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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가 JaJaKa Apr 02. 2024

그들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11화

#11 미숙



명수의 최종합격 발표가 있는 날 아침, 미숙은 일이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혹시나 명수에게서 올지도 모를 연락을 기다리느라 아침나절부터 맡은 일을 하면서도 시선은 휴대폰에 가 있었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미숙의 마음은 더 초조해져만 갔다.      


이번마저 명수가 풀이 죽은 목소리로 절망에 가득 찬 소식을 전한다면 미숙은 명수와 헤어질 생각을 했다. 어젯밤에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아 명수와의 관계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을 했다. 거의 한숨도 자지 않고 고민 끝에 미숙이 내린 결론은 이번마저 명수가 시험에 떨어지면 더 이상의 기대를 갖거나 미련을 두지 않고 명수와의 관계를 이쯤에서 끝내자, 하고 결론을 내렸다.      


미숙은 충혈이 된 눈으로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손으로는 자판을 두들기지만 온 신경은 휴대폰에 쏠려 있었다. 문득 아침에 출근을 하려고 신발을 신을 때 그녀의 엄마가 한 말이 떠올랐다.   

  

“미숙아, 올해까지 만이다. 올해도 안 되면 걔는 안 되는 거야. 더 해봤자 안 되는 거라고. 그러니 너도 더 나이가 들기 전에 네 짝을 찾는 게 나아. 네 친구들은 다 하나둘씩 제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고서 잘 살아가는데 너는 언제까지 기다릴 건데. 이번에도 안 되면 미련 없이 그 애는 정리하고 이모가 소개해준 그 남자를 다시 한번 생각해 봐. 머리숱이 좀 적으면 어때. 머리숱 뜯어먹고 살 것도 아닌데. 엄마가 살아보니깐 남자는 뭐니 뭐니 해도 경제력이 있어야 해. 가족들 굶기지 않을 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엄마 말 허투루 듣지 말고 잘 생각해 봐.”     


미숙은 정말이지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명수가 합격만 한다면야 이 지긋지긋한 직장도 때려치우고 그동안 기다린 시간과 고생이 헛되이 되지 않고 모든 걱정이 끝날 것 같은데. 그런데 만약에 명수가 이번에도 떨어진다면 그때는......     


미숙이 기다리다 지쳐 명수에게 전화를 걸려고 휴대폰으로 손을 뻗는데 휴대폰 벨이 울렸다. 미숙은 순간 깜짝 놀라 내밀던 손을 중간에 멈춘 채 잠시 동안 벨소리를 들었다. 마치 남들 몰래 음식을 숨겨 놓고 하나씩 꺼내 먹다가 들킨 사람처럼 심장이 벌렁거렸다. 발신자에 명수의 이름이 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지금 통화 가능해?”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명수의 목소리 톤으로는 합격여부를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기쁜 목소리도 절망한 목소리도 아닌 낮게 깔린 그의 목소리에 미숙은 숨을 죽여야 했다.     


“어. 어, 어떻게 됐어?”     


미숙이 긴장해서 떨리는 목소리가 자신의 귀에까지 들리는 것만 같았다.     


명수가 아주 잠시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서 미숙은 혹시나 하는 생각에 숨을 훅하고 들이마신 채 내뱉지 못하고 멈추어 있어야 했다.     


“합격했어.”     


“합격했다고? 정말? 와아, 축하해. 정말 축하해. 어머, 이게 꿈이야 생시야?”   

  

미숙은 너무나 기쁘고 흥분을 해서 합격했다고 말하는 명수의 목소리가 낮게 깔린 것을 잊고 말았다.     

 

“나 여기저기 전화할 데가 많아서 일단은 끊을게.”     


“그래, 알았어. 정말이지 믿기지가 않네. 고생한 보람이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사실 아침부터 내내 안절부절 하지 못했거든. 마치 내가 합격한 것처럼 흥분이 가시지를 않네. 참, 이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화를 해야 한다고 했지? 그래, 시골에 계신 부모님에게도 얼른 알려드려. 정말 좋아하실 거야. 소식 전하면서 내가 그동안 옆에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고 은근슬쩍 얘기해 주는 것 잊지 말고. 하여간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하자.”

  

“그래”     


미숙은 합격을 했다는 소식에 지나치게 흥분을 한 나머지 명수의 목소리가 합격을 한 사람의 목소리치고는 너무 건조하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제 그녀는 이 지긋지긋한 회사를 때려치울 수 있고 별 볼일 없는 남자를 5년이란 시간 동안 기다리며 지고지순한 사랑을 완성한 여자로서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결혼식을 올린 다음 현모양처로 살아갈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니 저절로 입이 헤벌레 하게 벌어졌다.  

   

‘시험은 명수가 보았지만 그 뒤에서 명수 못지않게 노력한 나의 공을 주위의 사람들이 알아나 줄까 몰라. 마치 명수 혼자 시험 봐서 된 것처럼 생각하면 안 될 텐데. 명수의 부모님도 대단하시지만 나도 대단한 여자라는 것을 명수가 알아서 주위에다가 말해주고 다니면 참 좋을 텐데. 명수가 그런 센스가 있나 모르겠네. 그나저나 오늘 당장 만나야 하나? 파티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야? 근데 남들한테 오수 끝에 합격했다고 하면 비웃을 거야. 무슨 대단한 고시 준비한 것으로 알고 웃을지 몰라. 남들이 뭐라 하던 정말이지 힘들게 합격했네. 합격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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