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경력단절이 사라진 나라, 유연근무의 힘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의 효과

by 박상훈

12화. 경력단절이 사라진 나라, 유연근무의 힘

―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의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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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5시, 스톡홀름의 거리.

오후 5시가 되면 사람들이 쏟아져 나온다.


30대 남성이 서둘러 지하철을 탄다.

어린이집 마감 시간에 맞춰 아이를 데리러 간다.

그는 6시간 근무제로 일한다.

자녀가 5살이 될 때까지 이렇게 일할 계획이다.


40대 여성이 자전거를 탄다.

오늘은 오후 3시에 퇴근했다.

주 30시간 근무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내일 아침 9시에 다시 출근한다.

그녀는 회계팀 과장이다.


이것이 스웨덴의 평범한 풍경이다.

육아기 부모들이 시간을 조절하며 일한다.


경력을 유지하면서 아이를 키운다.


한국의 이분법


한국은 다르다.

2024년 상반기 경력단절 여성은 122만 명이었다.

결혼, 출산, 육아로 일을 그만둔 여성들이다.


기혼 여성의 67.8%가 경력단절을 경험한다.

임신과 육아가 1, 2위 이유다.

출산 후 복직률은 43.2%에 불과하다.

절반 이상이 직장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한국 여성들은 선택을 강요받는다.

일을 계속하려면 아이를 포기하거나,

아이를 키우려면 일을 포기하거나.


양쪽 다 지키려면

월 200만 원 이상을 육아에 쓸 수 있는 경제력이 필요하다.

대부분의 여성에게는 불가능한 조건이다.


스웨덴은 정반대다.

출산 후 복직률 95% 이상.

복직한 여성의 85%가 시간제로 근무한다.


경력단절이 거의 없다.


무엇이 이 차이를 만들었을까?


권리냐, 허가냐


스웨덴 고용법 16장 5조는 명확하다.


"자녀가 8세가 될 때까지

부모는 근로시간을 최대 25%까지 단축할 권리가 있다."


법적 권리다.

사업주가 거부할 수 없다.


실제로 2024년 기준, 육아기 부모의 42%가 시간제로 근무한다.

남성도 28%가 단축근무를 한다.

여성만의 희생이 아니다.


한국도 제도는 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

자녀 8세까지 주 15~35시간 근무가 가능하다.


임금 80%를 보전하고,

정부가 나머지 급여를 지원한다.

그런데 2023년 사용자는 3만 5천 명이었다.

전체 육아 부모 중 5% 미만이다.


스웨덴 42%와 비교된다.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한국은 '사업주 승인제'이기 때문이다.

법 조항에 "사업주가 허용하는 경우"라고 명시되어 있다.

권리가 아니라 허가다.


신청해도 거부당한다.

승인받아도 눈치를 보며 근무한다.

승진에서 누락되고,

주변 동료들의 부담이 증가한다.


제도는 있는데 쓸 수 없는 제도다.


스웨덴에서 사업주가 근로시간 단축을 거부하면 어떻게 될까?

노조가 즉시 개입한다.


차별금지청이 조사하고, 법원이 판결한다.

기업이 패소하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법이 실제로 작동한다.


시간제가 경력단절이 아니다


한국에서 시간제 근무는 경력 포기를 의미한다.

2024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시간제 근무자의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의 76% 수준이었다.

복지도 없고, 승진도 없고, 고용도 불안정하다.


그러니 여성들이 시간제를 선택하지 못한다.

결국 일을 그만둔다.


스웨덴은 시간제 근무를 해도 정규직 지위를 유지한다.

시간당 임금은 정규직과 동일하다.

승진 기회도 동일하다.

연금, 휴가, 복지 모두 시간 비율만큼 받는다.


스웨덴 여성의 40%가 시간제로 일한다.

한국 여성의 15%만이 시간제로 일한다.


차이는 무엇인가?


스웨덴에서는 시간제가 선택이다.


한국에서는 시간제가 포기다.


10년 육아 로드맵


스웨덴 부모의 육아 시간표를 살펴보자.


0~1.5세: 육아휴직 480일(16개월).

부모 둘이 나눠 쓴다.

국가가 급여의 77.6%를 지급한다.


1.5~8세: 근로시간 25% 단축.

주 30시간 근무하며 어린이집을 병행한다.

시간당 임금은 그대로다.


8~12세: 정규직 복귀.

자녀가 학교에 간다.

부모가 정상 근무로 돌아온다.


총 10년의 육아 시간.


경력단절 없이 아이를 키운다.


한국은 어떤가?

1년 육아휴직을 쓰는 것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복직하면 눈치를 봐야 한다.


시간제 전환은 경력 포기와 동의어다.

그래서 여성들이 선택한다.


일을 그만두거나, 아이를 포기하거나.


짧게 일하면 생산성이 오른다


2015년 스웨덴 예테보리시 공공 요양원에서 실험을 했다.

근무시간을 8시간에서 6시간으로 단축했다.

급여는 그대로 유지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직원 병가가 40% 감소했다.

생산성은 17% 증가했다.


환자 만족도가 상승했고, 이직률이 급감했다.

직원들이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았기 때문이다.

피곤하지 않으니 집중력이 높아졌다.


스트레스가 줄어드니 병가도 줄었다.

이 실험 이후 스웨덴의 많은 민간 기업들이 6시간 근무제를 도입했다.

IT 기업들, 제조업체들이 실증 데이터를 얻었다.

짧게 일하는 것이 길게 일하는 것보다 효율적이라는 것을.


한국은 아직도 주 52시간 상한제를 지키기 힘들어한다.

긴 시간 일하는 것이 생산성이라고 믿는다.

스웨덴이 증명한 것과 정반대다.


남성이 참여해야 여성이 일한다


스웨덴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을 사용하는 남성은 28%(2024)다.

여성 56%보다 낮지만 OECD 최고 수준이다.

한국 남성 사용률은 3%.


10배 차이다.


스웨덴 남성들은 6시간 근무를 하며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려다준다.

저녁 5시에 퇴근해서 아이와 저녁을 먹는다.


주말에는 공원에 간다.

아빠로서의 시간을 확보한다.


한국 남성들은 '시간제 근무 = 경력 포기'로 인식한다.

신청하는 순간 승진이 불가능해진다고 믿는다.

그래서 안 쓴다.

육아 부담을 여성에게 전가한다.


남성이 육아에 참여하지 않으면 여성이 일을 그만둔다.

이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남성이 육아에 참여하기에 여성이 일을 계속한다.

이것이 스웨덴의 현실이다.


두려움이 출산을 막는다


2024년 KDI 연구에 따르면,

한국 여성이 출산을 기피하는 이유 중 40%가 경력단절 우려였다.


"아이를 낳으면 일을 못 한다."


이 두려움이 출산을 막는다.


스웨덴 여성들에게는 이 두려움이 없다.

근로시간을 단축하며 10년 동안 일한다.

경력도 쌓고, 아이도 키운다.


그래서 스웨덴은 출산율 1.5명(2010년대 평균)을 유지했다.

여성 고용률 81.2%와 출산율이 공존한다.


한국은 이분법으로 몰아넣는다.

경력 아니면 아이.


그래서 출산율 0.72명, 여성 고용률 58.6%.

둘 다 잃는다.


- 스웨덴 여성 고용률: 81.2% (25-54세, 2023)

- 한국 여성 고용률: 58.6% (25-54세, 2023)

- 스웨덴 출산율: 1.43명 (2024)

- 한국 출산율: 0.72명 (2024)


오늘의 교훈


스웨덴은 부모에게 선택권을 준다.

육아휴직 480일로 부족하면 근로시간을 25% 단축하라고 말한다.

8년 동안 시간제로 일할 권리를 법으로 보장한다.


그래서 여성이 일을 그만두지 않는다.

시간만 줄여서 계속 일한다.

승진도 하고, 경력도 쌓는다.

아이도 키우고, 커리어도 지킨다.


한국은 제도는 있는데 권리는 없다.

사업주 승인제라 쓸 수 없다.

시간제는 비정규직 취급을 받는다.


경력단절 여성 122만 명.

이들이 포기한 게 아니다.

제도가 포기시킨 것이다.


유연근무가 권리가 되는 순간, 경력단절은 사라진다.

스웨덴이 50년에 걸쳐 증명한 원칙이다.


다음 화 예고


"싱글맘도 차별받지 않는 나라는 어떻게 가능한가?"


스웨덴에서는 혼자 아이를 키워도 괜찮다.

정부가 주거 보조금, 양육비 선지급, 세금 감면을 제공한다.

한부모 가정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은 지원을 받는다.


13화에서는

싱글맘을 위한 스웨덴의 지원 시스템과

한부모 가정 차별이 없는 사회의 비밀을 들여다봅니다.


[스웨덴 : 아이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나라]

시스템의 완성

2부 4화. 경력단절이 사라진 나라, 유연근무의 힘

(이 글은 스웨덴 고용법(Anställningsskyddslagen) 16장 5조, 스웨덴 사회보험청(Försäkringskassan)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통계(2024년 6월), 한국 통계청 '지역별고용조사 기혼여성 고용 현황'(2024년 상반기), KDI '여성의 경력단절 우려와 출산율 감소' 연구(2024), OECD Employment Outlook 2024, 예테보리시 6시간 근무제 실험 결과(2017), 스웨덴 노동정책연구소(IFAU) '육아기 유연근무와 여성 고용' 보고서(2024), 한국 고용노동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제 사용 현황'(2023) 등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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