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리라 Mar 18. 2022

자이언트 기러기는 왜 철새가 되었나

자이언트 기러기 아리-6

“얘들아, 엄마가 지금부터 자이언트 기러기들 사이에 전해 내려오는 오래된 전설을 들려줄게. 알다시피 너희들은 자이언트 기러기들의 후예니까 반드시 기억해 두어야 한다. 이 호수에만 머물러 사는 기러기들도 자기들이 자이언트 기러기들의 후예라고 생각하지만 아니란다. 겉모습이 전부는 아니야. 진짜 자이언트 기러기들은 일년에 두 번씩 위험을 무릅쓰고 계절 여행을 하는 철새들이란다.”


“그런데…철.. 철새는 뭐고 계절 여행은 뭐예요?”


말이 가장 느린 토트가 손으로 얼굴을 마구 문지르며 말했다. 뭔가 이해가 가지 않을 때 그가 하는 행동이었다. 피트, 홍크, 토트는 아직 브리즈가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 이야기부터 한다면 그들은 광분하여 어떤 이야기도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브리즈는 로키와 약속한 대로 아이들이 자라면 이곳 무리를 떠나 진짜 자이언트 기러기들의 여행에 동참하도록 만들 것이다. 하지만 아직 날지도 못하는 이 아이들에게 지구의 자기장이나 기류, 별자리, 햇빛의 세기와 각도를 읽는 방법이나 세계지리, 공기저항을 줄이면서 최대한 바람을 타고 나는 방법 등을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철새는 북쪽의 추운 지방에서 여름을 보내며 새끼를 낳고, 남쪽의 따뜻한 지방에서 겨울을 보내기 위해서 일년에 두 번씩 길고 긴 여행을 하는 새들을 말한단다. 엄마의 고향이 바로 북쪽의 툰드라 지대고, 엄마의 원래 가족들인 자이언트 기러기들이 그렇게 매년 먼 길을 여행하는 철새들이란다.”

“왜 그래야 되죠? 이해가 안 가요.”


이번엔 큰 아들 피트였다. 가장 평안할 때 태어나서 그런지 마음이 여리고 순한 아이였다.


“지금으로서는 이해가 안 가는 게 정상이야. 나도 어렸을 때 너랑 똑 같은 질문을 했었지. 그때 나의 할머니께서 이 이야기를 들려주셨단다. 아주 아주 먼 옛날, 이 세상을 모두 지으신 큰날개님이 물과 땅과 하늘을 만든 다음에 많은 동물들을 만드셨어. 그런데 동물들이 새끼를 낳으면서 점점 수가 늘어나자 큰날개님 혼자서는 그들을 일일이 다 기억하고 돌보시기 힘들어졌단다. 그래서 물과 육지 하늘 모두를 두루 다닐 수 있는 정찰대가 필요하셨지. 큰날개님 대신 이 세상을 두루 여행하면서 보고 들은 것을 큰날개님께 보고할 수 있는 정찰대 말이야. 물에서 헤엄을 칠 수 있도록 발에는 물갈퀴를 달고, 땅 위에서 잘 걸어다닐 수 있도록 튼튼한 다리와, 하늘을 오랫동안 날아도 지치지 않는 튼튼한 날개를 달아 기러기들을 만드셨단다. 


큰날개님은 기러기들의 몸 속에 아주 특별한 시계와 나침반과 지도를 넣어두었기 때문에 언제 어떤 곳을 어떻게 가야 하는지를 배우지 않아도 자동적으로 알 수 있었고 길을 잃어도 별을 보고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었대. 큰날개님의 집은 달의 뒤편에 있었는데, 다른 새들과 달리 기러기들은 달의 뒤편까지 날아갈 수 있었고, 인간을 비롯해서 모든 동물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기러기들 중에서 지상의 호수에 자라는 맛있는 풀을 먹느라 여행의 시기를 놓치거나 약속한 때에 달의 뒤편으로 올라가지 않는 새들이 생겨났대. 지상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들의 날개는 약해지고 큰날개님의 목소리를 듣는 귀도 어두워졌을 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의 언어도 알아들을 수 없게 되고 말았대. 


하지만 모든 기러기들이 그런 건 아니었지. 유난히 큰 날개만큼이나 의리가 강했던 자이언트 기러기들만은 여전히 큰날개님이 그들을 지으신 대로 해마다 힘든 여행을 계속했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통해 큰날개님은 이 세상을 대신 보고 들으시며, 그들을 통해 이 세상에 씨앗들이 골고루 퍼지도록 하셔서 동물들이 굶주리지 않게 하신대. 그게 우리 자이언트 기러기들이 아직까지도 멀고 먼 거리를 해마다 여행하며 살아가는 이유란다. 알겠니?”


아이들은 흥미진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은 이 이야기가 자기들과 상관없는 전설 정도로만 들릴 것이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 여행을 반복하는 동안 점차 강인한 철새가 될 것이고, 그 삶에 익숙해질수록 이 이야기의 진실을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그럼 우린 아주 특별한 새들인 거네요?”


둘째 홍크가 두 손으로 손뼉을 치며 말했다. 피트와 토트도 모두 만족한 얼굴이었지만 아리만은 그렇지 못했다. 고개를 깊이 숙이고 눈을 감은 채 마치 아무것도 듣지 않은 척했다. 


“얘들아, 너희는 이제 자라면서 수많은 새로운 상황에 부딪히게 될 거란다. 그때마다 곁에서 도와주고 함께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어. 대신,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오늘 내가 들려준 이야기를 되새김질하기 바란다. 너희들의 몸 속에 숨겨진 시계와 나침반과 지도를 믿어라.  그러면 그걸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생겨날 거야.”


“엄마, 왜 그런 말을 해요? 어디 가세요?”


피트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는지 눈을 크게 뜨며 브리즈를 바라보았다. 그 순진무구한 눈을 바라보며 거짓말을 할 자신이 없었다. 브리즈는 대답 대신 아이들을 하나씩 하나씩 불러서 머리와 몸을 정성껏 쓰다듬어 주었다. 차마 내일 헤어져야 한다는 말을 할 용기는 생기지 않았다. 이대로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엄만, 잠깐 여행을 다녀와야 돼. 그러니까 그 동안 하이 아줌마와 일리 아저씨 집에서 지내도록 해.”


브리즈는 아리에게만 몰래 눈을 깜박거려 보였다. 다른 형제들에게 진실을 말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며칠 후면 그들도 알게 되겠지만 단 하루라도 슬픔을 미루어주고 싶었다. 

이전 05화 추방명령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