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유랑

봄의 트로이메라이

by 윤담

겨울이 다 끝났다고들 말했지만, 도시는 좀처럼 계절을 넘겨주지 못하고 있었다. 해가 져도 공기에는 아직 덜 녹은 저녁의 냄새가 남았고, 콘서트홀 앞 광장의 화단 흙은 낮에 조금 풀렸다가 밤이면 다시 단단해졌다. 사람들은 얇아진 코트 위로 여전히 목도리를 둘렀고, 유리문이 자동으로 열릴 때마다 바깥의 찬 기운이 로비 바닥 위로 얇게 미끄러져 들어왔다. 공연이 끝난 뒤의 홀은 언제나 조금 낯설었다. 방금 전까지 수백 명의 숨이 닿았던 공간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조용했고, 조용하다는 말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결이 있었다. 조명이 식어 가는 냄새, 무대 바닥에 밴 송진 냄새, 현악기 케이스가 지나간 뒤 공기 중에 남는 마른 나무 냄새 같은 것들이 가라앉지 못한 채 천천히 떠다녔다.
해원은 그 냄새들을 오래 알고 있었다.
콘서트홀 운영팀에서 일한 지 햇수로 일곱 번째였다. 그녀는 공연예술 행정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았다. 말이 지나치게 단정해 보였기 때문이다. 실제 그녀의 일은 단정과 거리가 멀었다. 낮에는 대관 담당자와 다투고, 연주자의 매니저와 시간을 조율하고, 무대감독의 불만을 받아 적고, 후원사 명단의 철자를 다시 확인하고, 티켓 오류로 울먹이는 관객을 상대했다. 공연이 잘 끝나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나갔고, 무슨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는 늘 복도와 사무실과 전화기 사이에서 증식했다.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웃을 줄 알았고, 무례해지지 않는 선에서 냉정할 줄도 알았다. 그것은 배워서 된 성격이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얻게 된 문장들이었다.
밤이 되면 건물은 전혀 다른 몸이 되었다. 마지막 관객이 나가고, 매표소 유리가 닫히고, 청소 인력의 카트가 천천히 복도를 밀고 가면, 그때부터는 건물 자체가 숨을 죽이는 것 같았다. 해원은 그 시간대를 좋아했다. 모두가 떠난 뒤의 홀에서는 누구도 음악을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음악이 사람을 살렸다는 식의 쉬운 고백도 들리지 않았다. 남는 것은 의자 등받이의 둔한 광택과 검은 무대와, 조금 전에 끝난 것들의 잔열뿐이었다. 그녀는 그런 것들이 더 정직하다고 느꼈다.
그날 밤도 그랬다. 대극장에서는 실내악 공연이 있었고, 관객 반응은 좋았다. 로비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들, 꽃다발을 들고 뛰는 학생들, 사인을 받으려고 동선까지 따라붙는 이들. 모든 것이 익숙하게 지나갔고, 정리해야 할 사항들도 그다지 복잡하지 않았다. 해원은 폐관 전 마지막 점검을 하러 소극장 리허설실 쪽 복도로 들어섰다. 불은 거의 다 꺼져 있었고, 비상구 위 초록빛만 낮게 떠 있었다.
그때 피아노 소리가 들렸다.
처음에는 기계가 내는 소음인가 싶었다. 콘서트홀에는 밤에도 살아 움직이는 장비들이 많았다. 공조기의 낮은 진동, 냉장고 압축기 소리, 승강기 모터가 멈추기 직전의 마른 울음 같은 것들. 그러나 몇 걸음 더 가자 소리는 분명한 선율이 되었다. 느리고, 조심스럽고, 마지막 음을 쉽게 놓아주지 않는 종류의 연주였다.
해원은 복도 한가운데서 멈췄다.
트로이메라이.
너무 오래전 이름이라 마음속에서 부르는 데 시간이 걸렸다. 슈만. 어린 시절 연습실의 분필 냄새, 악보 귀퉁이에 붙여 놓은 손가락 번호, 활끝이 떨리던 겨울 오후가 아주 짧게 스쳤다. 그런데 그녀를 붙들어 세운 것은 곡의 이름보다 그 음의 결이었다. 대단한 연주처럼 들린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까웠다. 너무 조용해서, 조금만 방심하면 그저 밤 공기 속으로 스며들어 버릴 것 같은 음들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몇 개의 음이 복도의 공기를 바꾸고 있었다. 식어 가던 건물 안쪽 어디엔가 아직 작은 불씨 하나가 남아 있다는 것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들려주는 식이었다. 오래 잃어버렸다고 믿었던 것을 서랍 맨 뒤에서 우연히 찾아냈을 때처럼, 아직 손에 쥐지도 않았는데 벌써 심장이 먼저 알아보는 감각이 있었다.
그녀는 곧장 리허설실 문으로 다가갔다. 문 아래로 빛이 얇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문을 열자 남자가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다. 검은 코트를 의자 등에 걸쳐 두었고, 셔츠 소매는 손목 위까지 말아 올린 상태였다. 손등의 핏줄이 마른 가지처럼 올라와 있었다. 그는 문이 열린 것을 알아차렸을 텐데도 연주를 끊지 않았다. 마지막 화음까지 다 누르고, 그 잔향이 방의 모서리에 부딪혀 가라앉을 때까지 손을 건반 위에 올려둔 다음에야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해원이 먼저 말했다.
“지금 몇 시인지 아세요?”
남자는 손목시계를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열한 시 넘었습니다.”
“아시면 더 빨리 일어나셔야죠.”
남자는 그녀를 한 번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눈빛이 무심하다고 해야 할지, 피곤하다고 해야 할지 애매했다. 예의가 없는 표정은 아닌데, 설명할 의지도 별로 없어 보였다.
“출입 승인 받으셨어요?” 해원이 물었다.
“아니요.”
“그럼 여기 계시면 안 돼요.”
“압니다.”
“아는데 왜 있어요?”
남자가 아주 짧게 숨을 고르더니 말했다.
“사람이 없어서.”
해원은 순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바로 알아듣지 못했다. 사람 없는 곳을 찾는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고, 사람 없는 시간이라 괜찮다는 말처럼 들리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좋은 대답은 아니었다.
“여긴 사라지는 데가 아니고,” 그녀가 말했다. “건물이에요. 규정 있고, CCTV 있고, 책임자 있고요.”
남자는 가만히 듣다가 건반 덮개를 반쯤 내렸다.
“그럼 지금은 누가 책임자입니까?”
해원이 팔짱을 끼었다.
“저요.”
“그럼 제가 지금 나가면 됩니까.”
“원래는 그렇죠.”
“원래는?”
그 말투가 이상하게도 그녀를 건드렸다. 공손하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질문의 끝마다 상대를 밀어내는 마른 결이 있었다. 해원은 그런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누군가의 친절을 미리 믿지 않으려고, 모든 문장을 조금씩 닫아 두는 사람들의 말투였다.
“원래는 지금 보안팀 부르고 출입기록 확인해야 하는데,” 해원이 말했다. “오늘은 그냥 경고만 하겠습니다. 다음엔 안 돼요.”
남자는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알겠다는 뜻인지, 대화가 끝났다는 뜻인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그는 천천히 코트를 집어 들고 문 쪽으로 걸어왔다. 문턱을 지나기 직전, 해원이 무심코 물었다.
“무슨 곡이었어요?”
남자가 멈췄다.
“아시잖습니까.”
“확인하는 거예요.”
“트로이메라이.”
“그건 들었고. 왜 그 곡이냐고요.”
그는 잠깐 생각하는 얼굴을 했다.
“잘 안 틀리는 곡이라서요.”
해원은 그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잘 안 틀리는 곡. 누군가는 무대를 위로라 부르지만, 누군가는 그 위에서 틀리지 않을 곡부터 고른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다음 주에도 그 남자는 왔다.
이번에는 해원이 먼저 알아챘다. 폐관 준비를 마치고 복도 불을 끄러 가던 길이었다. 문틈 아래 불빛은 없었지만, 리허설실 안쪽에서 아주 낮은 음들이 새어나왔다. 쇼팽의 전주곡이었다. 비가 올 때보다 비가 오기 직전의 냄새를 닮은 곡. 해원은 잠깐 문 앞에 서 있었다. 음들은 여전히 크지 않았지만, 꼭 아무도 없는 곳에서만 모습을 드러내는 작은 동물처럼 방 안쪽을 조심스럽게 움직이고 있었다. 화려한 것이 아니라서 더 눈을 떼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다. 번쩍여서가 아니라, 너무 낮고 조용해서 오히려 더 귀한 것처럼 느껴지는 순간. 해원은 문고리를 잡은 채, 자신이 또 그 낯선 감각 앞에 멈춰 있다는 걸 알았다. 이미 한 번 지나쳤다고 생각한 세계의 가장자리가, 다시 아주 얇게 열리는 느낌.
그녀는 그대로 들어갔다.
남자는 여전히 피아노 앞에 앉아 있었고, 이번에는 중간에 멈추지 않았다. 대신 그녀가 들어온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연주했다. 마지막 음이 사라진 뒤에야 돌아보며 말했다.
“이번엔 보안팀 부르십니까?”
“그럴 시간이 없어요. 제가 더 피곤해서.”
“다행이군요.”
“안 다행인데요.” 해원이 문을 닫으며 말했다. “성함이 뭔데요?”
남자는 잠시 뜸을 들였다.
“선우입니다.”
“성은요.”
“굳이.”
“전 굳이 알아야 해요. 누군지 모르는 사람을 계속 들여보낼 수는 없으니까.”
그는 조금 마지못해 대답했다.
“윤선우.”
“직업.”
“피아니스트.”
“요즘도 그런 대답하는 사람 있네요. 프리랜서라고 하면 덜 거슬릴 텐데.”
“거슬리면 나가겠습니다.”
“말대꾸는 잘하네요.”
해원이 피아노 옆 접이의자에 걸터앉았다. 가까이서 보니 남자는 생각보다 어려 보이지도, 많아 보이지도 않았다. 정확히 나이를 추정하기 힘든 얼굴이었다. 오래 잠 못 잔 사람들 특유의 그림자가 눈 밑에 있었고, 입술은 늘 한 번 더 다물어져 있었다.
“왜 하필 여기예요?” 해원이 물었다. “시내에 연습실 많잖아요.”
“피아노가 안 좋습니다.”
“여긴 좋아요?”
“괜찮습니다.”
“괜찮으면 다예요?”
“대부분은.”
그 대답은 선우다운 것이었다. 필요한 만큼만 말하고, 그 이상은 침묵으로 덮어버리는 사람의 문장. 해원은 그제야 자신과 그의 말투가 전혀 다르다는 걸 깨달았다. 자신은 사람을 다루며 살아서인지 말을 부드럽게 우회시키거나 정확하게 자르거나 둘 중 하나였고, 그는 아예 끝을 매끈하게 다듬지 않았다. 잘린 면이 그대로 보였다.
“어디서 일해요, 윤 피아니스트는?”
“가끔 반주합니다.”
“가끔이 제일 수상해요.”
“안 믿으셔도 됩니다.”
“믿고 싶어서 묻는 게 아니에요. 혹시 사고 칠까 봐 묻는 거죠.”
선우가 그 말을 듣고 아주 옅게 웃었다. 웃음이라고 하기엔 표정의 한 모서리만 잠깐 풀린 정도였지만, 해원은 그 순간 그의 얼굴이 처음으로 사람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사고,” 그가 중얼거렸다. “그건 이미 친 편입니다.”
해원은 그 말의 뜻을 묻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집에 돌아가 누운 뒤에도 그 한 문장이 이상하게 들러붙었다. 이미 친 편입니다. 누군가 그렇게 말할 때의 표정은 대개 두 종류다. 후회하는 사람의 표정이나, 후회를 오래 지나와 더 이상 감추지 않는 사람의 표정. 선우는 후자에 가까워 보였다.
그 후로 그는 일주일에 두 번쯤 나타났다. 늘 같은 시간대였다. 건물 안에 사람이 거의 남지 않는 밤 열 시 이후. 해원은 처음 몇 번은 규정을 생각했고, 그다음 몇 번은 자신이 왜 계속 그를 묵인하는지 생각했다. 대답은 명확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연습실을 함부로 쓰지 않았다. 의자를 제자리에 두었고, 건반을 닫는 손길도 조심스러웠다. 무엇보다 연주가 이상했다. 과시가 없었다. 누구에게 잘 보이려는 속도도, 박수갈채를 상상하는 허세도 없이, 그는 마치 아무도 모르게 오래 땅속에 묻혀 있던 무언가를 혼자 꺼내 닦는 사람처럼 곡을 만졌다. 훌륭하다거나 대단하다는 말보다 먼저 오는 것은, 저 음들이 이상하게 귀하다는 감각이었다. 보물이라는 것은 꼭 금빛으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없는 밤의 연습실에서 너무 낮게 울려서 오히려 더 놓칠 수 없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한다는 것을, 해원은 그 무렵 조금씩 배워 갔다. 어쩌면 그녀가 마음에 들어 한 것은 연주 그 자체보다도, 듣는 사람이 없을 때에만 열리는 예술의 뒷모습이었는지도 몰랐다. 사람들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예술의 얼굴이 아니라, 혼자 남아 있을 때의 예술을 보는 것 같아서.
어느 밤, 선우는 드뷔시의 달빛을 치다가 중간에 멈췄다. 해원이 복도 쪽 의자에 기대 앉아 있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왜 멈춰요.”
“싫어하시는 줄 알았습니다.”
“제가 언제요.”
“표정이 늘 화난 사람 같아서.”
해원은 헛웃음을 냈다.
“그건 그냥 제 얼굴이에요.”
“안 좋은 얼굴이군요.”
“윤선우 씨.”
“네.”
“제가 지금 참는 이유는요, 피아노 때문에 아니고요. 건물 이미지 때문이에요. 여기서 싸우면 소리가 울리거든.”
선우가 다시 웃었다. 이번엔 조금 더 분명했다.
해원은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원래 독주 하던 사람이었죠.”
선우의 손가락이 건반 위에서 멈췄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반주하는 사람 손이 아니에요.”
“손에도 그런 게 보입니까?”
“보이죠. 반주자는 사람 숨 쉬는 데 맞추고, 독주자는 자기 호흡을 먼저 믿어요. 지금도 그래요.”
선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건반을 덮고 몸을 돌려 그녀를 마주 봤다.
“예전엔 했습니다.”
“지금은요?”
“지금은 안 합니다.”
“못 하는 거예요, 안 하는 거예요.”
해원의 말투는 늘 그랬다. 궁금하면 돌리지 않았다. 상대가 다칠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차피 상처라는 것은 돌아 들어간다고 덜 깊어지지 않는다고 믿는 쪽이었다. 선우는 한참 뒤에야 말했다.
“둘 다 비슷합니다.”
“무슨 일 있었어요?”
“무대에서 멈춘 적 있습니다.”
해원이 조용해졌다. 선우는 창 쪽을 한 번 보고 다시 말했다.
“국내 콩쿠르 결선이었는데, 생중계가 들어왔습니다. 협주곡 3악장이었고, 다 외운 곡이었고, 틀릴 이유가 없었죠. 그런데 카덴차 들어가기 직전에,” 그는 손가락 하나로 건반 가장자리만 툭 건드렸다. “아무것도 안 보였습니다. 악보를 외운다는 게 원래 이상한 일이잖습니까. 몸이 먼저 알고, 머리는 나중에 따라오고. 그런데 그날은 몸이 먼저 사라졌습니다. 건반이 있는데 길이 없더군요.”
해원은 그 장면을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 아니,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이 가득한 홀, 숨을 죽인 오케스트라, 지휘자의 눈빛, 조명이 내리꽂히는 무대. 그 한가운데서 갑자기 손이 길을 잃는 순간. 그녀는 무심한 척 물었다.
“그래서.”
“멈췄습니다.”
“다시 시작하면 되잖아요.”
“그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대개 객석에 있는 사람입니다.”
해원이 입을 다물었다.
“걸어나왔습니다. 끝까지 못 쳤고, 영상은 남았고, 사람들은 오래 떠들었습니다. 천재니 유망주니 하던 말이 다 사라지는 데는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더군요.”
그는 담담하게 말했지만, 담담함이라는 것은 대개 오래 끓은 뒤에야 굳는 표정이라는 걸 해원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반주해요?”
“사람 숨에 맞추는 일은, 내 숨만 믿는 것보다 덜 위험하니까.”
“안전해서요?”
“네.”
해원은 그 ‘안전해서’라는 대답이 이상하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늘 예술이 위험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다들 누군가에게만 위험을 떠넘긴다. 선우는 이미 한번 무너진 사람이었고, 이제는 덜 무너지는 자리를 찾고 있는 것뿐이었다. 그것이 비겁한지 아닌지는 쉽게 말할 수 없었다.
그날 연습실을 나서기 전에 선우가 물었다.
“해원 씨는요.”
“뭐가요.”
“왜 음악을 관두셨습니까?”
해원은 반사적으로 왼쪽 귀를 만졌다. 얇은 머리카락 뒤에 숨겨 둔 습관이었다.
“안 물어보는 게 예의 아닐까요?”
“제가 예의 바른 사람은 아니라서.”
해원은 잠깐 그를 노려보다가 웃지도 않은 채 말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어느 날부터 한쪽이 덜 들렸어요.”
선우의 눈빛이 미세하게 바뀌었다.
“사고도 아니고, 큰 병도 아니고, 그냥 어느 겨울부터요. 처음엔 감기인 줄 알았고, 그다음엔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고, 그러다 어느 날 교수님이 합주 중에 그러더라고요. 네가 지금 자기 소리를 못 듣는다고. 왼쪽이 먼저 멀어졌어요. 바이올린은 턱 밑에서 울리잖아요. 내 몸 가까이 있는 소리부터 이상해지는데, 계속 붙들고 있기가 싫었어요. 음악은 남한테는 괜찮은 얼굴만 보여주면서 안쪽에서는 사람을 계속 갉아먹는 구석이 있거든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생활은 돼요. 음악만 예전처럼 안 되는 거지.”
“그래서 여기 계시는군요.”
“어디 멀리 못 가겠더라고요. 떠난 척은 하는데 완전히 떠나진 못한 사람들 있잖아요. 제가 딱 그래요.”
선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침묵은 이전과 달랐다. 문을 닫아 버리는 침묵이 아니라, 상대의 말이 안으로 들어오게 두는 침묵에 가까웠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조금 더 자주 말을 섞었다.
해원은 여전히 바빴고, 선우는 여전히 밤에만 왔다. 하지만 서로를 완전히 낯선 사람으로 대하지 않게 된 뒤부터, 리허설실의 공기에는 이전과 다른 느슨함이 생겼다. 해원은 폐관 체크를 하다 말고 잠깐 의자에 앉아 그의 연주를 들었고, 선우는 가끔 연습 중간에 물을 마시며 그녀에게 짧게 물었다. 오늘은 무슨 공연이었습니까. 매진이었어요? 그 바이올리니스트 잘 합니까. 질문들은 대체로 간단했지만, 그 안에는 이상하게도 복도와 무대 사이를 건너가는 작은 다리가 있었다.
해원은 선우의 손이 추운 날 더 굳는다는 걸 알게 되었고, 선우는 해원이 사람 많은 로비에서는 오른쪽으로만 몸을 기울인다는 걸 알게 되었다. 왼쪽에서 누가 말을 걸면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조금 더 가까이 들이밀었다. 선우는 어느 날 그걸 알아차리고는 그녀가 서 있는 방향을 조용히 바꾸어 주었다.
“굳이 안 해도 돼요.”
해원이 말하자, 선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굳이 제가 자주 합니다.”
그 말에 해원은 한참 만에 웃었다. 선우는 웃는 해원을 처음 보는 것처럼 잠깐 눈을 멈췄다. 해원은 그 시선을 알아차리고도 모른 척했다.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갈등은 그 무렵부터 분명해졌다.
첫 번째는 아주 현실적인 것이었다. 콘서트홀은 봄 시즌 개편을 앞두고 있었고, 외부 감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출입 관리와 시설 사용 내역이 예민한 문제로 떠올랐다. 운영팀장은 직원 회의에서 몇 번이나 말했다. 무단 사용 적발되면 곤란해진다고. 담당자 책임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해원은 그 말이 자기 목을 조르는 것처럼 들렸다. 그녀는 그날 밤 리허설실에서 선우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이제 그만 와요.”
선우는 치던 곡을 멈추지 않은 채 말했다.
“감사 때문입니까.”
“네.”
“곤란해지십니까.”
“제가 무사하면 당신이 곤란해질 거고, 당신이 무사하면 제가 곤란해져요. 둘 다 귀찮으니까 끝내자는 거죠.”
“단호하시군요.”
“그런 얼굴이라니까요, 원래.”
선우는 한 소절을 더 치고 나서야 손을 떼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쉽게 물러날 줄 몰랐던 해원은 순간 당황했다.
“정말요?”
“제가 여기 와서 해원 씨 직장까지 망가뜨릴 생각은 없습니다.”
“망가뜨린다는 말은 좀 오버고요.”
“그럴 수도 있죠.”
해원은 알 수 없는 짜증이 났다. 자기가 먼저 끝내자고 해놓고, 막상 그가 순순히 물러나자 더 화가 나는 마음. 사람 마음은 대개 논리적이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안다고 해서 덜 우습지는 않았다.
“좋아요. 그럼 오늘까지만.”
“네.”
그는 정말 그날로 오지 않았다.
일주일쯤 지나자 해원은 건물의 조용함이 전보다 더 크게 들린다는 걸 알았다. 사람들은 원래 있던 것이 사라진 뒤에야 그 자리를 실감한다. 그녀는 계속 바빴고, 오히려 더 바빠졌다. 후원사 갈라 콘서트 일정이 추가되었고, 프로그램이 바뀌었고, 외부에서 초청된 바이올리니스트의 요구사항이 까다로웠다. 대기실 온도, 생수 브랜드, 동선, 리허설 시간. 해원은 하루 종일 전화를 붙들고 살았다. 그런데도 밤이 되면 무언가 빠진 것처럼 건물이 넓게 느껴졌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갈라 콘서트 사전 리허설 명단에서 낯익은 이름을 본 것이다.
피아노 협연 및 리허설 피아니스트: 윤선우
해원은 명단을 한참 내려다보다가 담당 기획자에게 물었다.
“이 사람, 그 윤선우 맞아요?”
기획자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응. 예전에 독주 좀 하다가 요즘 반주 쪽으로 많이 가는 사람. 급하게 구했는데 손이 좋아. 왜, 아는 사람이야?”
해원은 서류를 넘기며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얼굴만 좀 봤어요.”
“이번에 외국 실내악단 투어도 같이 간다던데. 북유럽 쪽.”
그 순간 해원의 손이 멈췄다.
“언제요?”
“갈라 끝나고 바로 출국한다는 것 같던데.”
그날 저녁, 해원은 일부러 리허설실이 아니라 대극장 무대 뒤편에 오래 남아 있었다. 선우는 정말 왔다. 검은 연습복 차림에, 악보를 여러 권 안고, 무대 위 스타인웨이 옆으로 걸어 들어왔다. 조명팀이 아직 다 세팅되지 않아 홀 안은 어슴푸레했고, 선우의 얼굴은 반쯤 그림자에 잠겨 있었다. 그는 대기 중인 바이올리니스트와 몇 마디를 나눈 뒤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리고 첫 음을 눌렀다.
그 순간 해원은 이상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녀가 알고 있던 밤의 연주와는 전혀 달랐다. 훨씬 정확하고, 차갑고, 집중되어 있었다. 사람 앞에서 잘 보이려는 허세는 여전히 없었지만, 그 대신 누군가를 위해 완벽하게 길을 열어 주는 기술이 있었다. 그는 반주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자기 호흡을 놓지 않고 있었다. 마치 절반은 남을 위해 연주하고, 절반은 아무에게도 내어주지 않는 사람 같았다. 그 첫 음이 울리는 순간, 해원은 처음으로 알았다. 밤의 리허설실에서 자신이 들은 것이 단지 숨겨진 연주가 아니라, 어쩌면 아직 아무에게도 다 보여 주지 않은 사람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그 중심이 지금은 타인의 선율 곁으로 물러나 있으면서도 완전히 지워지지 않은 채, 아주 얇고 날카로운 빛처럼 남아 있었다.
리허설이 끝난 뒤 선우가 무대에서 내려왔다. 해원은 복도 끝에 서 있었다. 그가 그녀를 보자 걸음을 멈췄다.
“여긴 왜.”
“여긴 제 직장이거든요.”
“그렇군요.”
해원은 그 평평한 목소리에 더 화가 났다.
“외국 간다면서요.”
선우는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들으셨습니까.”
“말 안 했네요.”
“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왜요? 저한테는 여기가 그냥 연습실 담당자였어요?”
“처음엔 그랬죠.”
해원은 그 말에 숨이 턱 막혔다. 그런데 선우는 한 박자 늦게 덧붙였다.
“지금은 아닙니다.”
“그럼 뭔데요.”
선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런 식이었다. 가장 중요한 문장 앞에서 늘 한 걸음 물러나는 사람. 해원은 그 태도가 지겨웠다.
“떠날 사람들은 원래 말이 없어요?”
그가 마른 얼굴로 웃었다.
“남는 사람들은 원래 다 아는 척하더군요.”
“아는 척 아니고, 진짜 알아야 되는 순간이 있는 거예요.”
“무엇을요.”
“사람 마음 같은 거요.”
선우는 잠시 눈을 감았다 뜨더니, 낮게 말했다.
“사람 마음은 늘 늦게 도착합니다.”
해원은 그 문장을 그 자리에서 미워했다. 너무 정확해서였다.
그날 이후 둘 사이에는 분명한 금이 갔다. 해원은 업무상 선우를 계속 봐야 했고, 선우 역시 그녀를 피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전의 느슨한 친밀감은 사라졌다. 그녀는 무대 대기표를 건네며 필요한 말만 했고, 그는 고맙습니다, 알겠습니다, 정도의 짧은 답만 돌려주었다. 서로 말투는 다르지만 침묵은 이상하게 닮아 있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닫혀 버린 사람들의 침묵.
그러던 중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다. 갈라 콘서트 이틀 전, 메인 피아니스트가 갑작스러운 손목 염좌로 협연 프로그램에서 빠지게 되었다. 무대는 이미 다 팔렸고, 후원사 인사들은 대거 초청된 상태였다. 기획팀은 발을 동동 굴렀고, 대체 프로그램을 짜느라 밤새 회의를 했다. 누군가가 선우의 이름을 꺼냈다. 예전 독주 경력, 이번 리허설에서 보여 준 안정감, 급한 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손. 운영팀 사무실은 갑자기 부산해졌다. 해원은 프린터에서 막 나온 수정 프로그램 용지를 정리하다가, 열린 회의실 문틈으로 들려오는 말을 들었다.
“윤선우 씨가 한 곡만 맡아 주면 됩니다. 쇼팽 발라드 1번 정도면….” “본인이 독주 안 한다고 하면?” “설득해야죠. 이 정도면 본인한테도 기회인데.”
해원은 순간 손끝이 얼어붙는 걸 느꼈다.
그날 밤 그녀는 무대 뒤 창고 쪽 통로에서 선우를 만났다. 그는 매니저와 통화를 끝낸 참이었다. 목소리는 낮았고, 표정은 거의 없었다.
“독주 제안 받았어요?”
선우가 휴대전화를 내리며 그녀를 봤다.
“네.”
“할 거예요?”
“모릅니다.”
해원은 웃음이 나왔다. 어이없을 때 나오는 웃음이었다.
“당신 진짜 이상한 사람이네요.”
“많이 듣습니다.”
“이런 기회가 어디 흔해요.”
“흔하지 않죠.”
“그런데 왜 그 얼굴이에요.”
선우는 벽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무대가 저한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지 않아서.”
“기억이 사람을 먹여 살려요?”
“나쁜 기억은 사람을 다시 같은 자리로 못 가게도 합니다.”
해원은 그를 노려보았다.
“당신은 떠나는 게 아니라 도망가는 거예요.”
선우의 눈빛이 순간 차갑게 가라앉았다.
“해원 씨는 왜 여기서만 삽니까.”
해원이 입을 다물었다.
“한쪽이 덜 들려도 살아지죠. 그런데도 왜 계속 홀을 떠나지 못합니까. 당신도 같은 겁니다. 완전히 잃지 않은 쪽을 붙들고 사는 거.”
“적어도 나는 사람들한테 거짓말은 안 해요.”
“제가 무슨 거짓말을 했습니까?”
“아무것도 아닌 척하는 거. 다 괜찮은 척하는 거. 당신 연주 듣고 있으면 아직도 무대가 그리워 죽겠는 얼굴인데.”
선우는 한참 말이 없었다. 복도 끝 자동문이 열렸다 닫히며 차가운 공기를 밀어 넣었다. 그는 그 바람을 등으로 맞은 채, 아주 낮게 말했다.
“그립습니다.”
해원은 이상하게 그 한마디에 더 아팠다. 사람은 가끔 변명보다 고백에 더 상처받는다.
“그럼 올라가요, 무대에.” 해원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한 번쯤은 사람 말고 자기를 믿어봐요.”
“자기를 믿고 무너진 적 있습니다.”
“그럼 이번엔 누구를 믿을 건데요.”
선우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봤다. 해원은 그 시선이 너무 오래 자기 쪽에 머무는 것을 견디기 어려웠다.
“그게 문제입니다.”
“뭐가.”
“누군가를 믿게 되면, 떠나는 일이 더 어려워집니다.”
말이 끝난 뒤에도 둘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해원은 그제야 자신이 숨을 참아 왔다는 걸 알았다. 그녀는 더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선우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다음 날 저녁, 해원은 야간 점검을 마치고 소극장 무대 쪽을 지나가다가 검은 객석 속 한 자리에 앉아 있는 선우를 발견했다. 홀에는 작업등만 켜져 있어 무대 위 피아노 윤곽만 희미하게 보였다. 그는 연주하지 않고 그냥 앉아 있었다.
해원은 한참 망설이다가 객석 중간쯤 그에게서 두 자리쯤 떨어진 곳에 앉았다.
“왜 여기 있어요.”
“소리 없는 홀을 들으려고.”
“그런 건 안 들려요.”
“들립니다.”
“또 이상한 소리 하네.”
선우가 웃지 않은 채 말했다.
“무대는 사람을 올려놓는 곳이 아니라, 누구를 버릴지 고르는 곳 같아서요.”
해원은 그 문장을 듣고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 말은 과장처럼 들리지 않았다. 그가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난 그렇게까지는 생각 안 해요.”
“해원 씨는 무대를 가까이서 봤지만, 위에 오래 서 있진 않았으니까.”
“그래서 나를 덜 안다고 생각해요?”
“아니요. 오히려 더 무서운 방식으로 안다고 생각합니다.”
해원은 자기 오른손으로 왼쪽 손목을 쥐었다. 긴장하면 나오는 습관이었다.
“나 음악 관둔 거, 미련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근데 적어도 난 거기서 사람까지 밀어내진 않아요.”
“전 아직 음악이 사람보다 먼저라고 말할 만큼 미친 사람은 아닙니다.”
“그럼.”
“음악이 먼저였던 시간을 버리지 못하는 겁니다.”
선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객석 등받이에 기대 눈을 감았다. 해원은 그 옆얼굴을 오래 보았다. 빛이 부족한 홀에서는 사람 얼굴이 더 솔직해졌다. 잘 다문 입술, 거의 웃지 않는 선, 긴장하면 더 선명해지는 턱의 근육. 누군가를 쉽게 기대게 하지 않는 얼굴인데, 이상하게 그날은 지쳐 보였다.
해원은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
“나 때문에 망설여요?”
선우의 눈꺼풀이 천천히 들렸다.
“그런 질문은 공평하지 않습니다.”
“왜요.”
“어느 쪽으로 대답해도 누군가 다치니까.”
“상관없어요. 어차피 지금도 안 다친 건 아니니까.”
선우는 아주 오래 침묵했다. 그리고 마침내 말했다.
“해원 씨 옆에 있으면, 사람이 사는 방식이 꼭 무대 아니어도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해원은 그 말을 듣자마자 눈을 감았다. 너무 늦게 도착한 문장이었다. 그녀가 듣고 싶지 않았던 문장이기도 했다. 누군가가 사랑을 그렇게 말할 때, 그 안에는 이미 떠날 준비가 반쯤 들어 있기 때문이다. 당신 때문에 살고 싶어졌다는 말은, 종종 당신을 두고도 살아야 한다는 결심과 같은 방향을 본다.
“그런데?” 그녀가 물었다.
“그런데 저는 아직 그걸 선택할 사람이 아닙니다.”
해원은 웃었다. 이번엔 분명히 비웃음이었다.
“결국 그 말이네. 당신은 음악 쪽 사람이고, 나는 아니고.”
“그렇게 자르려는 건 아닙니다.”
“아니긴요. 사람은 사랑 때문에 떠나는 게 아니에요. 자기가 버리지 못한 것 때문에 떠나는 거지.”
선우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주 잠깐. 해원은 그걸 놓치지 않았다. 그날 밤 두 사람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같이 앉아 있었지만, 이미 각자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다.
갈라 콘서트 당일, 도시는 아침부터 비가 왔다. 우산 끝에서 물방울이 떨어졌고, 로비 바닥에는 젖은 발자국이 끊임없이 번졌다. 후원사 담당자들은 정장을 차려입고 일찍 도착했고, 플래시를 준비하는 사진기자들도 있었다. 프로그램은 바뀌었고, 선우의 이름은 예상보다 크게 인쇄되었다. 대체 독주라는 문구가 낯설게 빛났다.
해원은 하루 종일 뛰어다녔다. 대기실, 로비, 객석 입구, 무대 뒤편. 그러나 그녀의 의식은 이상할 정도로 선우가 있는 방향을 향해 기울었다. 한쪽 귀가 멀어진 뒤로 사람 소리는 늘 비대칭으로 들어왔는데, 이상하게 그날은 건물 전체가 한 사람을 향해 기울어져 울리는 것 같았다.
공연 직전, 선우가 무대 뒤 복도에 홀로 서 있었다. 검은 턱시도 차림이었다. 얼굴은 더 창백해 보였고, 손끝은 주머니 안에서 가볍게 접혔다 펴졌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해원은 잠깐 멈칫하다가 다가갔다.
“긴장돼요?”
선우가 웃지 않은 채 말했다.
“죽을 것 같습니다.”
“잘됐네요.”
“위로입니까.”
“아니요. 살아 있단 뜻이니까.”
선우는 처음으로 아주 짧게 웃었다. 그리고 물었다.
“끝나고 잠깐 시간 됩니까.”
해원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넥타이가 조금 비뚤어진 걸 보고 손을 뻗었다. 손끝이 목 부분의 실크를 바로잡았다. 너무 가까운 거리였다. 선우는 움직이지 않았다. 해원은 넥타이를 정리한 뒤 손을 거두지 못하고 잠깐 그의 셔츠 칼라 끝을 누르고 있었다. 그러다 천천히 눈을 들었다.
“윤선우.”
“네.”
“망치지 말아요.”
선우는 그녀를 보며 아주 낮게 말했다.
“이미 한 번 망친 적 있지 않습니까.”
해원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때는 당신이 망가진 거고. 오늘은 망치지 말라는 거예요.”
그 말이 끝나자 선우가 그녀의 손목을 가만히 잡았다. 세게도, 느슨하게도 아닌 힘이었다. 해원은 심장이 늦게 뛰는 걸 느꼈다. 선우가 손목을 잡은 채 한 발짝 가까이 왔다. 둘 사이에 남은 거리는 거의 없었다.
“끝나고,” 그가 다시 말했다. “정말 이야기합시다.”
해원은 그때 고개를 끄덕였는지, 움직이지 못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다음 순간 선우가 손을 놓고 무대 쪽으로 걸어갔고, 검은 커튼 뒤로 그의 뒷모습이 사라졌다는 것만 또렷이 남았다.
무대 위에 선우가 나타났을 때 객석은 조용했다. 대체 투입된 연주자를 향한 미묘한 기대와 의심이 홀을 메우고 있었다. 해원은 객석 맨 뒤 통로 쪽에 잠깐 서 있었다. 그녀는 본래 공연 중에 객석에 앉지 않았다. 문제 생기면 바로 움직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날은 첫 곡이 시작될 때까지 그 자리를 떠날 수 없었다.
선우는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가, 건반 위에 가져다 두었다. 아주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 짧은 침묵이 이상했다. 단순한 준비의 정적이라기보다, 아주 깊은 물 밑에 가라앉아 있던 것이 수면 가까이 올라오기 직전의 고요에 가까웠다. 해원은 통로 난간을 쥔 손끝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꼈다.
그리고 첫 음이 나왔다.
그건 거창한 시작이 아니었다. 번개처럼 떨어지는 음도, 객석을 단번에 압도하는 서두도 아니었다. 너무 단정해서 오히려 스쳐 지나갈 수도 있는 첫 음이었다. 그런데 바로 그 한 음 때문에 해원은 등줄기 어딘가가 서늘해지는 걸 느꼈다.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사람을 뒤흔드는 것은 늘 큰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가끔은 아주 정확한 작은 소리 하나가 그 사람 안의 가장 깊은 곳을 먼저 건드리기도 했다.
쇼팽이었다.
해원은 그 순간, 밤의 리허설실에서 들었던 남자와 지금 무대에 앉은 사람이 같은 사람이라는 걸 믿기 어려웠다. 그는 화려하게 연주하지 않았다. 오히려 절제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절제가 더 위험했다. 건반 하나하나를 지나갈 때마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안쪽으로 눌러 두고 있는지가 느껴졌다. 빠른 패시지에서는 손보다 숨이 먼저 달렸고, 느린 부분에서는 마치 누군가를 끝까지 놓아주지 않으려는 사람처럼 음을 오래 붙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해원은 그것을 단지 긴장이나 절제라고만 부를 수 없다는 걸 알았다. 선우는 곡을 연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래 닫혀 있던 자기 안의 문 하나를 건반 위에서 조금씩 열고 있었다. 음 하나를 누를 때마다 그것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무너졌던 자리에 남아 있던 조각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리는 손길 같았다. 보물이란 애초에 찬란한 모습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인지도 몰랐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오래 잃어버렸던 줄도 모르던 상태로, 어느 날 갑자기 손끝에 닿는 법인지도. 해원은 지금 자신이 단순히 연주를 듣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자기 안에서 잃어버렸던 것을 다시 찾아내는 순간을 보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혔다.
그는 완벽하진 않았다. 몇 군데는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런데 바로 그 흔들림 때문에 해원은 숨을 못 쉬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연주였다. 틀리지 않기 위해 고른 곡을 치던 남자가 아니라, 틀리더라도 자기 자리까지 가 보려는 사람의 얼굴이 거기 있었다. 손끝은 더 이상 안전한 길만 더듬지 않았다. 흔들릴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이후까지 포함해서 끝까지 가 보겠다고 말하는 손이었다.
객석도 그것을 알아차린 듯했다. 사람들은 점점 더 조용해졌다. 숨을 쉬는 일조차 방해가 될까 봐 각자의 몸 안으로 조금씩 접혀 들어가는 표정들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누군가의 완벽함 앞에서 감탄하는 침묵이 아니라, 눈앞에서 아주 귀한 것이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을 망칠까 봐 감히 손을 대지 못하는 침묵에 가까웠다.
마지막 부분에 이르렀을 때 해원은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성공이나 복귀 같은 말은 너무 바깥쪽의 말이라고. 지금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보다 더 작고, 더 조용하고, 그래서 오히려 더 귀했다. 무너졌던 사람이 자기 손으로 무너진 자리의 돌을 하나씩 치우고, 그 밑에 아직 깨지지 않은 조각 하나가 남아 있다는 걸 처음 확인하는 순간. 멀리서 보면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그보다 드문 장면도 없다는 것을, 해원은 그날 처음 알았다.
마지막 음이 떨어졌다.
그 뒤 몇 초 동안 객석은 박수를 치지 못했다.
그건 단순히 잘해서 생기는 침묵이 아니었다. 놀라서 생기는 정적도 아니었다. 사람들 각자가 방금 자기 안의 조금 깊은 곳까지 함께 끌려갔다가, 아직 거기서 다 돌아오지 못한 듯한 침묵이었다.
그리고 박수가 터졌다.
크고 길었다. 조금은 놀란 박수이기도 했다. 하지만 해원은 이미 박수보다 먼저 끝난 것을 알고 있었다. 누군가는 방금 무대 위에서 자기 안의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았다. 그것은 트로피보다 작고, 명성보다 조용하고, 박수보다 빨리 사라질 수도 있는 것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어떤 것보다 귀해 보였다.
해원은 그 순간 이상한 안도와 절망을 동시에 느꼈다. 그는 해냈다. 그리고 해냈기 때문에, 더 떠날 사람처럼 보였다.
공연이 끝난 뒤 건물은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관계자 인사, 악수, 사진 촬영, 급한 철수. 해원은 해야 할 일이 많았고, 그 일들은 그녀를 조금도 배려하지 않았다. 그녀는 선우를 바로 만나지 못했다. 대기실 앞까지 갔을 때는 이미 정리 인력이 악보 상자를 옮기고 있었고, 선우는 보이지 않았다. 복도 끝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방금 나갔어요. 공항 가는 것 같던데.
해원은 한동안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로비를 가로질러 바깥으로 나갔다. 비는 거의 그쳤고, 광장 바닥은 젖은 채로 검게 빛났다. 택시 몇 대가 줄지어 있었지만, 선우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누군가 문득 자기 안에서 아주 조용한 곳을 찢고 지나가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소리도, 피도, 큰 몸짓도 없이. 해원은 그날 처음 그 감각을 알았다.
그는 끝나고 이야기하자고 했고, 끝나자 떠났다.
그것은 너무 명백한 문장이라 오히려 해석의 여지가 없었다.
다음 날 오전, 운영팀 사무실로 작은 봉투 하나가 도착했다. 수신인은 해원이었다. 봉투 안에는 짧은 메모와 리허설실 열쇠 복제본 하나가 들어 있었다.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도 알 수 없는 것이었다. 메모에는 단 두 줄만 적혀 있었다.
그날부터 계속 빌렸습니다.
돌려드립니다.
해원은 한참 그 문장을 내려다봤다. 화가 났다. 웃음도 났다. 너무 그다운 말이라서. 사과도, 설명도, 감정도 아닌 문장. 그러나 맨 아래, 아주 작게 덧붙인 한 줄 때문에 결국 그녀는 메모를 접지 못했다.
잘 안 틀리는 곡부터 다시 시작하지 않기를.
해원은 그 문장을 읽고 나서야 의자에 앉았다. 손끝이 조금 떨렸다. 그녀는 한 손으로 왼쪽 귀를 만졌다. 여전히 덜 들리는 쪽은 조용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은 덜 들리는 쪽에서 먼저 무언가가 다가오는 느낌이 있었다. 아주 오래전에 끝난 줄 알았던 문장 하나가, 너무 늦게, 너무 정확하게.
봄은 결국 왔다.
콘서트홀 앞 광장 화단에는 작은 풀들이 먼저 올라왔고, 로비에 비치는 햇빛은 겨울보다 한 겹 얇아졌다. 공연은 계속되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박수를 쳤고, 누군가는 울었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었다. 건물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음 프로그램을 향해 움직였다. 해원도 마찬가지였다. 일정표를 붙이고, 계약서를 확인하고, 전화에 응대하고, 대기실 냉난방 온도를 체크했다. 살아간다는 건 대개 그렇게, 상처가 있든 없든 해야 할 일의 형식으로 계속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밤이 되면 가끔 소극장 리허설실 쪽 복도로 발걸음이 향했다. 문은 이제 잠겨 있었고, 안은 비어 있었다. 해원은 몇 번이나 그냥 지나가려다가도 결국 잠깐 멈춰 섰다. 문 아래로 빛이 새어나오지 않는 걸 확인하고서야 다시 걸었다. 어떤 기다림은,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뒤에도 몸이 먼저 기억한다.
초여름으로 넘어가던 어느 날, 소극장에서 젊은 피아니스트들의 마스터클래스가 열렸다. 강사가 학생 한 명에게 말했다.
“실수는 고칠 수 있어요. 그런데 겁은, 자기가 직접 지나가야 없어집니다.”
해원은 객석 뒤편에서 그 말을 듣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 문장은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평범한 말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는 그날 밤 집에 돌아와 서랍 맨 안쪽에서 오래된 바이올린 케이스를 꺼냈다. 먼지가 얇게 앉아 있었다. 케이스를 열자, 활의 말총은 오래 말라 있었고, 악기 표면에는 세월이 남긴 잔흠집이 미세하게 떠 있었다.
해원은 악기를 꺼내지 않았다. 한참 바라보기만 했다.
사랑은 대체로 남는 사람 쪽에 더 오래 머문다. 떠난 사람은 떠나는 순간 하나의 방향이 되지만, 남은 사람은 그 자리에 남아 여러 방향으로 조금씩 찢긴다. 그래서 실패한 사랑에는 늘 여운이 많다. 끝난 뒤에도 한동안 스스로를 설명해야 하고, 그 사람 없이도 계속 살아야 하며, 무엇보다 그 사람 때문에 자기도 몰랐던 자기 모습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해원은 늦게 알았다. 자기가 선우를 사랑하게 된 것은 그가 음악을 잘해서가 아니었다. 무너진 뒤에도 완전히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의 얼굴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더 늦게 알았다. 그 사랑이 실패한 이유 역시 음악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는 결국 자기 안의 무대와 화해하지 못한 채 떠났고, 그녀 역시 자기 안의 침묵을 끝까지 건너지 못했다. 둘은 서로에게 다가간 것 같았지만, 사실은 각자 버리지 못한 것을 품은 채 상대의 어깨 근처까지 왔다가 멈춘 셈이었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의 어느 저녁, 해원은 폐관 점검을 마치고 대극장 객석 뒤편에 잠깐 앉았다. 무대에는 아무도 없었고, 피아노 뚜껑은 닫혀 있었다. 작업등만 남아 있어 검은 표면 위로 희미한 빛이 미끄러졌다. 홀 안은 숨을 죽인 것처럼 조용했다.
해원은 문득, 덜 들리는 왼쪽 쪽으로 몸을 조금 기울였다. 물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건 기적 같은 장면이 아니었다. 병은 낭만적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떠난 사람도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아주 잠깐, 정말 잠깐, 그녀는 예전과 다른 방식으로 그 조용함을 견딜 수 있다고 느꼈다. 침묵이 더 이상 상실의 모양만은 아닌 것 같았다. 어쩌면 어떤 것들은 끝까지 되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남은 사람이 조금씩 다른 쪽으로 자라나는지도 몰랐다.
그녀는 빈 무대를 오래 바라보았다.
그리고 아주 작게, 아무도 듣지 못할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이번엔 잘 안 틀리는 쪽 말고.”
그 말은 누구에게 들려주기 위한 것도 아니었고, 누군가에게 약속하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오래 닫혀 있던 문장 하나가, 자기 안에서 처음으로 끝까지 발음된 순간에 가까웠다.
홀은 여전히 비어 있었다. 피아노는 닫혀 있었고, 조명은 낮았고, 바깥에는 비가 오기 직전의 바람이 유리벽을 스치고 있었다. 사람 하나 없는 공간인데도 이상하게 누군가 다녀간 자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미 떠난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 때문에 조금 달라진 자기 자신이 거기에 먼저 와 앉아 있는 것처럼.
해원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대 쪽으로 내려가지도,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어떤 사랑은 붙잡지 못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붙잡는 손보다 먼저 각자의 방향이 생겨 버려서 끝난다. 그리고 그런 사랑은 대개 오래 남는다. 미련이 깊어서가 아니라, 한 사람을 잃는 동안 자기 안의 다른 문 하나가 함께 열리기 때문이다.
문을 나서기 직전, 그녀는 한 번 더 객석 쪽을 돌아보았다. 검은 의자들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었고, 그 위로 고요가 얇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녀는 그 조용함이 이제는 조금 다르게 들린다고 생각했다. 완전히는 아니어도, 적어도 예전처럼 자신을 밀어내지는 않는다고.
그는 떠났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 사실은 앞으로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은 떠난 뒤에 더 분명해진다. 곁에 있을 때보다, 끝난 뒤에 더 오래 작용한다. 마치 연주가 끝나고 난 뒤 홀 안에 남는 잔향처럼. 음악은 늘 마지막 음에서 끝나지 않는다. 사람도 가끔 그렇다. 사랑은 특히 더 그렇다. 끝난 줄 알았는데도 아주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공기 중에는 분명히 남아 있는 진동 같은 것.
해원은 불을 끄고 문을 닫았다.
복도에는 그녀의 발소리만 작게 따라왔다. 그리고 그 소리는 이전보다 덜 쓸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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