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요했던 일

by 배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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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식빵을 샀다. 기왕 사는 거, 맛있는 것으로 사겠다고 '우유 식빵' 제치고, '옥수수 식빵' 제치고, '호두 호밀 식빵'으로 선택했다. '양'이야 '거기서 거기겠지'싶어 잘 살펴보지 않고 그냥 계산을 치르고 빵이 담긴 비닐봉지를 달랑달랑 들고 집으로 왔다.

봉지째로 식탁 위에 올려놓고 방에 들어가서 옷을 갈아입은 후 내 작업을 했다.


시간이 흐른 뒤 외출하셨던 아버지가 돌아오셨다.

아버지는 식탁 위의 빵을 보시며 누가 사 왔냐고 물으셨다. 나는 '제가 사 왔어요. 드세요."라고 했다.


아버지 왈 " 다 먹고 몇 개 없구먼."

나는 의아해하며.."그럴리가요. 아직 아무도 안 먹었는데요..."라고 대답했다.


"봐라 얼마 없잖아."


"어.. 그게 다인게 맞아요. 음... 지금 보니 좀 적어 보이네요.."


"하나... 둘.. 셋....... 여섯 장 밖에 없네. 이게 다야?"


"네... 음... 그게 그렇게 적었나? 맛있게 먹을라고 호두 호밀 빵으로 산 건데......"


아버지는 별말씀 안 하시고 한 장을 쓱 꺼내어 드시며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얼마 뒤 운동을 마치신 어머니가 돌아오셨다.


어머니는 빵을 발견하시고 "네가 사 왔니? 어라, 다 먹었네."


"아니에요. 원래 6장만 들어있었어요. 한 장은 아버지가 드시고 그렇게 남았네요."


"요만큼으로 누구 코에 붙이겠니? 음.. 맛은 있다."



그러고 나서 한 시간 뒤.


배가 고파서 드디어 내가 빵을 찾았다. 남은 식빵 4장.

말이 4장이지 부드럽고 폭신해서 압축하면 보통 식빵 2장 밖에 안되겠더라.

정말 누구 코에 붙이겠나 싶었다.


그래도 나는 호두 호밀 식빵을 구입한 것에 대해 후회가 없었다.


맛있었는데, 뭐. 그거면 됐지.










2


늘 알맹이 있는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도 1번과 같은 시시껄렁한 이야기도 필요하다.


맑은 날만 계속되면 세상은 사막이 되어버릴 것이라는 말도 있잖은가.

비도 오고, 눈도 오고, 바람도 불고, 안개도 끼고... 다양한 모든 날씨가 다 의미 있는 것일게다.


그럼 위의 1번과 같은 글은 어떤 날씨와 같을지 생각해본다.


햇살 쨍쨍한 날이나, 비, 눈, 안개 있는 날은 아닌 것 같다. 뭔가 확실한 족적 있는 날씨와 비유할 글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암. 인정한다.


바람 불고, 서늘하고, 춥고, 덥고, 그런 날씨도 아니다. 그 역시 감히 비유할 수 없는 영역이다.


그렇다면 나의 위 1번과 같은 글은.....


환절기 같은 글이다. 계절이 다른 계절로 넘어갈 때 중재하는 것 같은 날씨....


오행으로 따지면 토(土)와도 같은 성질.

그래 토와 같은 글이다.

양과 음의 경계 같으며, 모든 에너지가 물질로 만들어지는 토대와도 같은 땅의 느낌.


그래.. 이게 다 좋은 글이 나오기 위한 토대가 될 글들인 것이다. 그러한 글인즉, 어찌 버리겠는가. 어찌 쓰다가 지워버릴 수 있겠는가.


아무렴, 나는 좋은 글을 쓰기 위해 잠깐의 중재 기간을 갖는 것뿐이다.

내 글은 버릴 게 없다. 암.







3


안다. '이 사람 무슨 약 빨고 있나?'싶을 거다.

그래도 위의 2번과 같은 글도 필요하다. 너무 의욕이 가라앉기만 할 때엔 헬륨가스 넣은 풍선이라도 묶어서 매달아야지 더 이상의 가라앉음을 방지할 수 있다.

나락으로 내려앉을 때엔 스스로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것이야말로 더 이상 있을 수 없는 최고의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에겐 1번의 글도 2번의 글도 써야만 하는 당위성이 있다.


그렇다면 이 1번, 2번, 3번의 글을 다 읽는 당신에게 남는 것은 무엇일까?

당신에겐 무엇이 남을까?







4


한 사람의 힘든 마음을 읽어내는 이해심?

없는 실력으로 아득바득 글을 쓰는 인간에 대한 애민심?

이 모든 것을 끝까지 읽어내는 큰 인내심?


다 아니다.







5


당신은 읽느라 시간을 들였다. 미안하다.

허송세월하셨다.

나에게는 필요한 일이었으나 당신에게는 필요 없었다. 미안하다.

(아얏!.... 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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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의 처음과 끝을 다 보려 하지 마라.

그냥 발을 내딛어라.


-마틴 루터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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