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잔에 담긴 투명한 진심
소주잔에 불빛이 닿으면
그 표면은 유리처럼 반짝이지만
맛은 늘 직선으로 내려간다.
차갑고 투명하고, 숨겨진 것이 없을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인간은 그 투명함 속에서 더 많은 것을 숨긴다.
나는 술자리에 앉아 있으면 늘 이런 생각을 한다.
사람이 소주를 마실 때 쏟아내는 말은
정말 ‘진실’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아니면 한순간 마음이 어긋나 만들어낸
어둡고 기묘한 울림에 가까운 것인가.
술은 마음에서 가장 먼저 ‘방패’를 녹인다.
사람들이 낮 동안 붙들고 있었던 이성과 자존심,
말하지 못한 억울함과 눈치 보던 감정들은
한두 잔이 지나면 천천히 경계를 잃는다.
그러다 갑자기 어떤 말은 너무 깊게 내려오고
어떤 말은 너무 가볍게 떠오른다.
그 중 무엇이 진실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진다.
때로는 진심이 술의 힘을 빌려 세상 밖으로 나오지만,
때로는 술이 마음의 균열을 눌러
왜곡된 형태로 번져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술자리의 말은
‘진실’과 ‘진실처럼 보이는 것’ 사이에 걸쳐 있다.
가끔 사람들은 술에 기대어 말한다.
“이건 맨정신엔 못 해.”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 진실은 맨정신에서조차 스스로 감당할 용기가 없다는 뜻이다.
오래 눌러두었던 말일수록
술은 그것을 먼저 끌어올린다.
그러나 끌어올려진 것이
언제나 순수한 모양을 하고 있지는 않다.
술은 마음을 풀어주지만
정확히는 ‘제일 아픈 결’을 먼저 풀어낸다.
그래서 취한 말에는
억울함이 섞이고,
미련이 섞이고,
질투와 후회와 상처가 얽힌다.
사람이 술 앞에서 솔직해지는 게 아니라
감정이 순서 없이 쏟아질 뿐이다.
그래서 누군가 술에 취해
평소 하지 않던 말을 할 때
그것이 반드시 진심이라고 말하지 못한다.
그 말이 흘러나온 순서가
진심의 뿌리가 아니라
상처의 표면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술자리에서 나온 말보다
술이 깬 다음 아침의 침묵,
그 침묵 속에서 내비치는 눈빛에서
그 사람의 진실을 더 많이 본다.
취한 말은 흔들린 마음의 잔상이고,
깨고 난 다음의 태도는
그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진심이다.
소주는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 속에 이미 금이 가 있던 부분을
조금 더 빨리 내려다보게 만든다.
취한 말은 진실이라기보다
진실을 둘러싸고 있던 무언가가
흘러나온 단면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말한 고백이나 분노보다
그 다음날의 말,
그날 밤을 회상하는 방식,
마주 앉은 사람에게 내미는 책임의 모양을 더 신뢰한다.
결국 진실은
술잔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술잔이 비워진 뒤
가만히 남아 있는 감정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 감정의 정직함으로
관계의 다음 장면을 써 내려간다.
소주는 진실을 드러내는 술이 아니다.
다만 잘 숨겨둔 마음 하나를 흔들어
진실을 바라볼 용기를
잠시 빌려주는 술일 뿐이다.
그 용기가 없으면
술이 아무리 진실을 끌어올려도
사람은 다시 가라앉혀 버린다.
반대로 그 용기가 있다면
술 없이도 사람은 진심을 말할 수 있다.
결국 술의 말과 진실의 말은 다르다.
술은 마음을 풀고,
진실은 마음을 열고,
그 둘의 차이를 아는 것이
어른이 되어간다는 뜻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