 맡는 것은 다르다. 행위의 적극성이 냄새를 더 선명하게 한다. (이토록 관념적인 인간이다.)나는 킁킁대는 적극성을 통해 비가 일으킨 흙냄새를 맡았다. 흙냄새 속에 라일락 냄새와 알 수 없는 풀 냄새가 섞여 들어왔다. 킁킁대는 나를 본 우리 집 개도 열린 창문을 향해 턱을 들고 킁킁거렸다. 책장을 넘기는 시간과 공간에 비냄새와 흙냄새, 꽃냄새가 떠돌았다.
참새들이 제법 무리를 이루고 포르르 거리며 날아다녔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빈 밭에 일제히 앉았다가 흩어지고 다시 나무나 덤불에 앉아 있다가 한꺼번에 날아갔다. 비가 내려 참새들도 좋은 것일까. 메마름 속에 내리는 비가 반가운 건 새들뿐이 아닌가 보다. 아랫집 닭도 길게 길게 목청을 돋웠다. 녀석, 오랜만이군. 겨우내 들리지 않아 잊고 지냈는데 문득 들리는 목청이 우렁찬 걸 보니 속도 없이 반갑다. 또 잠을 설치겠군.
책 한 권이 끝나갈 무렵 창가가 환해졌다. 비는 그치고 해가 나왔다. 물안개 기둥이 올라가는 산 위로 햇살이 뿌옇게 층을 만들고 있었다. 읽던 책을 끝내고 덮으니 자고 있던 우리 집 개가 꼬리를 치며 헤헤거렸다. 책을 다 보았으면 해 지기 전에 나갔다 오자는 뜻이리라. 지난 늦가을 금송화 꽃씨를 잔뜩 뿌려둔 생각이 났다. 나가 보니 금송화 어린잎들이 며칠 내린 비로 빼곡하니 자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