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걸었다

색연필 그림일기

by Eli

걷기를 시작한 이래 최악의 날씨다.


눈은 발등을 덮을 정도로 쌓였고 또 계속 내렸다. 더구나 심하게 돌풍이 불어 나뭇가지에 내려 쌓인 눈들을 다시 휘날리게 했다. 햇볕이 살짝 비치며 눈이 성글어지는 것을 보고 집을 나섰다. 그러나 길에 나서자마자 흐려지더니 눈바람은 나를 사정없이 닦달하며 '왜 나왔어? 꺼져!' 하는 듯이 거칠게 불어댔다. 어쩌다 지나는 차는 내 걸음보다 늦게 지나갔고 사람은 보이지 않은 채 어디선가 북~, 북~하며 눈 치우는 소리가 들렸다. 다운 점퍼를 턱까지 올리고 모자에 안면 마스크까지 풀 착장을 했다.


하지만 눈은 눈썹과 눈덩이에 떨어져 물이 되어 땀처럼 콧등을 따라 흘러내렸다. 눈이 들어간 뒤꿈치는 서늘하더니 급기야 축축한 느낌이 들었다. 게다가 기온은 그리 낮지 않아 물기를 머금은 눈을 밟을 때마다 자꾸 미끄러졌다. 행여 넘어질까 봐 허벅지 안쪽의 긴장을 느끼며 걸음마다 집중해 걸었다. 발가락 끝에도 힘이 들어가 오른쪽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새끼발가락이 걸리적거렸다. 아플 것 같다.


평소보다 적게 걸었으나 집에 돌아왔을 땐 카운터 잽을 여러 번 맞아 다운 직전이 된 권투선수처럼 지쳐버렸다. 그러나 묘한 성취감이 들었고 기분이 좋았다. 씻고 난 후 뽀송한 옷으로 갈아입고 따뜻한 차 한 잔을 마시며 노트북을 열었다.

나는 오늘도 걸었다.


20210118_200119.jpg 막다른 동넷길엔 아무 흔적이 없고 내 발자국만 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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