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리와 심장

시즌5-022

by 배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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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번 주 금요일 밤, 잠을 자고 있는데 누가 똑똑 방문을 두드린다.

설풋 깨긴 했지만 정신이 없어서 대답을 못했는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면서 "어? 다이어리....."라고 말하는 오빠 목소리가 들렸다. 방에 불도 꺼졌겠다, 잠자는 기색인 것 같으니까 오빠는 방에 들어왔다가 곧 나가버렸다.

나는 잠자다가 '다이어리...'라는 소리에 정신이 번쩍 났다. 얼른 잠을 떼어 메쳐버리고는 불을 켰다.

좌탁 위에 상자 3개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열어보니 새 다이어리가, 그것도 플랭클린 다이어리가 떡 하니!!


경사로다, 경사 났네!


잠이 다 달아났다. 펼쳐보니 내가 그렇게도 원하던 구성의 지면이 촤악~ 펼쳐졌고, 종이 질도 좋고, 두 권의 플랭클린 다이어리는 겉표지 색도 달라서 쓰면서 헛갈리지 않을 것이고, 나머지 한 권은 얇고 간편해서 여러 용도로 쓸 수 있겠더라. 플랭클린 다이어리는 이전에 한 번 써보고 그 유용성에 확 반했었는데, 이렇게 두 권이나 얻어다 주니 진짜 고마울 따름이었다.






2


한 해 동안 용도를 달리하여 약 4개의 다이어리를 사용한다.

처음엔 쓰지 않아서 소용없어져버린 옛 다이어리의 종이가 아까워서 메모 용이나 노트로 쓰자는 의도로 펼쳐 적었다. 쓰다 보니 이런 것도 써볼까, 저런 것도 써볼까 끄적이다가, 점차 시간 일기를 적고, 지출계를 적고, 하루 일기를 적고, 아이디어를 적고, 계획과 일정을 적어나갔다.

그러다 보니 아버지가 가져오시는 다이어리를, 집안에 들어오는 족족히 내가 차지하고는 몽땅 써버리게 되었다.

아버지는 지인들이 주는 다이어리를 그냥 가져와서 놔두실 뿐이었는데 내가 매해 그것들을 사용하는 것을 아시고는 연말이면 일부러 지인들에게 다이어리 남는 거 없느냐고 수소문해서 얻어다 주셨다.

어느 해인가 아버지께서 다이어리를 미처 못 얻어다 주실 때, 어머니께서 오빠에게 '니 회사에서 나오는 다이어리 없느냐, 져니가 다이어리를 많이 쓴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그랬더니 오빠가 그때부터 4년째 다이어리를 가져다주고 있다. 물론 아버지도 다시금 다이어리를 구해다 주시고 말이다. 올 1월에는 두 분이 구해주신 다이어리가 총 6권이었다. 그야말로 다이어리 풍년, 원 없이 사용했는데도 1권은 새것인 채로 남았다. 이건 나중에 노트로 써야 할 것 같다.





3


부모님이나 오빠는 내가 다이어리에 뭘 적는지 모르신다.

나는 "그냥 이것저것 적어요."라고만 말해뒀을 뿐이다.

근데 사실 내가 다이어리에 은행을 털 계획이나, 백화점 명품관을 싹쓸이할 음모를 세워 적을 수도 있지 않는가.

어느 입구로 들어가서, 직원들의 시선을 어떻게 따돌리고, 어떤 식으로 침투해서, 물건을 어떻게 이동시키며, 무슨 방법으로 빠져나올지 오밀조밀, 세세하게 계획을 적을지도 모르지 않느냔 말이다.

그저 딸내미이자 동생인 져니가 다이어리를 많이 사용한다니까 마냥 기특하게 보시고, 아마 계획성 있게 공부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신 듯, 적극적으로 다이어리를 몰아와 주시니 황송할 따름이다.







4


늘 현재를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하루살이 인생이 아닌 이상, 1~5년 정도는 계획하면서 사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계획을 세워놓고 사는 시간은 무료하지 않고 은근히 심장 쫄깃한 긴장감이 있어서 좋다.


현재 다이어리 3권 확보.

계획 세울 생각만으로도 가슴에 긴장감이 도는 기분이다.

(심장아! 대체 얼마나 쫄깃해질 작정이냐!)


아부지, 어무니, 오라버니.

감사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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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시작하자!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인생의 목적은 완전하게 태어나는 것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매 순간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 에리히 프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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