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자작가 JaJaKa Feb 20. 2024

그들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6화

#6 명수



미숙은 본인이 다 명수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처럼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런데 명수의 생활비며 학원비, 고시원 방값은 시골에 계신 그의 부모님이 없는 살림에 아껴가며 매달 보내주고 있다. 앓는 소리를 하면서도 벌써 지금까지 몇 년째 그를 지원해주고 계셨다. 오직 아들의 합격소식만을 기다리면서.      


그런데도 미숙이 가끔 말을 하는 것을 들어보면 마치 본인이 다 명수의 뒷바라지를 한 것처럼 말을 하고는 했다.      


“야, 너는 나 아니었으면 지금까지 공부를 계속하지 못했을 거야. 그건 알지? 내가 물심양면으로 얼마나 너를 뒤에서 지원하고 있는지는?”     


“미숙이 네가 학원비를 내주거나 고시원 방값을 내준 적이 있던가? 왜 나는 기억이 나지 않지?” 


“어머, 얘 봐? 내가 저번에 시골에서 돈 부쳐주는 것이 늦어져서 내가 고시원 방값을 한번 내주었는데 그거 기억 못 하는 거야? 그리고 말이 나와서 말인데, 너랑 나랑 만날 때 쓰는 돈 그거 다 누가 내니? 그거 다 내가 내잖아. 밥 먹고 차 마시고 혹시 너 책이 필요하거나 그러면 내가 만난 김에 사주기도 하고 그리고 모텔비도 내가 다 내잖아.”     


“요즘에는 모텔에 거의 가지도 않잖아. 그리고 책은 거의 다 내 돈으로 샀어.”     


“어머, 얘 말하는 것 좀 봐. 내가 다 적어놨어야 했는데. 다 적어 놨어야 했어. 그동안 얼마나 많은 돈을 지출했는지 그 내역을 다 적어놓을걸. 만날 때마다 조금씩 돈을 쓰니깐 얼마 쓰지 않는 거 같지? 그것들을 다 모아 놓으면 엄청날걸?” 


명수는 미숙의 말에 꾹 참고 대꾸를 하지 않았지만 거의 목구멍까지 나왔다가 들어간 말이 있었다.     


‘사실 밥을 먹어도 네가 먹고 싶은 데로 갔고, 차를 마셔도 네가 가고 싶은 데로 갔고, 지금은 잘 가지 않지만 전에 모텔에 갈 때에도 네가 하고 싶을 때 간 거야. 언제나 모든 것은 네 위주로 돌아갔어. 왜냐고? 네가 물주니깐. 네가 물주로서 그렇게 하고 싶어 하고 내가 그렇게 따라주기를 바라니깐. 그래, 네가 책을 사 준 적이 있지. 네가 그날 웬일인지 기분이 좋아서 갑자기 책방으로 나를 데려가 책을 사주겠다고 했으니깐. 나도 그때 조금 놀라기는 했어. 마치 자주 책방에 가서 책을 사 준 것처럼 기억을 하는 것 같은데 사실 그런 일은 아주 드물었어. 그리고 너 그거 알아? 네가 돈 쓰면서 엄청 생색내는 거?’     


명수와 미숙이 만난 어느 주말 저녁에 미숙이 갑자기 명수가 야윈 것 같다며 몸보신을 시켜주어야겠다고 하면서 고기 집에 데리고 갔다. 명수가 평상시 양념고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것을 알면서도 미숙은 돼지갈비 집으로 명수를 데리고 갔다.      


자리에 앉아 큰 소리로 “여기 돼지갈비 2인분이요. 소주도 한 병요.”라고 외치는 미숙에게 명수가 말했다.     


“나 양념고기 좋아하지 않는데.”    

 

고개를 돌려 미숙이 안타깝다는 시선으로 명수를 쳐다보았다.     


“야, 양념고기가 얼마나 맛있는데 그래. 명수야, 네가 아직 양념고기 맛을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오늘은 내 말 믿고 먹어봐. 고기는 자고로 생고기보다 양념고기지.”     


“나 몸보신시켜준다고 데려온 거 아니야? 그럼 내가 좋아하는 거로 시켜야지.”     


“아 놔, 얘가 정말. 무슨 남자가 가리는 게 그리 많아. 주면 주는 대로 먹는 거지. 군대 갔다 온 거 맞아? 군대도 갔다 온 애가 뭘 이리 따지고 먹는 대? 요즘 당나라 군대라고 하더니만 그런가 보네. 하하하. 내가 맛있게 구워줄 테니깐 먹어봐. 정말 고기는 양념고기라니깐.”     


명수는 미숙의 말에 대꾸를 하고 싶지가 않았다. 양념고기보다 생고기를 좋아하는 것이 그가 군대를 다녀온 것 마저 인정받지 못하게 된 것 같아 더는 할 말이 없었다. 명수는 앞에 앉아서 콧노래를 부르며 고기를 굽고 있는 미숙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래 네가 돈을 낸다 이거지? 얻어먹는 주제에 어디 감히 감 놔라 배 놔라 하느냐는 거잖아, 지금. 그냥 주는 대로 시킨 대로 나는 그냥 먹으라는 거잖아. 차라리 몸보신시켜준다는 둥, 요새 많이 야위었다는 둥, 그런 말이나 하지 말지. 오늘 또 나를 우스운 사람으로 만드네. 정말 이대로 너를 계속 만나야 하나 싶다. 왜 내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너는 왜 나를 만나는 거니?’     


명수는 앞에서 돼지갈비를 맛있게 먹는 미숙을 보았다.      


“왜 안 먹어? 얼마나 맛있는데?” 하면서 뼈에 붙은 갈비를 뜯는 미숙의 모습을 보다가 이내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      


“오늘따라 돼지갈비가 입에 쫙쫙 붙는다, 붙어.”라고 말하는 미숙의 목소리에 명수는 말없이 앞에 놓인 소주잔을 비웠다.      


거의 혼자 2인분의 고기를 다 먹고 난 미숙이 볼록 나온 배를 두들기며 흡족한 듯 말했다.     


“아, 너무 배불러. 여기 양이 많은 거 같아. 배가 불러서 숨 쉬기가 힘드네. 명수 너도 맛있게 먹은 거지?”   

  

‘너는 내가 네 앞에 앉아서 소주잔만 기울인 거 보이지 않디? 너 혼자 처묵처묵 해놓고서 맛있게 먹었냐고 물어보는 건 무슨 심보야? 양념고기 좋아하지 않는 사람 데려다가 무슨 몸보신을 시켜준다고 하는 건지, 너를 정말 모르겠다. 2인분을 혼자 먹고 나니 배가 터질 것 같다고? 차라리 혼자 와서 먹고 가지, 나를 왜 데리고 온 거야? 먹는 모습 보여주고 싶은 거였니? 얼마나 잘 먹나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거였어? 만약에 그렇다면 내 대답은 이거야. 너 정말 잘 먹고 양념고기 좋아하는 것 같아. 다른 사람들은 탄 부분을 가위로 잘라내고 먹는데 너는 그런 것도 없이 그냥 먹더라. 아무리 돈이 아까워도 탄 부분은 몸에 안 좋다고 하는데 웬만하면 가위로 잘라내고 먹도록 해. 그건 아닌 것 같아.’






이전 05화 그들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5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