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5-077
1
언젠가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나는 명란젓을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방송을 보다가 그랬던 것 같다. 화면 안의 사람들이 명란젓을 먹고 있어서 툭 내뱉은 말이었다.
얼마 뒤 식탁에는 명란젓이 올라왔다.
그 명란젓을 다 먹고 또 어느 정도의 시일이 지나자 다시 식탁에 올라왔다.
이제는 간간이 사다가 반찬으로 올려주신다.
자주 많이 먹고 싶었던 것보다, 그냥 어떤 맛인지 궁금했을 뿐인데 "맛있다."라는 내 감탄을 들으신 후로는 그렇게 간헐적으로 사다가 내어주신다. 감사할 따름이다.
2
어제저녁 식사때 어머니는 명란젓에 참기름을 부은 후 깨를 뿌려서 내어주셨다. 나를 위한 것이라는 듯 내 밥그릇 앞에 놓아두셨는데 식사를 시작하자 아버지가 그것을 슥 가져가셔서 당신 그릇 앞에 두셨다.
"이게 뭐냐? 뭔지 모르겠지만 깨가 뿌려져 있네. 너는 안 먹지? 이게 뭔지 모르겠네."
아버지는 내가 팔을 뻗어도 닿지 않을 지점에 명란젓을 놓아두고 그렇게 모르쇠 하셨다. 명백히 장난이셨다.
"그게 뭔지 알고 계신다,에 백만 원 겁니다."
아버지 어머니, 푹 웃으셨다.
그렇게 두 분이 웃으시는데 마냥 내 기분이 좋았다.
3
내 대꾸가 재미있기 보다, 아버지의 장난에 당황하지 않고 대응하는 것 자체가 '어린 것이 기특하다.'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부모에게 자식은 항상 아이라더니, 아무래도 나 역시 그런가 보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애교를 부려볼까도 생각했다.
이케, 이케, 일 드허귀 일은 귀요미, 이 드허귀 이는 귀요미....
그러나, 져니는 채신머리없는 사람이 아니다. 애교는 그만하겠다.
다 내가 침착하고 차분하고 진지하며 믿음직스럽고...
그만하라고? 흠.. 날 알면, 정말 채신머리가 있고 진중한 사람이라는 걸 느낄 텐데... 음? 그만하라고, 알았다.
근데 나 정말 채신머리 있고.. 밥도 잘 먹고... 음, 알았다. 그만하겠다.
4
작은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게 기쁘다.
부모님의 배려와 농담은 작은 일화였지만 밝은 행복이었다.
불빛이 큰 방안을 채우듯, 자잘한 행복은 내 안을 가득 채운다.
잔잔하고 부드럽게 따뜻함도 번진다.
고민도 있고, 마감 스트레스도 받지만 그래도 일상이 기쁜 건, 작고 밝은 일들이 있어서이다.
그래서 아무래도 나는 사는 게 즐거운 것 같다.
5
그리고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는데, 나 채신머리가 있고 진중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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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은 자는 멀리서 행복을 찾고,
현명한 자는 자신의 발치에서 행복을 키워간다.
-제임스 오펜 하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