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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가 JaJaKa Jan 23. 2024

그들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2화

#2 명수



자주 찾던 공원에서 미숙을 만나기로 한 명수는 그동안 하고 싶었으나 하지 못한 말을 오늘은 어떻게든 하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지금 미숙은 명수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른 채 명수의 경찰공무원 최종합격을 축하해 주러 나오는 자리인 줄만 알고 있었다.      


명수는 진즉에 미숙에게 말하고 싶었으나 말하지 못한 그 말을 결국에는 입 밖으로 내뱉었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명수의 심장이 배 밖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미숙아, 우리 헤어지자. 나 너랑 헤어지고 싶어.”     


명수의 예상대로 미숙은 길길이 날뛰었다. 공원에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흘끗거리며 쳐다보아도 미숙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원래 미숙은 그랬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는 사람, 명수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 상태인지는 중요하지 않은 사람, 어떤 여자도 거들떠보지 않을 명수를 구원해 준 사람, 그게 바로 명수가 생각하는 미숙이었다.     


명수는 미숙에게 싸대기 몇 대쯤은 맞을 각오로 나왔다. 몇 대 맞고 헤어질 수만 있다면 공원에서건 길거리에서건 맞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명수는 정말 미숙과 만나는 동안 몸과 마음이 다 지쳐있었다. 그런데 미숙은 그걸 몰랐다. 아니 자기가 만나주는 것을 고마워해야지, 어찌 다른 마음을 먹을 수 있느냐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여자라 명수가 하는 말이 세상 무너지는 소리로 들렸을 것이다.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정말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별 볼일 없는 너를 내가 5년이나 기다리면서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더니 결국 돌아오는 게 이거니? 이 나쁜 놈아.”     


미숙의 말을 들어보면 그녀는 감히 명수 너 따위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해? 하는 뉘앙스로 들렸다. 

명수가 생각하기에 자기와 헤어지는 것이 슬픈 것이 아니라 그런 말을 명수인 자신에게 먼저 들었다는 것에 더 흥분하고 열받아하는 것 같았다. 


마치 헤어지자는 말을 해도 내가 해야지, 어디 네가 감히 먼저 말을 꺼내,라고 하는 듯이.   

  

미숙과 만난 5년이란 시간 동안 명수는 즐거웠던 시간보다 힘들었던 시간이 많았다. 그러나 말을 하지 못했다. 미숙 앞에 서면 기가 죽었고 늘 공시생 딱지를 떼지 못한 열등감이 명수를 주눅 들게 했다.  

    

말을 하고 싶었다. 정말 말을 하고 싶었다. 그전에 몇 번이나 말하고 싶었던 순간이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치고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왜 이제야 와서 얘기를 하냐고 하지만 명수는 이제라도 더 늦기 전에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이번에 떨어졌어도 나는 말을 했을 거야.”     


“네가? 떨어졌어도 말을 했을 거라고? 명수 네가?”     


코웃음을 치며 경멸하는 시선으로 명수를 쳐다보는 미숙의 눈빛을 대하자 명수는 숨이 막혀왔다.      


언제나 너는 나보다 못해, 네 까짓 게 어디,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워해야지, 하는 시선으로 미숙이 쳐다볼 때면 명수는 상대방을 무시하는 미숙의 눈빛을 피해 고개를 숙였고 명수 자신이 한없이 움츠러드는 것을 느끼고는 속으로 눈물을 삼켰다.     


“야, 이게 5년간 기다린 여자에게 할 짓이냐? 좆도 없는 놈을 5년이나 기다린 대가라는 것이 겨우 이거야? 나 이제 취업했으니 우리 그만 헤어져,라는 거냐고. 이 새끼야.”     


명수는 미숙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기분이 내키지 않거나 열받으면 나오는 입에 담기 민망하거나 거친 말들이 명수는 거북했고 너무나 듣기가 싫었다. 연애초반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언제인가부터 시작된 막 말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해갔다. 

미숙이 은근히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즐기는 것 같았고 그런 말이 마치 너보다는 낫다는 우월감을 뽐내는 것 마냥 명수에게는 비춰졌다.     


‘미숙은 진짜로 모르고 있던 것일까? 내가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었는지를? 내가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무엇인지를? 그녀가 툭툭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내 폐부를 찌른다는 것을? 그녀 앞에서 있다 보면 내가 얼마나 한심하고 능력이 없는 남자로 비춰지는 지를? 그녀를 만날 때마다 내가 얼마나 힘들고 불편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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