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배져니 Feb 22. 2020

소고깃값

시즌6-024




1


어머니는 하루 종일 바쁘시다가 저녁 식사 이후에는 한없이 한가해지시는데 그 증거로 저녁 드라마들을 섭렵하시듯 시청하시는 것을 볼 수 있다.

매일 저녁, 어머니가 드라마를 보실 때 손에 뜸을 올려드린다.

햇수로 3년째다. 처음에는 귀찮아하시던 어머니도 이제는 손이 따끈해지며 노곤노곤 나른해지신다며 좋아하시는 눈치시다.

뜸을 뜨는 데에는 약 25분 정도 걸린다. 져니에게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늘 25분을 할애해서 어머니 손에 뜸을 올려드렸다.





2


어느 날, 그날도 어머니 손에 뜸을 올려드리는 중이었다. 

어머니가 드라마를 보시다 말고 져니를 유심히 살펴보다가 물어보셨다.


"매일 하려니까 귀찮지?"


져니는 그 순간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는 순간임을 직감했다. 

딱히 잘못한 게 없기에 그래서 어쩌면 천 냥 종잣돈이 생길 수도 있는 터였다. 

근데 안타깝게도 딱히 생각나는 감동적인 말이 없었다. 져니는 입을 열었다.




3


"무슨 말이 듣고 싶으셔서? 그 말씀에 적합한 정답은 '아니요, 사랑하는데 이 정도쯤이야.' 뭐 이런 대답(을 원하셨어요)?"


어머니는 푸훗 웃으셨고, 져니도 웃었다.

앞 뒷말 빼고 '사랑하는데 이 정도쯤이야.'만 말했어야 하는 걸 알았지만, 이런 순간들마다 져니는 주변머리 없이 꼭 농담처럼 받아친다.




4


어쨌거나 져니가 2~3년 동안 꾸준히 저녁마다 떠드렸더니 어머니는 좋아하신다.

뜸의 효능도 이유이겠지만 어쩌면 끈기 있는 태도로 임하는, 딸내미의 한결같은 봉사가 마음을 기쁘게 해서 좋아하시는 것도 같다.

그래서인지 대우가 달라졌다.




5


2년 전까지 어머니는 농담반 진담반 "돌팔이"라고 하셨는데 이제는 농 반 진담 반 "선생님 고맙소."라고 하신다.





6


핫핫핫핫!(목젖 보이는 웃음)




7


어제 져니, 기상해서 밥 찾아 먹으려고 주방으로 가서 냉장고 뒤지고 있으니 어머니가 나타나셔서 소고기 구워서 내주시고  홀연 사라지셨다. 램프의 요정인 줄.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무래도 내가 몇 마디 말로 천 냥은 못 벌었어도 소고깃값은 벌었나 보다.



8


으흐흐흐 흐~(참는데도 입술 사이로 흘러나오는 웃음)




9


요 며칠, 웃을 일이 없었다가 어머니 덕에 여러 번 웃고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어제도 이 순간도 "오~해피 데이~!"



--------------------------------------------------------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감기 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