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의 꿈

추억 속으로

by 제임스

1970년대,

청계천 거리는 숨가쁘게 뛰어가는 국가의 맥박이 고스란히 느껴지던 곳이 있었다.

청계천 물줄기를 따라 들어선 세운상가는 그 상징과도 같았다.


건축가 김수근이 디자인한 건물로 유명하다.jpg 1967년 11월 17일 세운상가 준공식, 건축가 김수근이 설계한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로, 엘리베이터까지 갖춘 서울의 명물이자 고급 아파트였다.


지금의 용산 전자상가가 그 자리를 대체하기 전까지,

이곳은 전자제품과 컴퓨터 부품의 성지였다.

복잡하게 얽힌 전선처럼 구석구석마다 납땜 냄새와

트랜지스터의 금속 체취가 스며들어 있었다.

현대적 디스플레이보다 작업대와 낡은 부품 상자들이 주인공이던,

그러나 누구보다 생기로 가득하던 공간.


명절은 그 거리로 통하는 황금열쇠였다.

추석이면 손에 땀을 쥐게 하던 두둑한 용돈을 꽉 쥐고,

친구들과 함께 명동 코스모스 백화점이나

세운상가로 달려가는 것이 우리 세대의 경이로운 의식이었다.


seun_4-horz.jpg 1975년 (좌)세운상가 (우)명동 코스모스 백화점


그곳에서 우리는 007 키트나 날개 달린 프라모델을 사곤 했다.

나는 문과 출신의 ‘문돌이’로서 기술이라는 세계가 어둡기만 했지만,

시대의 유행과 호기심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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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땜인두를 처음 잡았을 때의 떨림, 땀에 흐려지는 안경,

그리고 마침내 조각조각 맞춰 완성한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스치듯 흘러나오는 음악이나 희미한 방송 소리는 단순한 소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내 손으로 빚어낸, 기적 같은 소리였다.

그 순간만큼은 세상을 움직이는 천재 과학자라도 된 듯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 작은 라디오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창이었고,

잠시나마 과학자의 꿈을 펼쳐보이는 마법의 상자였다.



그러고 보니,

납땜 냄새와 트랜지스터에 빠졌던 우리와,

최신 명품 신발과 게임 속 아이템에 열광하는 오늘날의 청소년들.

그들에게 세운상가는 철거되고 공원이 된, 그냥 역사의 장소일 뿐이다.


그들은 명절 용돈을 받으면 어떤 꿈을 꿀까?

과연 그들도 잠시라도 나이키의 창업자 필립 나이트처럼

세상을 바꾸는 창업의 꿈을 꿀까?

아니면 그저 소비의 즐거움에만 머무를까.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꿈의 형태가 달라졌다고 해서,

그 속에 담긴 열정의 질감까지 다르다고 단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가 납땜인두로 만졌던 그 뜨거움이,

지금을 사는 청소년들의 가슴속에도 분명 다른 방식으로 스며들어 있을 테니.

다만 그 뜨거움이 무엇을 향해 있는지,

우리는 때로 그들에게 물어보고 함께 이야기해볼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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