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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가 JaJaKa Feb 13. 2024

그들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5화

#5 미숙



미숙은 집에서 맞선을 보라는 얘기를 들었다. 분명히 명수를 만나고 있는 것을 알면서도 미숙에게 맞선 얘기를 전하며 그녀의 엄마는 “아니 네 이모한테 너 만나는 남자가 있다고 말을 했는데도 글쎄 네 이모가 그런 얘기를 하는 거야. 정말 놓치기 아까운 상대라고 하면서, 남자가 안정된 직장에 번듯한 전셋집도 가지고 있다지 뭐니.”라고 말하면서 은근슬쩍 미숙의 눈치를 살피는 것을 그녀는 모르지 않았다.      


미숙의 부모님은 능력 없는 명수에게 그녀가 집착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았다. 대놓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언제까지 기다릴 생각이냐, 는 얘기를 돌려서 말하고는 했다.      


한 해가 지나갈 때마다 너 나이 먹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면서 여자 나이 금방이다, 남자랑 여자랑 나이 먹는 것을 똑같이 놓고 계산하면 안 된다, 고 하면서 네 의견이 가장 중요하겠지만 오래 산 사람들 의견 또한 무시하면 안 된다,라고도 했다.     


미숙은 명수에게 모든 것을 다 털어놓고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해가 바뀔 때마다 받는 스트레스는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나이를 먹어가는 것에, 부모님의 압박에, 주위의 우려 섞인 목소리에,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명수와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     


미숙은 혹시나 명수가 공부하는데 지장을 받거나 방해가 될까 봐 이런 얘기들을 다 하지 않았다. 명수는 이런 자기의 속 깊은 마음을 과연 알기나 할지. 그렇게 괜찮은 사람을 소개해준다는 것도 다 마다하고 일편단심의 마음으로 명수만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 또한 얼마나 힘든지 명수는 아마 모를 것이다.    

  

언제나 지만 힘든 줄 알고, 지만 힘든 것처럼 생각하니깐.     


“집에서 요즘 들어 압박이 심해. 언제까지 기다릴 거냐고 하면서 여자 나이 금방이라고 말을 해. 이모는 괜찮은 남자가 있으니 한 번이라도 만나보라고 성화이고. 요새 이래저래 힘들다.”


미숙의 얘기에 입을 꼭 다물고 있는 명수를 보고 있자면 은근히 부아가 치밀었다. 뭐라도 힘이 나는 얘기를 해주면 좋으련만, 입을 꼭 다물고 있는 명수의 모습은 마치 내 일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기다려줘, 반드시 내가 너 행복하게 해 줄 거야. 그동안 기다려준 거 다 보상해 줄게,라고 말해주면 좀 좋으련만. 테이블 위에 놓인 커피 잔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명수를 보고 있자니 마치 그녀가 목석에다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아 그녀도 모르게 목청이 커지고는 했다.      


“무슨 말이라도 해봐. 내 말 듣고는 있는 거야? 이럴 때 남자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니? 입만 꾹 다물고 있으면 다야? 무슨 남자가 책임감도 없고 자기 여자를 감싸거나 지켜준다는 그런 든든함이 느껴지지가 않니?”     


마지못해 명수가 입을 떼서 한 말은 실망스러운 말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 미숙이 네가 내키는 대로 하라는 말밖에. 내가 무슨 능력이 있다고.”     


기운 빠지는 명수의 말에 결국 미숙의 목소리가 커지고 말았다.     


“야, 너는 겨우 그 정도 말밖에 못 하니? 립 서비스라는 말도 못 들어봤어?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고 하잖아. 말이라도 좀 내 마음에 들게 해 주면 안 돼? 꼭 그런 식으로 맥 빠지는 말을 해야 하냐고.”   

  

명수가 고개를 들지 않은 채 낮게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겨우 이런 말 밖에 못해서.”   

  

미숙은 빽 하고 소리 지르고 싶은 것을 간신히 참아야만 했다. 처음에 연애할 때만 해도 이런 남자가 아니었는데 어쩌다 이렇게 변한 것일까? 처음부터 이런 남자인 것을 그때는 몰랐던 것은 아니었나? 이럴 때는 여자 마음을 붙들어주는 말 한마디라도 해주면 좀 좋은가 싶어 원망 어린 시선으로 고개를 숙이고 있는 명수를 째려보았다.     


‘야, 그거 아니? 너 때문에 내 목소리가 점점 더 커져가는 것을? 너 공부하는데 지장을 줄까 봐 그동안 말 안 하고 참았던 말들을 다 쏟아내면 정말이지 밤을 새우고도 남아. 너는 너만 시험 공부한다고 고생하는 거 같지? 나도 너 시험 합격시키려고 뒤에서 얼마나 노력하는 줄 아니? 지금은 시험 공부하느라 그런 것이 보이지 않겠지만 나도 힘들어. 정말 힘들다고. 도대체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몰라서 나도 답답해. 너만 답답하고 초조한지 알지? 나도 정말로 답답하다고. 답답해서 미치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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