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잡아먹으려고 저리 요동을 칠꼬' 그리 할머니가 혀를 차던 바다가 보였다. 할머니는 바다를 원망하는 눈빛으로 내다보시곤 했다. 하기사 그 바다는 많은 생명을 앗아간 바다였다. 그 섬에 사는 장정들은 거의 뱃일을 했으니까. 배를 타고 고기를 잡아 오는 생업이란, 그야말로 날마다 파도를 타며 온갖 종류의 멀미와 구토를 다 겪어내는 일이었을 게다. 비린내가 살내음이 되는 일. 구토를 느끼지 않을 때쯤이면, 육지의 평평하고 딱딱한 방에서도 배에서 자는듯한 착각이 들어 잠을 설치기가 일쑤인 뱃사람.
그런 이웃 친척 중 누군가가 배를 타고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으면 할머니는,
'저것이 또 삼켰다' 그리 한숨을 섞은 말을 뱉었다.
사촌 언니는 할머니의 첫 손녀였다. 전쟁통에 아주버니가 돌아가시고 형님이 시집을 가셔서, 자식이 없었던 할머니네는 아주버니의 자식들을 키우셨다. 그 큰아들이 일찍 결혼해서 육지로 분가하면서 손녀딸을 맡기고 갔다. 혼자가 되신 할머니에게 자식 대신으로 키우시라고 딸을 두고 섬을 떠나셨던 것 같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언니는 엄마 아빠를 그리워하며 할머니와 살았다. 그래서 외롭게 자랐다. 뻘로, 논으로, 밭으로 일하러 다니는 할머니 슬하에서 자라야 했던 언니는, 동네에 가족처럼 지내는 오빠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손잡고 소꿉장난을 하던 그 오빠를 많이 의지하는 듯했다. 그 오빠는 언니의 일기장이었다. 내가 언니에 대해 틀리게 말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이 있으면 그 오빠는 빙그레 웃으며 언니의 속마음을 얘기해주곤 했다. 언니에 대해 모르는 것이 없었다. 정말로 신기했다. 다른 사람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다 알고 있다니...
방학이 되어서 그 섬에 놀러 가면 우리는 들로, 산으로, 바닷가로 놀러 다녔다.
오빠가 나무하러 가는 길도 따라가고, 등대로 낚시하러 가는 길도 따라갔다. 등대 주위를 빙글빙글 돌면서 술래놀이도 했다. 낚시하는 오빠 옆에서 사촌언니는 '등대지기'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그 언니하고 오빠가 가르쳐준 '초록빛 바닷물에 두 손을 담그면..'이라는 동요에 우리는 화음을 넣어서 신나게 불렀다. 오빠는 손재주가 좋아서 솔방울로 온갖 것을 만들었다. 눈사람도 만들고, 허수아비도 만들고, 집도 만들고, 온갖 인형을 만들어 주었다. 나뭇잎 줄기를 따서 피리도 불어 주었다. 소리가 너무 신기해서 나는 걸핏하면 나뭇잎 피리를 불어 달라고 졸랐다. 오빠는 나를 무동을 태우고 산을 잘도 내려갔다. 우리는 이름 모를 무덤가에서 귀신놀이도 하고, 무당 놀이도 했다. 오빠는 무당 흉내도 참 잘 냈다.
그동안에 할머니는 굴을 따러 가거나, 뻘에 조개를 하러 가곤 했다. 어느 날은 뻘밭에서 꼬막을 해오기도 했다. 한쪽 무릎을 길쭉한 널판지에 올려놓고, 다른 한쪽 다리는 노가 되어 뻘밭을 헤치면서 꼬막을 주우러 다녔다. 몸을 어찌나 수그려야 하는지, 다녀오시면 허리가 많이 아프시다고 했다. 바짓가랑이가 온통 젖어서 살갗에 붙으면, 땀으로 범벅이 된 몸에 찬바람이 휘감기어 추운기가 온몸에 든다고 했다. 그래서 몸이랑 손이 잘 튼다고 했다. 정말로 할머니 손등은 트고 갈라져 피가 나고 아물기를 반복했다. 그러면 사촌언니는 영양크림을 손에 발라주며 '바람이 정말 싫다고...' 입술을 깨물며 말했다.
어느 해 겨울, 방학 때가 되어 또 할머니 댁에 놀러 갔다. 부산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엄마와 함께 인사하러 갔었다. 처음에는 내가 뱃멀미를 해서 냄새가 나서 언니가 나를 멀리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좀 흘러갈수록 뭔가 달라진 사촌언니를 느낄 수 있었다. 갑자기 성숙해졌고 말 수도 많이 없었다. 말 걸기도 어려울 만큼 우울한 얼굴일 때가 많았다. 쭈볏쭈볏 말을 걸면 대답을 건성으로 받곤 했다.
그런데 사촌 언니는 걸핏하면 어린 나를 데리고 바다로 나갔다. 내 외투 단추를 잠가 주고 모자를 씌어 주면서,
"할머니한테 야단맞을지 모르니, 니가 바닷가에 가자고 졸랐다고 해야한다" 그리 신신당부를 했다.
그리고는 바닷가에 앉아서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았다.
" 언니! 왜 자꾸 여기 와?"
"......"
"얘기 좀 해 봐"
"그때, 나뭇잎 피리 불어주던 오빠야 생각나나?"
"응"
"그 오빠가 바다로 갔데이..."
"일하러?"
"아니! 영원히 바다로 갔데이.."
"인제 안돌아 와?"
"그래. 영원히..."
그리 말하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우는 언니를 보니 나도 슬펐다. 언니와 오빠가 얼마나 가깝게 지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언니는 나를 꼭 껴안고 울다가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내 어깨에는 눈물이 얼룩져서, 차가운 기운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슬픔에 감염이 되어서 언니를 따라 훌쩍거리고 나면, 시린 겨울바람은 도톰한 볼때기에 따끔하게 스며들었다.
해변가 꼬막 껍데기를 보니,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몹시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예전에는 고향 바다 내음과 노래를 간직하고 있었을 그 꼬막은, 어찌 홀로 남겨졌는지 뭔가를 절규하는 몸짓으로 있었다. 바닷가에 혼자 앉아서 눈물을 흘리던 그 언니처럼....
밥 먹을 때가 되어서 언니를 찾으러 바닷가에 가면, 언니는 내가 옆에 왔는지도 모르고 바다를 향하여 중얼중얼 얘기를 하고 있었다. 뭐라고 했을까. 아마도 저 조개껍데기가 들려주는 시와 같은 고백을 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