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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져니 Jun 26. 2021

자잘한 이야기 30

시즌6-093






1


사과 와인을 땄다.

어버이날에 아버지 마셔보시라고 사드린 건데,

그간 백신 맞으신다고 쉬시고 백신 맞았으니 쉰다고 하시며 절주하셨다.

그러다 드디어 이젠 거뜬하다고 생각하셨는지 마시자고 하셨다.

며칠 전부터 이날을 위해 냉장보관하던 사과 와인을 가져왔다.

와인 병따개로 마개를 빼고 콸콸 잔에 따랐다.

그리고 마셨다. 평은 나뉘었다.

아버지는 별로라고 하셨고 나는 나쁘지 않은 편이라고 했고 어머니는 마실만하다고 하셨다.

술맛은 사과 맛이 나는데 탄산 없는 사과 샴페인 같은 느낌이었다.

차라리 완전히 달달하면 맛있었을 텐데 좀 어중간했다.

그래도 소나기 내린 습기 가득한 날에 부침개와 한잔하기엔 나쁘지 않았다.

부모님과 술 한잔하며 보내는 오붓한 그 시간이 평온해서 기분 좋은 한때였다.




2


완두콩 껍질을 깠다.

어머니는 혼자 까기엔 너무 오래 걸리겠다고 생각하셨는지 나를 부르셨다.

가보니 꼬투리가 한 망 가득 차 있었다.

그때 나는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작업물의 이쪽을 이렇게 해보고 저렇게 해보고 갖은 방법을 사용해봤지만 여의치가 않았다.

다른 때 같았으면 작업 중이라고 싫은 내색을 할 만도 했는데

이때에는 너무 황망해서 꼬투리 까라고 부르시는 어머니에게 감사한 마음까지 들었다.

나는 뭐 한 20분 까면 될 줄 알았다. 두 사람이 한 망을 까는 데 80분이 걸렸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업하는 것보다 꼬투리 까는 게 낫다고 생각했었는데

60분이 넘어가니 '나는 살림하는 거 너무 안 맞다, 내 일이 낫다.'라고 생각,

다 까고 나선 얼른 도망치듯 내방으로 와서 다시 작업에 몰두했다.

그러자 이번엔 작업이 너무 잘 진행되었다.

이게 잠시 다른 일을 한 게 정신적 환기가 되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살림이 너무 고돼서 작업이 외려 쉽게 느껴진 탓인지 알 수가 없다. (둘 다 인가?)

아무튼 이 이후 어머니가 다시 콩 꼬투리를 까자고 제안하시면 난... 몸 져 누운척할 거다.




3


작업물 하나를 1차 완료했다.

4개월에 걸쳐 50회 작업해서 완료했다.

얼마 뒤부터는 다섯 덩어리로 크게 뭉쳐서 각 덩어리를 하나하나 감수해야 한다.

이건 정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작업들이어서 걱정된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갑자기 부담이 돼서 하기 싫어진다.... 몸 져 누운척할까?

그래봤자 아무도 눈치 주지 않는다.

그저 스스로 관리 감독해야 하고 스스로 알아서 일어나야 한다.

흐음.... 좀 어렵다니깐.

그래도 져니 양반, 힘 내보게나.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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