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연애와 결혼
편안함이라는 이름의 무중력
어느 날, 오랜만에 소주 한잔을 기울였다.
대학원 후배인 그는 잘 나가는 직장에 다닌다.
그런데 아직도 40대 독거남이다.
요즘 그는 무엇을 보아도 시큰둥하다.
영화도, 게임도, 유튜브도 모두 켜는 순간부터 피로하다.
예전에는 퇴근 후 집에 오는 길만으로 설렘이 있었다.
“오늘은 뭘 해볼까?”
생각만으로 가슴이 벅찼고,
작은 방 안에서 펼쳐질 밤의 시나리오가 스스로를 위로해주곤 했다.
새벽까지 게임을 하며 웃고,
넷플릭스에 새로운 시리즈가 올라오면
자리를 펴고 누워 정주행을 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게임은 1시간이 채 되기도 전에 꺼지고,
영화는 시작 10분 만에 멈춘다.
흥미를 잃은 건지,
마음이 비워진 건지 구분조차 가지 않는다.
그의 주말은 더욱 비슷하게 흘러간다.
새벽까지 유튜브 알고리즘의 무한한 터널을 헤매다 보면
어느새 해는 중천에 떠 있다.
겨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씻지만,
다시 침대로 들어가면 어느덧 일요일 밤 11시.
그리고 다시 반복되는 일주일.
무언가 한 것도,
잊을 추억도 없는 채,
또 한 주가 스르르 지나간다.
연애는 이제 먼 이야기다.
소개팅은 더 이상 오지 않고,
예전엔 여자들에게 마음에 들고 싶어서 들렀던
헬스장도 지금은 발길이 끊겼다.
거울 속 몸은 점점 무너져가지만,
다시 다잡을 힘은 생기지 않는다.
친구들도 바쁘다. 아이 키우느라,
삶에 치여 만나기도 어렵고,
겨우 만난다 한들 온통 육아 이야기뿐이라
대화는 금세 메마른다.
혼자의 삶은 분명 편하다.
누구의 눈치를 보지도 않고,
나만의 리듬으로 하루를 설계할 수 있다.
하지만 그 편안함이 너무 오래되면,
어느 순간부터는 삶이 무중력처럼 느껴진다.
가볍고 자유롭지만,
동시에 방향도,
목적지도 없이 떠도는 느낌.
그는 문득 생각한다.
예전에는 결혼하지 않아도 멋지게 살 수 있다 믿었고,
홀로 있는 자신이 누구보다 자유롭다 자부했다.
그런데 지금은 헷갈린다.
이 고요함이 정말 자유로운 건지,
아니면 서서히 굳어가는 고립의 늪인지.
그의 방은 조용하다.
티끌 없이 정돈된 공간 속에,
외로움이 소리 없이 자리 잡는다.
가끔은 창문을 열고 바깥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걸까?”
어쩌면 인생은 '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마음'을 잃는 순간부터 쓸쓸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오늘도,
그 잃어버린 마음의 조각을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다시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