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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 Oct 16. 2023

실패를 향해 힘차게 달려갔던 시절

To 2016 From 2023

다시 2023년 10월.

일요일 밤, 명상을 하다가 최근 나의 불안이 무엇 때문인지 알게 되었다. 

단순히 프로젝트에 대한 고민과 불안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더 내면을 파고들자 보이기 시작했지.

놀랍게도 실패를 두려워하고 있더라. 


실패. 너에게도 나에게도 이 단어는 참 새삼스럽지도 않아. 줄곧 크고 작은 실패를 하면서 살아왔으니까. 

그런데 이제 나도 조금은 성공하고 싶은가 봐.

결코 혼자가 아니기에, 함께 일하고 있는 절박한 우리들이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길 원하게 돼. 

앞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욕심이 생겨. 우리의 작품이 만들어지기를. 

우리의 작품이 성공하기를.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기를. 


2016년의 너는 실패를 두려워하긴커녕 오히려 실패를 향해 치열하게 달려갔지.

물론 그때는 실패를 할 기회조차 소중했기 때문이었어. 


새해가 밝아오며 회사는 조직개편이 되었고, 사업부를 총괄하는 윗사람이 바뀌었어. 

새로운 관리자가 오니 당연히 새로운 사업 전략을 공유했고, 또 다른 기회가 생긴 거야. 

14년~15년 진행하던 단독 프로젝트는 모두 홀드가 되었어. 

하나는 회사 차원에서, 다른 하나는 리메이크 작품이었는데 작가를 구하지 못했고, 

원작 판권 구매 비용이 예산에 맞지 않았지. 

대신 넌 회사에서 진행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에 메인 피디가 될 수 있었어. 

모두가 그 프로젝트를 기피했기 때문에 손을 들 수 있었지. 

알고 있었어. 그 프로젝트가 쉽지도 않고, 실패할 확률이 높다는 것을. 

그래서 반대로 기회가 찾아왔던 거야. 


회사 메인 프로젝트 4건, 공동제작 1건, 단독 프로젝트 1건, 팀 내부 사업 진행. 

16년은 쉴 틈 없이 바빴어. 항상 야근을 했고, 쉴 때는 늘어져 있거나 잠자기 바빴지. 

그런데 놀랍게도. 행복했던 것 같아. 

처음으로 내가 다른 무언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보단, 그 순간에 몸을 맡기고 집중했던 것 같아.  

그간 길 없이 흘러넘쳤다면, 그땐 물길을 따라 힘차게 흐르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결국엔 잘 안되더라도, 실패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했지. 

그 이상의 커다란 경험치를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땐 그것이 그렇게도 절실했으니까. 그리고 회사에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해였으니까. 


당시 진행했던 모든 프로젝트는 결국 회사에 있는 동안에는 만들어지지 않았어. 

그래도, 그 후에 꾸준히 모두 작품이 되어 대중들 앞에 섰던 걸 보면 아예 실패는 아닌 것 같지만.

뭐 어차피 그만둔 사람이기에 영영 작품과 상관없는 고스트에 불과할 뿐. 


그렇게 실패를 향해 힘차게 달려갔던 16년의 너를 만나며, 

23년의 나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마음을 짓누르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기로 했어.


다른 사람의 몫을 함부로 책임지지 않기로 했어. 

우리 모두 각자의 삶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들이야. 모두 자신의 선택으로 여기까지 함께 왔어.

완전한 성공과 완전한 실패는 없으니, 그 사이의 어딘가에서 멈춰 설 수밖에 없더라도 괜찮아. 

거기까지 걸어온 길의 풍경은 계속 내 안에 있을 테니까. 

결국 언젠가는 죽음으로 멈추게 되어 있는 길이야. 실패, 비극이 예정되어 있는 생. 

이 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들은 결국 길을 걷는 순간일 수밖에 없다는 것. 


고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알려줘서 고마워. 

물론 너는 23년까지도 괴로워하는 내 모습을 알게 되면 한숨을 푹푹 쉬겠지만.

그래도 그때보단 지금이 나을 테니까, 조금은 기대해도 좋아.



커버 사진

벤 스틸러 <청춘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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