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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가 JaJaKa Mar 12. 2024

그들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9화

#9 미숙



미숙은 오늘 명수에게 대학교 때 친구 결혼식이 있어서 거기에 가기로 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이모가 거듭 괜찮다고 말한 남자를 만나러 왔다. 도대체 어떤 남자이기에 귀에 딱지가 생길 정도로 괜찮다고 말하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엄마가 딱 한 번만 부탁이니깐 만나보라고 하도 성화를 해서 나오게 되었다.      


오늘 맞선을 보는 남자는 미숙보다 다섯 살이 많은 남자였다. 다섯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 막상 만나보니 열 살은 넘게 차이가 나는 것처럼 보였다. 머리 윗부분에 머리카락이 거의 남아 있지 않은 남자는 나이보다 훨씬 더 들어 보였다.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어보니 사람은 나쁘지 않아 보였고 인상도 순해 보였지만 뭔가 거리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불과 다섯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좋아하는 거나 취미를 들어보면 마치 50대와 대화를 나누는 것만 같았다.      


삼십 평대 아파트에서 혼자 전세로 살고 있었고 직장은 누구나 알만한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이삼 년 안에는 자기 소유의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그 남자의 말은 경제적으로 안정되어 있는 남자에게서 풍기는 여유가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저녁을 사고 싶다는 그를 따라 평상시에는 비싸서 가지 못하는 한우갈비 집에 가서 미숙은 양껏 고기를 먹었다. 솔직히 명수 생각이 전혀 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미숙은 떳떳했다. 차를 한잔 마시고 밥 먹은 게 다인데 미숙이 떳떳지 못할 게 없었다.      


하도 이모가 괜찮다고 하고 엄마가 성화를 해서 나오기는 했지만 미숙이 원하는 스타일이 아니고 다음에 다시 만나고 싶은 생각이 없는 상대가 사주는 고기를 좀 얻어먹는 것이 무슨 양심에 찔릴 일이라고.     


만약에 맞선남이 머리숱이 많은 사람이고 대화가 조금만 더 통하는 상대였다면 미숙은 어땠을까.    

  

어쩌면 그녀의 마음이 살짝 흔들렸을 것이고 다른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가정이고 실제로 일어날 일은 없는 거였다. 이모가 말한 대로 그렇게 괜찮은 남자였다면 이미 누군가가 벌써 채갔을 것이고 미숙에게 기회가 오지 않았을 거란 것이다.      


그날 저녁 맞선남과 헤어지고 집에 돌아와 명수와 전화통화를 했다.     


“공부 열심히 하고 있었지? 나야 결혼식에 잘 다녀왔지. 너는 잘 모르는 친구라니깐 그러네. 애들이 나보고 너는 언제 가냐고 묻는데 대답하기 곤란해서 얼버무리느라 고생한 것만 알아줘. 친구 이름이 뭐냐고? 글쎄, 네가 잘 모르는 애라니깐. 하여간 나는 피곤해서 씻고 잘 테니깐 너는 다른 생각하지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해. 올해가 마지막이다,라고 생각하고 말이야. 이제 네 뒤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어.”     


‘명수 얘가 물어보는 게 뭔가 아는 것처럼 물어보네? 걔가 알 리가 없지. 근데 굳이 친구 이름이 뭐냐고 집요하게 물어보는 것이 평상시와 달라서 조금 당황하기는 했네. 공부나 열심히 해서 시험이나 붙을 생각을 하지 뭐 그리 궁금한 게 많아, 많기는. 근데 생긴 걸로 봐서는 그래도 아까 맞선본 남자보다 우리 명수가 훨씬 낫긴 해. 그 남자는 머리가 벗어지고 너무 나이가 들어 보여서 전혀 마음이 끌리지가 않아. 하여간 우리 명수가 얼른 시험에 합격해야 할 텐데. 그래서 나를 그만 기다리게 하고 어서 좀 데려갔으면 좋겠는데, 어서 좀. 주위에 친구들이 하나둘씩 다 가는데 이러다가 내가 꼬래비가 되겠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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