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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May 01. 2021

자잘한 이야기 24

시즌6-085



1


얼마 전까지 창밖으로 노란 개나리꽃이 보였는데 어느덧 그 자리에 초록 잎이 무성한 덤불이 자리하였고 그 주변도 온통 초록 일색이다.

초록빛이 슬쩍 연두 연두 한 빛을 띠어 잎들이 곱고 산뜻해 보인다.



2


집에만 계속 있었더니 바깥 날씨가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는 옥상 텃밭에 고추 모종을 심을까 말까를 고민하신다.

말씀을 들어보니, 밤 온도가 10도로 내려가면 고추 모종이 냉해를 입는다며 요즘 밤이 추워서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그러나 저쪽 집 누구 씨와 이쪽 집 누구 씨는 모종을 벌써 심었다고, 며칠 내로 우리도 모종을 심어야겠다고... 뭐 그런 말씀을 하신다.

팔도 무릎도 안 좋으시면서 기어이 올해도 텃밭 농사를 지으실 모양이다.

하여튼 우리 집 김 여사님 부지런하신 거 알아드려야 한다니까.




3


아버지가 애음하시는 막걸리가 있다. 맛도 있고 가격도 적절해서 우리 식구들이 자주 마셨다.

저번에 막걸리를 사러 갔을 땐 한 병에 1400원이던 막걸리가 이번에 1800원으로 가격이 급상승해있었다.

아버지는 '이럴 수가 있느냐, 100원 200원도 아니고 400원이 올랐다니. 한 번에 30%나 올리다니 심하잖아.'라 시며 개탄을 하시는데, 그간 아버지 옆에서 술 상대해드리며 한 잔 두 잔 얻어마셨던 나도 왠지 안타깝고 더 애음하고 싶은 소비자로서 가격 상승이 섭섭하기까지 했다.

예전 같으면 '안 마시면 되지.'라고 생각하고 말았을 내가 '섭섭해'라고 생각하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나는 술맛을 아는, 더불어 취하는 기분의 유익함을 아는 어른이 된 것 같다.

어쨌든 30% 인상은 좀 너무하다.




4


새 노트북이 생겼다. 

오빠에게 중고로 하나 알아봐달라고 부탁했는데 저렴한 미개봉 신품을 알아봐서 오빠가 직거래해서 받아왔다. 주 중이라 오빠는 내가 있는 본가로 올 수는 없었다.

저녁에 오빠는 별문제 없는지 개봉한다며 당시 현상황을 촬영하여 보냈는데, 기쁨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 졸렸다. 그때가 깨어있는지 23시간쯤 되었을 때라 심히 피곤했었다. 그래서 오빠가 초기 설정을 한참 하고 있을 때 나는 '오빠만 믿어. 난 이만 잘게.'라고 메시지를 보내고 자려니까 오빠가 문자를 하나 보내왔다.


-내 꺼 하냐?-


상당히 비딱하면서도 어퍼컷을 날리는 핵심 어구라서 웃음이 나고 말았다.

오빠는 사진으로 초기 설정 과정을 다 보여주고 비밀번호 설정과 계정 만든 것들을 알려주며 마지막으로 문자를 보내왔다.


-끝. 자.-


알아봐달라는 말 한 마디에 며칠을 검색해서 알아봐 주고 내 의견 수렴해서 골라주고 판매자와 연락해서 직거래해서 받아온 뒤 시스템 확인까지 다해주고.

이런 오빠 어디 없지 싶다. 고마웠다.

아직 받아본 건 아니지만 앞으로 수년을 함께할 내 반려 물품이 생긴 게 확실하니 그것도 정말 기분이 좋고 말이다.

오빠가 언제 집에 올지 모르겠는데, 오빠가 오는 날이 당첨된 복권 상금 받는 날을 기다리는 양 즐겁다.

아아.. 기뻐 부러~~.




5


모든 것이 좋은 나날이었다. 막걸리 가격 인상 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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