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i Jul 15. 2024

바닷가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어반 스케치 그리고 쓰다



그림 연습을 할 때 자료를 구하거나 관련된 장르의 그림을 살펴보는 용도로 주로 이용하는 것은 핀터레스트이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많은 이가 알고 있는 어플이다. 나도 핀터레스트의 사진과 그림을 보며 때론 따라 그려보기도 하면서 연습을 한다. 


그림 그리기 지금보다 더 미숙했을 때는 그리싶은 대상들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인 경우가 많았다. 바다 물결은 어떻게 그리나. 눈 내린 풍경은 어떻게 하는 거야? 귀여운 고양이와 강아지들을 보면서 어떻게 그리면 되나? 하면서 박약한 재주를 한스러워했다. 어디 가서 그림을 배울까도 했지만  역시 마땅치가 않았다. 개설 중인 클래스가 너무 멀거나 원하는 장르가 아니었고 배우고 싶은 수업을 발견해도 선뜻 등록하기엔 수강료가 부담스러웠다. 만인의 스승 유투브도 입맛에 맞는 것은 었다. 유투브도 그림의 기본을 알아야 적당히 이용할 수 있는 수단이었다. 결국 나는 책을 선택했다. 도움이 될 만한 책을 구입한 후 그 책이 하라는 대로 했다. 어떤 책에서는 소실점을, 어떤 책에서는 기와를 어떤 책에서는 나무와 빛의 표현을 배웠다. 


핀터레스트에서 빌려왔다


핀터레스트를 훑어보던 중 위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이미 누군가가 수채화로 그린 그림도 있었다. 색연필을 사용하기로 결정하면서 자신감이 슬슬 꼬리를 내렸다. 바다에 비친 햇빛 때문이었다. 바다에 반짝이는 햇빛은 어떻게 그리나... 마음 한편에선 쉬워 보이는 것으로 고르라고 속삭였지만 이 사랑스러운 풍경이 나를 자꾸 끌어당겼다. 


아이와 세 마리의 고양이들은 바다와 마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앉아있다. 지대가 높은 것으로 보아 동네 중간쯤 되는 곳이다. 바다가 마주 보이는 언덕배기에 터전을 마련하고 있는 어느 바닷가 마을이 떠올랐다. 주황이나 파란색, 또는 하늘색의 지붕을 이고 꼬불꼬불한 골목길들이 집과 집으로 이어지는 그런 마을들. 남자아이가 털모자를 쓴 걸 보니 날이 좀 쌀쌀한 거 같다. 그 아이의 가방에는 작은 인형도 달렸다.


두 아이들은 친구일까, 남매일까? 가깝게 앉은 두 아이의 뒷모습이 자연스럽고 다정하다. 아이들 옆으로 세 마리의 고양이가 각각 앉아 있거나 서 있는데 아이들과 고양이들은 잘 아는 사이로 보인다. 서로 경계함 없이 익숙하고 무심하여 자연스럽다.


두 아이는 집으로 가는 길이었을까. 뒷산에서 혹은 다른 친구네 집에서 놀다가 집으로 가려는 것일까. 아이들과 고양이들 뒤로 긴 그림자가 진 걸 보니 오후인 것 같다. 노는 것도 시들해져서 집으로 가는 길에 잠시 앉아 이야기를 나누나 보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는 것일까. 저 아이들은 필시 내려다보이는 마을의 아이들이겠지. 


그림의 주인공은 아이들과 고양이가 아니라 햇빛이라고 생각했다. 두 아이와 세 마리 고양이 뒤로 늘어진 짙은 그림자와 기와집 지붕에 비친 밝음과 어두움, 하얗게 보이는 바닷물은 다 햇빛 때문이다. 이 그림은 햇빛을 잘 그려야 하는구나. 햇빛의 얼굴은 그림자이다. 햇빛은 그림자를 통해 드러난다. 햇빛 아래 바다는 반짝거리는데 그 반짝거림은 빛을 받은 물결이 그림자를 만들며 물결의 움직임을 따라 빛과 어둠이 끊임없이 섞이는 모습이다. 그림자가 없다면 물결의 반짝임은 보이지 않을 것이다. 밝음과 어두움은 하나구나. 그림의 완성도는 이 그림자에 달려있다. 


이제 생각은 그만하고 펜이 가는 대로 보이는 대로 그린다. 가까이 보이는 아이들과 고양이들, 기와지붕은 꼼꼼히, 마을로 내려갈수록 대상의 형태만 그린다. 바닷가에 정박해 있는 배들은 흉내만 내고 바다 건너 쪽 산들과 먼바다는 실루엣으로만 존재한다. 


저녁에 펜으로 스케치를 하고 다음 날 아침에 색을 입혔다. 역시 바다를 표현하는 것이 어려웠다. 그럴수록 단순하게 그리려고 했다. 햇살로 반짝이는 것은 하얗게 비워놓았다. 어떤 대상은 그리지 않음으로 그려진다. 그리고 그림자... 인디고로 밑색을 깔고 검정으로 한 번 더 입혔다. 주로 인디고나 보라를 섞어 그림자를 칠하곤 했는데 기와의 색과 겹쳐 검정으로 덧칠했다. 착해 보이는 두 아이와 귀여운 세 마리의 고양이들이 그림이 되었다. 그리고 여전한 아쉬움.


다음엔 좀 더 나아질까. 기댈만한 곳이 없는데도 좋아지겠지, 생각한다.  식구들은 잘 그렸다고 손뼉을 쳤다. 나의 의도는 근경에서 원경으로 나아갔는데 그림을 보는 이들은 원경을 먼저 보았다. 마음속 어지러운 생각들은 그새 차분해지고 두 아이와 고양이들과 함께 나도 나란히 앉아 마을과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펜드로잉에 프리즈마 색연필, A4 색연필 전용지
매거진의 이전글 진부령을 넘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