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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가 JaJaKa Jan 30. 2024

그들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3화

#3 미숙



미숙은 자그마한 사무실에서 일했다. 직원 수가 열 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회사인데 회사규모만큼 월급도 많지 않았다.      


나이스한 사장을 기대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 일하는 회사의 사장은 괜찮은 상사라고 하기에는 거리가 멀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좀 별로였다.     

 

자수성가가 물론 대단하고 인정받을 만한 일이긴 한데 그녀의 회사사장은 자신이 자수성가한 것을 시도 때도 없이 떠벌리는 것에 지치 지를 않았고 자수성가하기까지 얼마나 알뜰하고 검소했는지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그럴 필요가 없는 상황에도 회사비품 하나하나까지 체크하면서 직원들이 조금이라도 낭비하는 꼴을 보지 못했다.      


미숙이 보기에 그건 절약이 아니었고 절약을 넘어선 자린고비 같아 보였다. 그러나 회사 내 그 누구도 사장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가 이 회사를 다니면서 딱 하나 좋은 점은 정시에 퇴근을 한다는 것이었다. 사장은 괜히 전기료나 기타 다른 비용이 더 나오게 늦게까지 남아 일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다. 아마 그녀 말고 다른 직원들도 정시 퇴근이라는 그 한 가지 메리트 때문에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것이라고 미숙은 생각했다.   

  

미숙은 정말이지 회사에 출근하는 것이 지긋지긋했다. 사장도 싫었고 그녀가 담당하는 일도 싫었고 회사분위기도 싫었다. 거기다가 박봉인 월급 또한 싫었다.      


그녀는 명수가 공무원 시험에 합격을 해서 취업에 성공을 하는 그날만을 손꼽아 기다렸다. 명수가 취업에 성공을 하면 바로 회사를 그만 둘 생각이기 때문이다. 이놈의 지긋지긋한 회사를 때려치우고 전업주부의 길을 가리라는 것이 미숙의 희망이었다.      


“나는 너 취업하면 바로 회사 때려치울 거야. 결혼해서 전업주부로 살아갈 거야.”     


미숙의 희망은 벌써 몇 년째 뒤로 미뤄져야만 했다. 정말 머리가 나쁜 건지, 시험 운이 없는 건지 명수가 시험을 보는 족족 떨어졌기 때문이다. 

웬만하면 붙을 때도 되었건만 이 길이 아닌지, 명수는 풀이 죽은 목소리로 불합격의 소식을 전했다. 어쩔 때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을 잇지 못할 때도 있었다. 

남들은 재수, 삼수에 거의 다 붙는다고 하는데 어찌 명수는 사수를 해도 되지가 않았다.      


정말 사수를 하고 나서도 시험에 낙방했다고 했을 때는 정말 진지하게 얘를 계속 만나야 하나, 하고 미숙이 잠시 동안 고민을 한 적도 있었다. 그동안 고운 정 미운 정이 들었는지 명수한테는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았지만.     


“얼른 취업을 해서 내가 회사를 때려치울 수 있게 해 줘. 정말이지 지긋지긋해서 더는 못 다니겠어.”     


“그런 말을 안 하면 안 돼?”     


“왜? 내 말이 어디가 잘못되기라도 했어?”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정말이지 너무 부담이 돼서 때로는 숨이 막혀.”     


“별 것도 아닌 거 가지고 숨이 막힌다고 하네, 참 나. 어디 무서워서 말도 못 하겠다.”     


미숙은 명수의 표정변화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뭐가 부담이 되고 숨이 막힌다는 것인지. 명수한테 물어보면 자기는 꼭 맞벌이를 원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면서 도대체 앞뒤가 안 맞는 저 반응은 무엇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지도 공부하는 것이 힘들고 시험 보고 결과를 기다리는 것이 힘든 것처럼 나도 회사생활을 하는 것이 힘들다고 남의 돈 버는 게 너무나 힘들다는 말을 왜 못 하게 하는지 미숙은 명수의 속을 정말 알다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시험에 계속 떨어져 공무원시험을 준비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명수는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미숙이 무슨 말을 하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만히 들을 때가 많았고 가끔가다가 겨우 몇 마디를 하고는 했다.      


미숙이 기운 내,라고 말해주어도 명수는 점점 침울해져만 갔다. 그래도 언제나 그의 곁을 떠나지 않고 옆에 있어 준 것은 바로 미숙이었다. 시험결과가 불합격일 때면 제일 먼저 달려가서 술을 사주며 위로를 해준 것도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미숙, 그녀 자신이었다. 

가끔은 명수가 그녀의 존재를 잘 모르는 것 같아 그에게 상기를 시켜주고는 했다.     


“정말 명수 너, 나중에 나한테 잘해야 한다. 세상에 나 같은 여자가 어디 있니? 안 그래? 시험에 떨어졌다고 바로 달려와서 술을 사주며 위로해 주는 여자가 세상에 어디 있냐? 너 그거는 잊지 말아야 한다. 잊으면 사람도 아니야.”     


이 말을 했을 때 평상시와 다르게 명수가 갑자기 소주잔을 테이블에다가 꽝, 하고 내려놓아서 미숙이 깜짝 놀랐던 일이 있었다. 그러고는 벌떡 일어나 미숙을 남겨 놓고 나가버려서 미숙은 화장실에 갔다 오려니 생각했는데 10분을 넘게 기다려도 명수는 돌아오지 않았다. 연락도 되지 않고 그냥 없어진 명수 때문에 미숙이 그날 남은 안주를 다 먹고 집에 가야 했다.      


‘땅을 파봐. 동전 하나 나오나. 돈을 벌어보지 못해서 돈 귀한 줄을 몰라. 어디 음식을 남겨두고 간 거래, 도대체가?’     


도대체 명수가 뭣 때문에 벌떡 일어나 나갔는지 그 후에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아마 시험에 떨어진 그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서 그런 행동을 보였던 것으로만 추측을 했었다.     


‘정말 나 같은 여자 없는데. 그걸 명수가 잘 알지 못하는 것 같아 때로는 명수에게 그것을 일깨워주고 싶다니깐. 요새 어느 여자가 명수 같은 남자를 계속 만나주겠냐고. 볼게 뭐가 있다고. 만날 때마다 술을 사는 게 누구고, 밥을 사는 게 누구고, 커피를 사는 게 누구냐고. 그리고 러브호텔에 들어가는 비용을 내는 건 또 누구인지 명수 걔가 가끔 잊을 때가 있어. 그래서 상기시켜 줄 필요가 있다니깐. 걔가 좀 빠릿빠릿하지 못해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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