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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가 JaJaKa Jan 16. 2024

그들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1화

#1 미숙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정말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미숙은 오늘 아침에 일어날 때까지만 해도 명수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오늘 그녀는 한껏 기분이 들뜬 채 명수의 경찰공무원 최종합격을 축하해 주러 이 자리에 나왔는데, 그에게서 이런 얘기를 들을 줄이야......     


명수는 미숙이 울부짖으며 소리를 지르는데도 묵묵하게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너 경찰공무원 합격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나한테 헤어지자고 하는 이유가 뭐야? 말을 해봐. 말을 해보라고. 야, 내 말 안 들려? 왜 가만히 말도 없이 있는 거냐고.”   

  

공원을 걷던 사람들이 미숙과 명수를 흘깃흘깃 쳐다보며 지나갔다. 그들의 표정에서는 사랑싸움 한번 요란하게 한다고 하는 것이 느껴졌고 싸우려면 다른 데 가서 싸우지 왜 공원에 와서 저런대? 하는 표정도 언뜻 보였다.      


“별 볼일 없는 너를 내가 5년이나 만나면서 그동안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더니 결국 돌아오는 게 이거니? 이 나쁜 놈아.”     


명수는 늘 그렇듯 미숙의 눈을 쳐다보지 못하고 땅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서 이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것처럼.

미숙이 생각하기에 명수는 늘 그랬다. 뭔가 불리하거나 뭔가 켕기거나 뭔가 말하기 어려운 일이 있으면 미숙의 눈과 마주치지 못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있던 미숙이 벌떡 일어나 명수 앞으로 다가와 명수의 얼굴에 그녀의 얼굴을 들이밀었다.


“내 눈을 봐. 내 눈을 보라고.”     


미숙과 명수의 시선이 교차했다.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미숙의 눈빛과 미안함과 이제는 지쳤다는 명수의 눈빛이 서로를 응시했다.     


“말해봐. 도대체 왜 헤어지자는 것인지...... 마치 합격자 발표만을 기다린 사람처럼 딱 맞춰서.”


미숙의 닦달에 명수가 크게 숨을 내쉬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난 이제 지쳤어.”     


미숙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가 지쳤다는 거야? 시험 보느라 지쳤다는 거야? 뭐야? 도대체 무슨 말이야?”     


“나는 너랑 만나면서 내내 힘들었어. 이제 지쳐서 그 힘든 짓을 그만하려고 해.”     


미숙은 도대체 명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뭐? 나랑 만나는 내내 힘들었다고? 너랑 나랑 사귄 기간이 5년인데, 그럼 5년 내내 힘들었단 말이야? 말해봐. 그래?”     


명수가 푸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미숙은 명수가 저런 식으로 한숨을 내쉬는 것을 싫어했다.

그냥 말을 하면 되는데 꼭 저렇게 한숨을 내쉬면서 자기가 지금 힘들다는 것을 표시하려는 명수를 볼 때면 평상시에는 그렇게 한숨 좀 내쉬지 말라고, 정말 옆에 있는 나까지 기분이 처지잖아, 하고 냅다 소리를 지르고는 했다.      


맨날 지만 힘든 줄 알지, 세상사람 중에 힘들지 않은 사람 없는 줄을 모르고.    

 

“5년 내내는 아니지만 즐거웠던 시간보다 힘들었던 시간이 훨씬 길어.”     


미숙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얘가 뭐라는 건지, 도대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치 다른 나라의 언어를 듣는 것처럼.     


“그럼 왜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이제야 얘기하는 건데? 그렇게 힘들었다면 왜 진즉에 얘기를 하지 않고 공무원시험을 합격하고 나서야 얘기하는 건데? 왜? 일부러 합격하기만을 기다린 거야?”    

 

“아니야, 말하려고 했어. 공무원시험에 합격하든 하지 않던 이제는 말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어.”    

 

미숙이 살짝 흔들리는 명수의 눈빛을 보고는 가소롭다는 듯 입안에 맴돌던 말을 내뱉었다.      


“지랄하고 있네. 아마 이번에도 공무원시험에 떨어졌으면 아무 말도 못 했을 주제에.”     


미숙의 말에 명수가 고개를 들고 미숙을 째려보았다. 어디서 눈깔에 힘을 주고 나를 봐? 지금? 하고 미숙의 눈에서 레이저가 발사되는 것처럼 눈알을 부라렸다.      


‘좆도 없는 놈을 여태까지 기다렸는데, 진짜 별 볼일 없는 놈을 지금까지 기다렸건만, 주위에서 진즉에 다른 남자 만나서 결혼하라는 말을 들어도 어떻게든 명수가 번듯한 직장을 잡아 내가 지금까지 기다린 것이 헛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는데...... 경찰공무원 최종합격을 축하해 주러 나온 자리에서 지금 뭐? 헤어지자고? 지쳤다고? 그게 지금 5년이나 뒷바라지하며 기다린 나한테 할 말이니? 이 개만도 못한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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