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불러 주세요.
어디선가 들었던 '미국은 장애인들의 천국'이란 말이 새삼 떠올랐다.
2003년 8월 미국에서 대학원 개강을 앞둔 무렵이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내가 살던 동네를 한 바퀴 투어 한 적이 있었다. 한여름이라 밖은 땀이 뚝뚝 떨어질 정도로 무척이나 더운 날씨였지만 큰 버스 안은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와서인지 사람들은 모두 긴소매 카디건을 입고 있었다.
버스가 어느 정류장에서 멈추더니 갑자기 운전기사가 버스에서 내렸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던 승객들은 이미 다 승차를 했는데, 운전기사는 자리에 오르지 않고 버스를 비운 채 한참 소식이 없었다.
'버스가 혹시 고장이 났나?' 다행히도 아무 약속도 없이 동네 길을 익히러 나온 것이었기에 망정이지 약속이라도 있었으면 큰 낭패를 볼 뻔했다는 생각을 했다.
얼마 후, 땀범벅이 된 버스 기사가 버스에 올라타더니 버스 내리는 문쪽으로 가서 그 주변에 있던 의자를 접어서 작은 공간을 만들었다. 다시 버스 앞쪽으로 와서 무언가를 조작하니 문에서 버스 경사로 (Bus ramp)가 마술처럼 천천히 펼쳐졌다. 곧이어 휠체어에 탄 남자 승객이 조심스럽게 버스에 승차했다.
중년의 나이로 보이는 휠체어에 탄 남자가 버스의 뒷문 쪽 정리된 자리로 가자, 기사는 재빨리 휠체어를 여러 개의 줄로 고정시켰다. 버스 기사는 꼼꼼하게 안전장치 점검을 마쳤고 곧 버스는 다음 정류장을 향해 출발했다.
'세상에 이런 일이~'
처음 겪은 광경에 나온 마음의 소리였다. 내면 깊은 곳에서부터 잔잔하고 깊은 감동이 밀려왔다. 휠체어 탄 승객이 버스에 탑승하고 안전하게 모든 점검을 마치는데 족히 15분은 걸렸던 거 같다. 아니 더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놀라웠던 점은 버스 뒤쪽에서 한 줄로 기다리고 있었던 많은 차들이 빵빵거리는 경적을 울리지 않고 모두 잠잠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큰 버스 안에 가득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던 승객들도 모두 잠잠히 기다리고만 있었지 그 누구 하나도 불평하지 않았다. 오히려 버스에 탄 많은 사람들은 휠체어를 탄 승객이 승차하자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버스 안 사람들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대하듯 휠체어를 탄 남자에게 서슴없이 안부를 전했다. 날씨, 새로 생긴 음식점 등 일상생활에 대한 대화를 자연스럽게 나누는 사람들이 그저 신기했다.
그 짧은 순간에 서로 통성명이 이루어지기도 했다.
"나는 샘 (Sam)이에요."
"나는 톰 (Tom)이에요."휠체어에 탄 남자의 이름이다. 톰의 앞자리에 있던 샘이 버스에서 내리려 하자 서로 이름을 부르며 잘 가라고 인사한다. 꼭 다시 만날 친한 친구처럼.
문화적 충격이었다. 사람들이 서로를 대하는 자연스러운 태도가 참 귀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도 가끔 그때의 문화적 충격이 떠오를 때가 있다.
나중에 대학원에서 '사람 우선 언어 (People First Language)'라는 전문용어(Terminology)를 배웠을 때 톰이 불현듯 생각이 났다. 사람을 볼 때 '장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닌 '사람'을 존중하는 표현이다. 사실 한국어 표현으로는 언뜻 보면, 같은 표현인 것 같지만 영어로는 뜻이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형용사를 명사 앞에 쓰는 영어에서는 'Autistic person(자폐적인 사람)'으로 쓸 수 있다. 하지만 'The person HAS autism(자폐증을 가진 사람)'으로 표현함으로 장애는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상태임을 설명한다.
나의 박사과정 지도 교수님이셨던 닥터 베크만(Dr. Beckman)은 이 표현에 진심이셨던 분이다. 장애아이를 관찰한 후 보고서를 제출했을 때 별생각 없이 썼던 '자폐적인 아이(Autistic child)' 표현을 빨간색 펜으로 큰 동그라미까지 쳐서 고쳐주셨다. 나중에 수업이 끝나고 나를 조용히 불러 당부하듯이 이 용어의 중요성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해 주시기까지 했다. 1960년에 미국에서 처음으로 용어가 소개되었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차이점을 모르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이 느껴졌다. 특수교육을 공부하는 학생들만이라도 개념을 가지고 사용했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었으라. 일종의 '사람 우선 언어'사용 캠페인이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 우선 언어'에 대해 쓰고 나니 사실 고민이 생겼다. 우리가 쓰는 한국어의 표현이 영어처럼 명확하지 않고 애매한 점이다. 이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다가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냥 이름을 부르면 어떨까? 휠체어를 탔던 톰에게 사람들이 이름을 불렀던 것처럼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면 이런 고민은 저절로 사라지게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글을 카페에서 쓰고 있을 때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부부와 6살 정도의 딸로 보이는 여자아이가 옆 자리에 앉아있었다. 이상한 소리를 내고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걸 보니 아이에게 장애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아이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자 엄마가 황급히 따라 일어나 아이의 입을 손으로 막았다. 그와 동시에 카페에 있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약속이나 한 듯이 그곳에 모여졌다. 내 자리를 거쳐야 화장실을 갈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안녕~! " 내가 아이에게 인사하니 아이의 엄마가 놀란 눈으로 나를 쳐다본다.
"이름이 뭐야? " 아이에게 인사를 건네며 미소를 보였다.
"지선이에요!" 그 아이의 엄마가 그제야 좀 안심된 표정으로 나에게 대답했다.
"지선이 예쁜 이름이네! 엄마랑 카페에 놀러 왔니?" 간단한 대화(Small talk)가 잠시 이어져갔다.
아이가 화장실을 다녀오자 그 부부와 아이는 카페를 나가려고 짐을 챙겼다.
"좋은 시간 보내고 가세요."아이의 엄마가 수줍은 듯 내게 작별인사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지선아 좋은 주말 보내. 안녕." 이름을 불러주자 지선이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내 마음에도 미소가 번졌다.
장애에 상관없이 우리도 이름을 불러보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
특수교육 개론 101

IDEA (Individuals with Disabilities Education Act/미국 장애인 교육법 )에서 분류하는 장애는 다음과 같다.
1. Autism 자폐스펙트럼 장애
2. Blindness & Deafness (have both) 시-청각 장애
3. Emotional disturbance 정서장애
4. Hearing impairment 청각장애
5. Intellectual disability 지적장애
6. Multiple disabilities 복합장애
7. Orthopedic impairment 신체장애
8. Other health impairment 기타 건강장애 (예, ADHD
9. Specific learning disability 학습장애
10. Speech or language impairment 언어장애
11. Traumatic brain injury 외상에 의한 뇌손상
12. Deafness 청각장애(농인)
13. Visual impairment, including blindness 시각장애(맹인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