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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작가 JaJaKa Mar 26. 2024

그들은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10화

#10 명수



명수는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주말 중 하루는 미숙과 만나고는 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이번 주에 친구 결혼식이 있는 것을 깜빡했다면서 친구 결혼식에 가야 해서 못 만날 것 같다는 얘기를 미숙에게 들었다.      


명수는 늘 만나던 날, 만나던 시간에 밖에 나가지 않고 책상에 앉아서 책을 보려니 이상하게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집중이 되지 않았지만 달리 딱히 할 것도 없어서 멍하니 책을 보고 있던 명수의 휴대폰이 울렸다. 아는 선배한테 온 문자메시지였다.     


-야, 명수야. 공부하느라 바쁘지? 그래도 간간히 쉬어주면서 해야 능률도 오르는 거야. 오늘 특별한 일 없으면 내가 밥 한 끼 사줄까 하는데 시간 어떤지 연락해 줄래?     


명수는 휴대폰의 모니터를 쳐다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공부도 되지 않는데 두어 시간 정도 바람 쐬고 오면 오히려 집중력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선배에게 답장을 보냈다.   

 

-두어 시간이면 괜찮을 것 같은데 어디로 나가면 돼요?   

  

선배가 만나자고 한 곳은 명수가 평소에 지내는 영역에서 벗어난 지역으로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었다. 

기가 막히게 맛있는 집으로 안내를 하겠다는 선배를 따라 걷던 명수의 눈에 웬 낯선 남자와 걸어가는 미숙의 모습이 보여서 순간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미숙은 오늘 친구 결혼식에 가야 해서 명수와 만날 수 없다고 했는데 이 시간에 왜 이곳에 있는 것인지, 거기에다가 저 낯선 남성은 누구인지, 명수는 걸어가는 두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저기 선배, 잠깐만요. 여기서 아주 잠깐만 기다려 줄래요? 내가 아는 얼굴을 본 것 같아서 잠깐 확인 좀 하고 올게요. 미안해요.”     


“어? 뭐? 누군데? 나도 아는 사람이야?”     


“선배는 잘 모르는 사람이에요. 5분만 기다려주세요. 미안해요.”     


“길거리에 나 너무 오랫동안 방치하면 안 된다, 알았지? 얼른 와야 한다.”     


선배의 농담에 명수가 살짝 미소를 짓고는 미숙과 그 낯선 남자가 걸어간 길을 조용히 뒤따라  갔다. 몇 분 정도 걷던 그들은 어느 근사해 보이는 한우갈비 가게로 들어갔다. 걸어가면서 팔짱을 낀다거나 하지 않고 두 사람의 걸어가는 자세로 보았을 때 명수는 두 사람이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오늘 소개팅을 했거나 어쩌면 두 번째 만남을 가지는 것으로 보였다.     


남자가 머리숱이 거의 없고 머리가 벗어져서 그런지 명수가 언뜻 보기에 나이가 많아 보였다. 돈은 잘 버는지 그들이 들어간 가게는 현재의 명수로써는 감히 꿈을 꿔 볼 수 없을 만큼 비싸 보이는 음식점이었다.     

 

두 사람이 들어간 가게 앞에서 명수는 잠시 동안 서성였다. 이대로 돌아서서 선배한테 가느냐, 저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서 미숙과 그 남자가 앉은자리로 돌진하느냐.     


명수는 힘없이 돌아서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선배에게 뛰어갔다. 

미숙을 향한 배신감, 못난 자신에 대한 한심함,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안정되어 보이는 그 남자에 대한 부러움, 야, 여기서 뭐 해? 이 남자는 누구고?라고 당당하게 말하지 못하고 돌아서야 하는 자신의 나약함, 이렇게 살아야 하는 가에 대한 비관적인 감정이 가슴 한 구석에서 솟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아 명수는 다리에 힘을 주고서 더욱더 빨리 내달렸다. 


그날 저녁 미숙과 전화통화를 한 명수는 미숙에게 지나가는 말로 오늘 결혼한 친구가 누구냐고 이름이 뭐냐고 물었지만 미숙은 명수가 모르는 애라고만 하며 은근슬쩍 넘어갔다.


“내가 이름을 모르는 대학 친구가 있나 싶어서 그렇지. 결혼식은 어디서 했어? 신혼여행은 어디로 간대? 남자는 뭐 하는 사람이래?”     


“야, 명수야. 지금 네가 그런 거 관심을 가질 때니? 올해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공부, 또 공부를 해서 어떻게든 올해는 합격을 해야 할 것 아냐. 친구들이 너는 언제 가냐고 물어봐서 내가 대답하기가 얼마나 곤란했는지 알아?”     


“왜 말해주기 곤란해서 그래?”     


명수의 집요한 질문에도 미숙은 끝까지 시치미를 뗐다.      


“곤란할 게 뭐가 있어. 그것보다 너는 지금 다른데 신경 쓰지 말고 오직 시험에 붙을 생각만 하라고 일부러 말을 안 해주는 거야. 올해가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죽을힘을 다해서 공부해야 해. 알았어? 나는 너 하나 믿고 이제나 저제나 너만 바라보고 있다는 것만 알아주고. 하여간 나는 나갔다 왔더니 피곤해서 씻고 좀 자야겠어.”     


‘미숙은 오늘 만난 남자를 어떻게 생각할까? 지금 저울 중인가? 누구를 선택할지 지금 심각하게 고민 중인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 경제력이냐, 젊음이냐. 미숙은 내가 오늘 그녀를 본 것을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았어. 시치미를 떼고 끝까지 친구 결혼식에 다녀왔다고 하는 미숙의 말을 듣는데 순간 배신감이 밀려오네. 나에게 거짓말을 하고서 다른 남자를 만나고 들어온 날 나한테 오직 공부만 열심히 하라며 나만 믿고 나만 바라보고 있다는 그녀의 말이 신뢰가 가지 않고 가식처럼 느껴져서 왠지 기분이 꿀꿀하면서 씁쓸한 것 같아.’     


명수는 고시원 옥상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통화가 종료된 휴대폰을 멍한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명수는 순간 미숙에 대한 신뢰와 믿음에 조금씩 금이 가는 것이 느껴졌다. 우울한 마음에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는데 오늘따라 하늘에는 별조차 보이지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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