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즌5-020
1
어머니가 메주를 만드셨다.
이 서울에서 어떻게 볏짚을 구하셨는지 알 수 없는데, 어쨌든 볏짚까지 구하셔서 메주를 묶으실 채비를 하시더라. 그런가 하면 삶은 콩의 일부는 청국장을 만드신다고 따로 갈무리하셔서 안방에서 띄우고 있으시다.
그간 난방비를 아껴야 하신다며 집안이 냉골이 되지 않을 정도로만 보일러를 돌리던 어머니가 청국장 발효시킨다고 보일러를 한껏 돌리시고 있다.
춥다고 춥다고 노래를 불러도 난방온도를 올려주시지 않더니만, 고놈의 청국장 때문에, '그 덕분에'라고 해야 하나, 여하튼 호사를 누리고 있다. 집안이 후끈후끈하다. 반팔을 입고 있어도 춥지 않을 정도이다.
2
어머니, 저는 삶아 으깬 콩보다도 소중하지 않으셨던가요? 청국장이 완성되면 난방온도 낮추실 건가요?
심히 섭섭하옵니다.... 뭐 그렇다고요.... 저도 청국장을 좋아합니다만.... 겨울이 끝날 때까지 완성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 완성이 안되어야 계속 난방온도를 유지하실 것 같으니까요.
저도 청국장을 맛있게 먹을 줄 알지만.... 하여튼 그렇습니다.
3
거실에서는 메주의 구리구리한 냄새가, 안방에서는 청국장의 꾸리꾸리한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다.
내 방이 제일 따뜻한데 그것들을 내 방에서 띄우자고 했으면.... 아찔하다.
여자 방이라고 배려하셔서 발효 장소에서 제외하신 것 같다. 감사하다.
4
하지만 어머니.
저번에 추웠을 때, 어머닌 안 춥다고 옷 껴입으라고 하시던 때 기억하시나요?
저 그날 감기 걸렸어요. 그제서야 어머닌 난방 온도를 올려주셨는데, 이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 아닙니까? 청국장 보다 제가 덜 소중하시나요? 저, 정말 섭섭하다구요!
아무튼, 청국장 완성되면 잘 먹을 것임은 확실하지만, 청국장만큼이나 저도 추위를 잘 탄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해요.
5
농담이 아니라 정말 청국장에게 존재 가치 혹은 중요성이 밀린 느낌이다.
청국장에게 복수할 거다. 식탁에 올라오면 사정없이 먹어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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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면 부패하는 음식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음식이 있다.
시간이 지나면 부패하는 사람이 있고
시간이 지나면 발효되는 사람이 있다.
그대를 썩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고
그대를 익게 만드는 일도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다.
당신은
늙어 가는가?
익어 가는가?
-이창현's 울림 - 부패와 발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