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6-099
1
오빠는 좋은 사람이다.
내가 고 3일 때 오빠는 대학생으로서 약간의 조언을 해주었다.
그때 '오빠가 내게 격려를 해주고 싶은 거구나.'라고 바로 이해했으나
나는 비딱하게 "오빠는 이제 (고 3시절) 다 지나갔잖아."라고 뾰로통하게 대꾸했었다.
오빠는 "됐다."라고 돌아섰고 나는 그때를 후회한다.
그저 조금 더 강하게 위로해 주고 격려해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오빠의 마음을 고마워하기는커녕 애처럼 비뚤어진 떼를 썼으니 부끄럽다.
차라리 '오빠, 뭐 더 강력한 격려 같은 거 없어?'라고 하는 게 나았을까?
남매끼리는 살가워질 수가 없는 걸까?
오빠는 결혼을 했고 이제는 드물게 만난다.
가끔 만나는 오빠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한집에 살 때는 봐도 별 반응이나 안부도 묻지 않더니만 떨어지니까 외려 사이가 좋아진 것 같다.
오빠와 나는 '한겨울 고슴도치들의 거리'같은 게 필요하지 않았을까 싶다.
너무 가까우면 찔리고 너무 멀리 있으면 추워지는, 그래서 찔리지 않고 추워지지 않는 적정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그런 거리 말이다.
언젠가는 오빠와 바람직한 오누이의 대화가 가능하게 되길 빈다.
2
새언니는 말을 잘하고 또 말씨와 사용하는 단어들이 곱고 예쁘다.
어느 달에 오빠와 새언니는 집으로 와서 부모님과 식사를 했고 나는 식후 차를 준비했다.
지금 이름이 생각이 잘 안 나는데 향기가 좋은 티백 차가 있었다.
새언니와 내가 그 차를 마시게 되었는데 뭐 한 잔의 차는 금방 마셔서 사라졌다.
그때 나는 좀 갈등했다.
새언니와 몇 번 안 봤을 때라 데면데면했고 곱고 좋은 모습만 보이고 싶을 때였다.
집에서 혼자 있을 때에는 티백 차를 세 번까지도 우려 마셨다. 향이 워낙 짙어서 세 번까지도 좋은 향의 차가 우러난다.
그날도 그 차를 마시며 속으로 물을 더 데워서 티백을 우려낼까 말까를 고민했다.
물을 데우려면 새언니의 시선을 피할 수 없는데 한번 우려낸 티백을 그냥 버리지 않고 또 우려내는 게 조금은 좀스러워 보일까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솔직한 게 좋다고 생각했고, 포트에서 물을 데웠다. 그리고 잔에 물을 부으려고 일어섰다. 그러자 새언니가 컵을 들고 따라 일어섰다.
그리고 "아가씨. 나도..." 하면서 자신의 컵을 내밀었다.
새언니도 내심 티백을 더 우려내어 마시고 싶었다는 게 드러났고, 그 모습이 새언니의 솔직하고 알뜰한 일면으로 보여서 웃음이 났다.
아무튼 나 혼자 내면의 갈등은 다 겪고 늙은 것 같았다. 하지만 마무리가 유쾌해서 좋았다.
3
아버지와 삼겹살에 막걸리 한 잔을 했다.
삼겹살은 아버지가 구우셨다.
전에도 말한 적이 있었나? 아버지의 고기 굽는 실력이 탁월하시다.
삼겹살을 너무 바짝 굽지도 않고 그렇다고 잘 익은 정도로 놔두지 않고, 아주 적절하게 바삭하면서 고소한 맛이 나도록 그렇게 구우신다.
곁들여 배추김치를 함께 구워주시는 건, 내가 기름에 볶은 김치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나는 별말 안 하고 고기가 맛있다, 막걸리가 맛있다.. 뭐 그런 이야기로만 한 20분 이야기를 한 것 같다.
나는 물컵으로 한 잔 분량의 막걸리를 마시고 취기가 돌아버렸다. 위장이 뜨끈뜨끈, 머릿속이 핑 하는 기운이 돌았다.
그때쯤 아버지와 나눈 대화는 이런 것이었다.
"내일은 막걸리 사와라."
"저 내일 나갈 일이 없는데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마 나가서 사 와야 할 것 같다.
전에 정말 안 사다 드렸더니 굉장히 섭섭해하셨다.
다 키워놨는데 마트 심부름 하나 안 들어드렸으니... 죄송하다.
나로서는 음주를 막 권유하고 싶지도 않고 또 저질 체력이라 나갔다 돌아오는 게 힘들기도 해서였다.
물론 후자가 더 강력한 이유였었던 걸 고백한다.
반성하는 의미로 막걸리 사다 드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