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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가 JaJaKa Mar 05. 2024

그들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8화

#8 명수



명수는 미숙의 신신당부도 있고 해서 오늘은 면바지에 폴로셔츠를 입고 데이트를 하러 나왔다. 특별히 신촌에서 보자고 해서 일부러 더 신경을 써야 했는데 그런 모든 것들이 사실 명수에게는 다 귀찮았다.      


지금 그가 이렇게 차려입고 다닐 때가 아닌데 다른 사람들은 지금도 머리를 푹 숙이고 책과 씨름을 하고 있을 이 시간에, 옷 입는 거에 신경을 쓰고 걸어서 갈 수 있는 곳도 아닌 지하철을 타고 한참이나 와야 하는 이 장소에서 왜 만나자고 하는 것인지 시간이 아깝기만 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생각하면 이번만큼은 꼭 어떻게든 합격을 해야만 했다. 얼마 전 엄마와의 전화통화에서 힘에 부친다, 는 얘기를 하면서 울먹거리는 엄마의 목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하기만 한데 지금 데이트랍시고 공부는 하지 않고 신촌으로 나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명수는 정말 한심하게 느껴졌다.     


신촌에서 만난 미숙은 명수에게 맛있는 집을 추천받아서 일부러 여기에서 만나자고 했다면서 그 식당으로 명수를 안내했다.      


미숙의 손을 잡고 밥을 먹으러 가기 위해 길을 걸어가던 명수는 어느 순간 자신의 손이 팽개쳐진 것을 느꼈다. 미숙이 잡았던 명수의 손을 뿌리치고 앞으로 쑥쑥 걸어 나갔다. 갑작스러운 일에 당황한 명수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앞으로 걸어가는 미숙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왜 갑자기 손을 뿌리친 거지?     


미숙은 몇 미터 앞에서 걸어오는 어느 중년의 여성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니, 미숙씨, 신촌에 어쩐 일이야?”     


“볼일이 있어서 나왔지요. 그러는 김 여사님은 어쩐 일이세요?”     


“나야 오늘 모임이 있어서 나왔지. 조기 앞에 있는 한정식 집에서 모임이 있거든. 그나저나 요새 왜 문화센터에는 잘 나오지 않는 거야? 그만둔 거는 아니지?”     


“그만두다니요. 요새 일이 있어서 나가지 못했는데 이제 슬슬 다시 나가야지요.”     


“진짜? 그럼 다음 주에는 문화센터에서 볼 수 있는 거야?”     


“네, 별일 없으면 나갈 거예요.”     


“그래, 알았어. 요새 사람들이 많이 줄어서 썰렁하기가 이루 말할 수 없어. 미숙씨라도 나와서 분위기 좀 띄워줘.”     


“네에, 알았어요.”     


“그래, 그럼 볼일 잘 보고 나는 그만 갈게. 다음에 봐.”     


그 중년여성이 저 멀리 사라진 다음에야 미숙이 명수에게 다가왔다. 다가와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명수에게 말했다.     


“어서 가자. 배고프다.”     


미숙이 명수의 손을 잡으려고 손을 내밀었을 때 명수가 그런 미숙의 손을 뿌리쳤다.     


“너 아까 내 손을 왜 내팽겨 친 거야?”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말하는 미숙은 진짜 몰라서 되묻는 것일까?     


“아까 아는 아줌마 만났을 적에 왜 갑자기 내 손을 내팽겨 쳤어? 쪽 팔려서 그랬어? 그 아줌마한테 나랑 손잡고 걸어가는 것을 보여주기가 조금 그랬던 거야?”     


“왜 그래에에. 어서 밥 먹으러 가자. 별일도 아닌 것 가지고 길거리에서 이게 뭐야.”    

 

명수의 자존심이 상한 것은 보이지 않는지 미숙은 별것 아닌 일에 명수가 속 좁게 군다는 듯 반응을 했다.  

   

“나랑 같이 문화센터 다니는 아줌마인데 입이 조금 가벼운 여자야. 그래서 그런 거야. 괜히 문화센터에다가 이상한 얘기를 하고 다닐까 봐.” 


“이상한 얘기? 무슨 이상한 얘기? 미숙이가 만나는 남자를 우연찮게 길거리에서 보았는데 그냥 그렇더라, 하고 말할까 봐?”     


“왜 억지를 쓰고 그래.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이상하네. 괜히 열등감에 그런 소리 하는 것 아냐?”    

 

“뭐? 내가 괜한 열등감에 이런 말을 하는 거라고? 너 정말?”     


명수의 얼굴이 붉게 물들어 가는 것은 보이지 않고 길거리에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얼굴표정만 보이는지 미숙이 명수의 소매 자락을 잡아끌었다.     


“사람들이 보잖아. 쪽팔리게 여기서 이러지 말고 어서 가자.”     


“너는 나보다 길거리에 다니는 모르는 사람들이 더 중요하고 신경 쓰이나 본데, 너 사람 이렇게 대하는 거 아니다. 네가 얼마나 잘났는지 모르지만 그리고 내가 얼마나 못났다고 생각해서 이러는지 모르지만 이러는 거 아니야. 이러는 거 아니라고.”     


명수는 뒤로 돌아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지금 이 마음 같아서는 미숙과 더 이상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 등 뒤에서 미숙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어디 가, 어서 돌아오지 못해? 야, 어디 가냐고? 이런 밴댕이 소갈 딱지 하고는. 남자가 능력이 없으면 마음이라도 넉넉해야지, 왜 저래 정말.”     


‘나보고 밴댕이 소갈딱지라고? 그게 할 소리인가? 아까는 미안했어, 나도 모르게 순간 손을 뿌리쳤네, 하고 말을 해주었다면 아마 그냥 넘어갔을지도 모르는데 어쩜 너란 여자는 그렇게 나를 무시할 수가 있니? 너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렇지가 않아. 나는 상처 입었고, 무시당했다고 생각했고, 정말이지 기분이 엿 같았다고. 근데 너는, 너란 여자는, 나한테 능력이 없으면 마음이라도 넉넉해야지, 왜 저러냐고? 꼭 그런 식으로 말을 해야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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