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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것들

시장길

by 윤담

오늘 시장에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들린 건,
아직 문 열 준비가 덜 된 천막들이 흔들리는 소리였다.
철봉이 바닥을 긁고,
두꺼운 천이 공기와 부딪혀 낮게 펄럭였다.

길모퉁이의 꽈배기집에서는
기름이 데워지는 냄새가 먼지 냄새와 함께 피어올랐다.
금속 냄새와 기름 냄새 사이에서
사람들의 발소리가 천천히 모여들기 시작했다.
발바닥이 시멘트를 스칠 때 나는
푸석푸석한 마찰음이 연속적으로 이어졌다.

뻥튀기 기계는 아직 조용했다.
그러다 첫 스위치가 켜지는 순간
웅-하는 낮은 진동이 기계 내부에서 차올랐다.
상인은 손바닥으로 기계 옆면을 두드려 반응을 확인했다.

그리고 잠시 뒤,
하늘이 잠깐 멈춘 것 같은 ‘펑’ 소리가 터졌다.
아이들이 일제히 기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눈동자에 금빛 파편이 맺힌 듯 번쩍였다가
아이들의 숨결에 실려 금방 사라졌다.

호떡집 앞에서는
반죽이 기름에 닿을 때
‘스으’ 하고 얇게 뜯기는 소리가 났다.
주인은 반죽을 손바닥으로 눌러
씨앗과 설탕물이 안쪽에서 끓어오르게 했다.
뜨거운 호떡을 받아 든 아이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고
아이의 입에서 새어 나온 뜨거운 숨이
겨울 공기 속에서 허옇게 흩어졌다.

채소 좌판에서는
칼날이 배추 줄기를 따라 들어가며
사각 하고 짧게 숨을 끊었다.
잘린 배추의 겉잎에서는
싱그러운 물기 냄새가 올라왔다.
할머니의 손목에는 새벽의 냉기가 아직 남아 있었고
손을 움직일 때마다
햇살이 손등의 주름을 따라 서서히 번졌다.

횟집 트럭 앞에서는
얼음 위에 놓인 생선이
차갑게 뒤척이며 소리를 냈다.
얼음이 갈리는 탁한 마찰음,
손가락으로 아가미를 젖힐 때 들리는
조용한 물결 소리.
사람들은 그 위에서
오늘 저녁이 될 생선을 골랐다.

떡볶이집에서는
양념이 끓으며 표면을 들썩였다.
빨간 국물의 기포가 터질 때마다
양념 냄새가 매운 연기처럼 번져 나왔다.
젊은 아주머니의 앞치마에
양념이 작은 점처럼 튀었다.
한 학생이 떡볶이를 한 입 먹자
입술 주변이 뜨겁게 물들었고
뺨까지 붉은 색이 흘러갔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문구 트럭에서
특가 스티커를 붙이는 소리가 들렸다.
‘찰칵’
작은 가격표가 바람에 흔들렸다.

바로 옆에서는
노점 커피포트에서 김이 올라왔다.
포트 뚜껑이 들썩이며
‘톡톡’ 소리를 냈다.
종이컵에 커피가 내려올 때
얇은 김이 사람들의 외투를 스치며 흩어졌다.

시장 끝자락에서
아버지와 딸을 보았다.
아버지는 아이의 손을 꼭 쥐고 있었고
아이는 갓 산 호떡을 양손으로 들고 있었다.
호떡 봉지가 바람에 살짝 부풀어 오르자
아버지가 조심스레 봉지를 내려주었다.
아이의 손등에는
설탕물이 반짝이는 작은 별처럼 묻어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지나치며
잠시 걸음을 멈췄다.
어디선가
건어물 봉지를 여는 바스락거림,
귤 상자를 정리하는 둔탁한 떨림,
억센 웃음이 터지는 소리,
아이 울음이 끼어드는 소리가
하나의 파도처럼 번져왔다.

그 소리들은 서로 겹치면서도
서로를 밀어내지 않았다.
시장 전체가
한 덩어리의 호흡처럼 느껴졌다.

돌아가는 길,
내 손끝에는 여전히 호떡 향이 묻어 있었고
두 뺨에 닿았던 바람은
살짝 따뜻하게 식어 있었다.
그 온도가
오늘 하루의 가장 긴 잔상처럼 남았다.

나는 마지막으로 뒤돌아보았다.
천막 아래 늘어선 색깔들,
손끝의 떨림들,
사람들의 얼굴에 잠깐씩 스치고 지나간 미소들.

그 장면들이
바람에 흩어지기 전에
잠깐, 아주 잠깐,
내 마음 한곳에 묻혔다.

그 순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알았다.

아, 난 오늘 살아 있었다.

바로 그 정도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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