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생을 위한 도쿄의 비
도쿄의 비는
항상 같은 속도로 내린다.
비라기엔 너무 가늘고,
멈추기엔 너무 오래 머무는 물기.
그 물기가 골목의 공기를 적시면
네온사인은 물 위의 잉크처럼 느리게 번진다.
그곳을 걷는 사람들은
각자의 이어폰 속에서 재생되는 음악처럼
조용히, 묘한 리듬으로 움직였다.
어깨엔 하루 동안 쌓인 피로가 묻어 있었지만
그 피로조차 이 도시의 밝기 속에서
어딘가 부드럽게 희석되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우리 세대를 떠올렸다.
완전히 밝지도,
완전히 어둡지도 않은 얼굴들.
꿈을 크게 말하던 시절은 지나갔고,
지금은 오늘은 어떻게 지나갔지? 같은
새로운 형식의 살아냄을 배워가고 있는 사람들.
우기가 시작된 골목에서
젖은 도로 위로 택시가 빠르게 스쳐 지나갈 때면
차창 속 얼굴들이
순간적으로 빛에 잠겼다가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다.
짧고 흐릿하게 남는 잔상들.
그 잔상이 꼭
우리 세대의 감정 같았다.
금방 사라지는데
이상하게 오래 남는,
이름 붙이기 애매한 결들.
어떤 여자는 편의점 앞에서
뜨거운 캔커피를 손에 쥔 채
우산 없이 비를 맞고 서 있었다.
머리카락은 젖었지만
표정은 비에 지워지지 않았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보였으나
그 기다림조차 너무 조용해서
마음속에서만 이어지는 장면 같았다.
골목 건너에서는
두 남자가 캔맥주를 나눠 마시며
대화를 절반만 듣는 것 같은 얼굴로 서 있었다.
그 둘 사이에는
말보다 피로가 먼저 흘렀다.
나는 그 장면들에
우리 세대의 속도를 본다.
빠르게 가고 싶은데
몸은 자꾸 천천히 움직이고,
천천히 살고 싶은데
삶의 소음이 우리를 계속 밀어내는 속도.
시티팝에 흐르던 그 묘한 리듬-
빛보다 늦고,
슬픔보다 빠르며,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흐름이
도쿄 우기의 빗속에서 다시 살아난다.
건물 창에 비친 사람들의 실루엣은
오래된 뮤직비디오 속 장면처럼
조용히 흔들렸다.
그 흔들림 속에서
우리 세대는 잠시나마
자기 얼굴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을 것 같았다.
희망과 체념이 겹쳐지고,
불안과 견딤이 섞이는 방식으로
우리는 아직 살아 있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보다 많이 무너지고
누구보다 많이 다시 일어나는 세대라고.
새벽에 켜진 편의점 불빛처럼,
완전히 꺼지지 않은 빛 하나를 위해
긴 하루를 다시 살아내는 사람들.
도쿄의 빗속에서
흐릿하게 비친 얼굴들은 모두
살아내려는 표정이었다.
크게 울지도, 크게 웃지도 못하는 대신
아주 작은 결 하나로
자기 존재를 버티고 있었다.
그 흔들림은
이상할 만큼 아름다웠다.
불완전해서 더 선명하고,
흔들려서 더 살아 있는 생기였다.
우리는 완전한 존재가 아니었다.
하지만 잔향은 언제나 남아 있었다.
시티팝의 코러스처럼,
이 도시의 습기처럼,
여름밤 버스 창에 잠시 남았다 사라지는
입김처럼 오래 남았다.
우리는 흔들리면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는 사람들이다.
빛이 흐려져도,
길이 젖어도,
음악이 멀어져도.
우리는 늘 다음 장면으로
천천히, 조용히 걸어간다.
그리고 그 조용한 걸음이
어디선가, 누군가에게
또 하나의 작은 빛이 된다.
---
마츠바라 미키-Stay with me(1979)를 들으며 쓴 글입니다. 이제 40이 넘은, 40을 바라보는 80년대생들 모두 힘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