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속의 존재
바람이 들어오는 방향은 언제나 같다.
나는 그 바람이 스치는 소리만으로 계절을 짐작해 왔다.
한 번도 온전히 본 적 없는 세계를
이 작은 균열로만 상상해 왔다.
동굴은 나를 품어 주었지만,
그 품은 어느 순간부터 어둠의 온도가 되었다.
젖은 돌결은 손에 닿을 때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차갑게 알려주었다.
하지만 그 차가움이 완전한 적은 없었다.
어딘가에 미세한 따뜻함이 스며 있었고,
그것은 바깥에서 밀려오는 한 줄기 희미한 빛 때문이었다.
나는 매일 이 입구에 선다.
어떤 날은 돌부리에 걸린 먼지가 더 밝아 보이고,
어떤 날은 그 밝음마저도 멀게 느껴진다.
그러나 그게 무엇이든,
나는 여전히 바깥의 색을 모른 채
그저 빛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조용히 살아남았다.
빛을 설명해보라고 하면
나는 아마 제대로 말하지 못할 것이다.
한 번도 완전한 형태로 본 적 없는 것을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하지만 빛의 결이
동굴의 벽을 스칠 때 들려오는 작은 울림,
그 진동을 나는 오래 기억하고 있다.
세상은 아마도
그 작은 진동을 따라 나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바깥에 나가면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훨씬 넓은 하늘이 있을 테고,
그 아래에서 누군가는 나와 닮은 외로움을 견디고 있을 것이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내가 견뎌온 것들 역시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아직 용기가 부족하다.
동굴 밖으로 나가면
또 다른 어둠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빛은 빛대로 상처를 남길 테고
새로운 길은 새로운 두려움을 데려올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람이 스쳐 지나갈 때 느껴지는 그 미세한 떨림 하나로
나는 오늘도 입구에 선다.
세상의 바깥을 모른 채
그 바깥을 향해 조금씩 마음을 밀어 올린다.
아마도 살아간다는 건
계속해서 손에 닿지 않는 빛을 향해
조금씩 걸어가는 일인지도 모른다.
계속 흔들리면서,
어둠과 빛 사이에서 자신을 더듬어 가면서,
나라는 존재의 잔열을 잃지 않으려고 버티는 일.
나는 아직 모른다.
이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빛이 정말 내 것이 될 수 있는지.
하지만 단 하나는 분명하다.
오늘도, 나는 바깥을 바라본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어제보다 조금 더 바깥에 가까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