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연애와 결혼
1976년, 그는 세상에 태어났다.
수많은 숫자 속의 하나였지만,
그의 삶은 언제나 시대의 물결과 함께 흔들렸다.
IMF의 거센 바람 속에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고,
2002년 월드컵의 붉은 함성과 물결 속,
거리 위에서 청춘을 만끽했다.
불안과 희망이 뒤섞인 시대,
그는 빛과 어둠 사이 어딘가에 서 있었다.
결혼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시작되었다.
설렘으로 가득 찼던 신혼의 시간,
둘이 벌어 둘이 쓰는 삶은 자랑이었다.
“애는 언제 가질 거야?”라는 질문에,
그는 늘 당당히 대답하곤 했다.
“애 없이 이렇게 살면 편하지 않나요?”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정은 흔들림 없었다.
IMF 시절을 살아낸 그는,
누군가의 인생을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막막한 일인지
너무 일찍 깨달아버렸다.
그래서 그는 공무원의 길을 선택했고,
안정이라는 둥지 안에서 오직 사랑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믿었다.
그들의 주말은 여유로웠다.
유럽의 낯선 골목을 손잡고 걷고,
기념일마다 호텔 창가에서
도시의 불빛을 바라보며 서로를 축복했다.
서점에서 책을 고르고,
문화센터에서 와인을 배우며 시간을 쌓았다.
친구들이 육아와 집값, 학군 문제로 지쳐 있을 때,
그는 ‘다르게 사는 삶’을 선택했다고 믿었다.
시간은 흘러 그도 어느덧 쉰을 맞았다.
겉보기엔 여전히 괜찮아 보였다.
요가도 하고, 맛집을 찾아다니며,
SNS에는 “진짜 멋지세요”라는 댓글이 줄지어 달렸다.
혼자였지만 외롭다고 말하기엔 어딘가 어색한 삶.
그는 스스로에게 자주 말했다.
‘잘 살고 있다’고.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그 ‘잘’이라는 단어가 공허하게 들리기 시작했다.
모임을 마치고 친구들이
“우리 아들 데리러 가야 돼” 하며 자리를 뜰 때,
누군가 딸에게서 온 메시지를 보고 미소를 지을 때,
그는 조용히 핸드폰을 내려놓는다.
그를 부르는 이는 없다.
누군가의 엄마였던 적도,
누군가의 걱정이었던 적도 없다.
얼마 전 생일,
조카가 단체방에 남긴 “생일 축하드려요~”라는
이모티콘 하나가 전부였다.
한때는 케이크 위에 초를 꽂고 생일상을 받던 그였지만,
이제는 조용한 방 안에서 초 하나 켜두고 혼자 소원을 빈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자신을 다독여보지만,
마음은 자꾸만 침묵으로 내려앉는다.
그 시절,
자유는 그의 전부였다.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문득,
깊은 곳에서 바람 한 점이 스쳐간다.
그는 단 한 번도 누군가를 위해 살아본 적이 없다는 사실.
자신의 시간과 마음을 온전히 건넨 적이 없다는 사실이
어디선가 오래된 그림자처럼 그를 조용히 감싼다.
그리고 속삭인다.
정말 괜찮았냐고.
그 모든 자유 속에서,
그는 진짜 행복했냐고.
그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창가에 선 채, 저물어가는 햇살을 바라본다.
눈물이라기보다,
마치 오래된 바람이 빈틈을 지나가는 듯한 감정.
회한은 때로, 그렇게 조용히 다가와
삶이라는 고요한 방 안을 한참 동안 맴돌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