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유랑

도시유랑 2부

by 윤담

도시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얼굴을 가장하고 있었다.
무너진 자리를 밤새 메워 두고, 아침이면 그 위에 흰 차선을 새로 긋고, 점심 무렵이면 도시정비과 표지판 하나를 세워 두는 식의 일을 이곳은 너무 오래 반복해 왔다. 어제 저녁까지 놀이터였던 자리가 오늘 아침엔 평평한 아스팔트 바닥이 되어 있고, 사라진 계단참 대신 안전 난간이 반듯하게 박혀 있고, 검은 천막 아래로 사람 하나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는 사실은 통행 불편 안내문 한 장으로 접혀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츰 믿게 되었다. 도시에서 사라지는 것은 정말로 없어진 것이 아니라 정리된 것뿐이라고. 여기는 늘 정리되고, 보수되고, 관리되고, 복구되므로.
서이언은 그 믿음을 누구보다 잘 수행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사건 후 사흘 만에 다시 출근했다. 오른손 장갑 안쪽의 까진 살은 아직 덜 아물어 펜을 오래 쥐면 묵직한 열이 올라왔지만, 손상은 업무 불가 판정을 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의무실에서는 하루 더 쉬라고 했고 오만석은 알아서 하라고 했고, 서이언은 예정된 시간에 관사 문을 열고 나왔다. 계단참 창문에 비친 새벽은 유리 한 장 두께만큼 차가웠고, 어제와 다르지 않은 회색이었다. 그는 늘 그렇듯 창문 앞에서 잠깐 멈췄다. 하늘이 하나인지 확인하는 버릇이었다. 흐림도 괜찮고 비도 괜찮았다. 중요한 것은 찢어진 흔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구름이 아니라 균열의 선으로 나뉘어 있지 않다는 것. 그 단순한 사실이 그날 하루를 견딜 만한 범위로 접어 넣어 주었다.
중앙청사는 제 모서리를 정확히 알고 선 건물이었다. 유리 파사드는 면마다 다른 하늘을 반사했지만, 안쪽 복도는 복도답게 곧았고 각 층의 형광등은 같은 간격으로 켜져 있었다. 카드키를 대면 문이 열리고, 문이 열리면 차가운 공기와 사무실 특유의 건조한 종이 냄새가 나고, 책상 위 서류철들은 등 맞춘 책들처럼 반듯하게 꽂혀 있었다. 서이언은 이 모든 정렬을 좋아했다기보다는, 그것 없이는 사람의 정신이 제자리에서 버티지 못한다고 믿었다. 경계가 무너지면 생각도 무너진다. 문과 벽과 절차와 보고서가 인간을 인간으로 묶어 둔다. 균열은 그 반대편에서 시작된다.
회의실 문을 열자 오만석이 먼저 와 있었다.
오만석은 누구에게나 첫인상부터 팀장처럼 보이는 사람이 아니었다. 키가 특별히 크지도 않았고, 어깨가 아주 넓지도 않았다. 몸은 오히려 군더더기 없이 말라 있는 쪽에 가까웠다. 그러나 그는 사람이 오래 서 있으면 자연스레 무게가 생긴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인상이 있었다. 이목구비는 굵지 않았고, 코끝은 조금 무뎠고, 눈은 반쯤 졸린 것처럼 보였다. 늘 수면이 부족한 것 같은 얼굴인데, 정작 피로가 쌓여 보이지는 않았다. 무표정에 가까운 얼굴이었다. 웃지 않아서 차가운 인상이 아니라, 무엇이 들어와도 크게 흔들릴 자리가 없어 보이는 얼굴. 나이는 오십을 넘겼을 텐데 머리에는 흰 기가 희미하게만 섞여 있었고, 입가에는 깊은 주름 대신 오래된 체념이 남긴 잔금 같은 것만 보였다. 담배를 많이 피운 사람 특유의 마른 목소리, 오래 걷는 사람의 무릎, 사무실에 앉아 있어도 늘 어디선가 막 돌아온 것처럼 보이는 구두의 먼지. 그런 것들이 그를 설명했다.
그는 서류철을 펼쳐 둔 채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설탕도 없이 탄 검은 커피가 종이컵 안에서 식어 가고 있었는데, 그는 맛을 느끼는 사람처럼 마시지 않았다. 단지 빈 입을 적시는 사람처럼, 기계적으로 한 모금을 넘기고 다시 내려놓았다.
“왔냐.”
서이언이 들어오자 그가 말했다.
“예.”
“손은?”
“쓸 만합니다.”
오만석은 더 묻지 않았다. 회의실 창 바깥으로 아침빛이 비스듬히 들어와 그의 뺨 한쪽만 창백하게 드러냈다. 그 빛 속에서 그는 잠시 종이 위 숫자들을 내려다봤다. 마치 거기에 적힌 것은 붕괴 반경도, 개방률도, 소실 인원도 아니라 오래된 전기료 고지서쯤인 것처럼.
“31섹터는 종결 올렸다.”
“예.”
“잔류파 수치 하나 남아 있더라.”
“희석 범위입니다.”
“그래.”
그는 바로 수긍했다. 맞아서 수긍하는 것이 아니라, 맞든 틀리든 서류가 그렇게 가면 그렇게 되는 식의 수긍이었다. 그 태도는 무심함을 넘어선 것이었다. 사람들은 대개 무심한 사람을 차갑다고 부르지만, 오만석은 차갑다기보다 이미 온도를 잃은 사람에 가까웠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고, 어느 쪽으로도 쉽게 반응하지 않는 표면. 어떻게 되든 결국 보고서 한 줄로 정리될 것을 아는 사람의 표정.
“시민 발표는 지반 침하. 전력 이상. 시설물 일부 파손. 인명 피해는 조사 중.”
그가 서류를 넘기며 말했다.
“민원 들어오면 도시정비과로 넘기고, 가족이 따지면 자료 비공개 원칙으로 막아. 언론 쪽은 어제 자정까지 잡아놨다.”
서이언은 대답했다.
“예.”
오만석은 종이컵을 들어 남은 커피를 비우듯 마셨다. 컵 가장자리에 그의 입술 자국이 옅게 남았다가 금세 식어 사라졌다.
“그 소년 이름은 파일에서 지울 거다.”
그 말이 떨어졌을 때 회의실 안의 소리는 형광등의 낮은 울림밖에 없었다. 서이언은 잠시 그를 보았다.
“번호로 대체합니까.”
“늘 그렇게 했지.”
“가족 확인은.”
“가족이 남았으면 벌써 연락이 왔겠지.”
“어머니는 이전 사건에서—”
“사라졌고.” 오만석이 말을 잘랐다.

“그건 8년 전 자료고. 이번 건하고 따로 분류할 거다.”
서이언은 입을 다물었다. 오만석은 서류철을 덮었다. 덮는 동작에도 감정이 없었다. 누군가의 이름이 사라진다는 사실과, 오래된 보험 계약서를 정리한다는 사실이 그 손끝에서는 같은 무게로 취급되는 듯했다.
“신경 쓰이냐?”
갑작스럽게 그가 물었다.
서이언은 잠시 말을 고르다가 대답했다.
“의미 없는 죽음이었습니다.”
오만석은 웃지 않았다. 그러나 입가에 아주 옅은 선 하나가 생겼다. 웃음이라기보다, 이미 여러 번 들은 문장을 다시 들었을 때 생기는 선.
“그래. 네 눈에는 그렇겠지.”
“팀장님은 다르게 보십니까.”
“아니.”
그는 너무 쉽게 말했다.
“나도 별 의미 없다고 본다.”
잠깐의 정적 뒤에 그가 덧붙였다.
“사람 하나 사라진 거지. 도시가 멈춘 것도 아니고.”
그 말은 잔인하려는 의도로 나온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더 건조했다. 악의가 실린 잔혹함은 아직 어떤 종류의 감정에 속한다. 오만석의 말에는 감정이 거의 없었다. 그게 그를 오래 버티게 한 힘인지, 오래 버티며 잃어버린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회의가 끝나고 사람들이 빠져나간 뒤에도 서이언은 잠시 자리에 남아 있었다. 벽면 지도 위 제31섹터는 더 이상 붉지 않았다. 회색의 같은 격자 속에 다른 구역들과 구분 없이 눌려 있었다. 마치 원래부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날 점심 무렵, 서이언은 혼자 중앙청 식당에 앉아 있었다. 식판 위 반찬들은 늘 그렇듯 네모난 칸에 정확히 맞춰 담겨 있었고, 국은 지나치게 뜨겁지 않았으며, 김치는 일정한 크기로 잘려 있었다. 그는 이런 점심을 좋아했다. 입에 넣는 순서까지 정할 수 있는 식사. 온도와 양과 위치가 크게 달라지지 않는 식사. 사람은 이런 작은 고정점들 덕분에 하루를 미끄러지지 않고 걸을 수 있다.
국을 떠올렸을 때 표면에 형광등 빛이 흔들렸다. 그 흔들림은 물결처럼 퍼지지 않고 안쪽으로 한 번 접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안에 아주 짧게 방 하나가 비쳤다. 식탁, 컵 두 개, 젖은 우산. 해가 지기 전의 생활 냄새까지 따라 나올 것 같은 방. 서이언은 숟가락을 멈췄다. 눈을 한번 감았다 뜨자 국은 다시 국이었다. 맑고 뜨거운 액체, 식당의 형광등만 반사하는 일상적인 표면.
그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국을 마셨다. 그러나 목을 넘길 때 미세한 쓴맛이 남았다. 조미료의 맛이 아니라, 기억이 맛을 갖는다면 아마 이런 쓴맛일 것 같다고 생각하게 만드는 종류의 미각이었다.
그날 퇴근 후 그는 제31섹터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의도는 없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었지만, 사실은 목적이 있었다. 도시의 정리가 얼마나 완벽한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 혹은 정리되지 않은 것이 남아 있는지 보고 싶은 마음. 둘 중 어느 쪽인지 그는 굳이 구분하지 않았다.
사건 현장이었던 놀이터 자리는 이미 평탄화되어 있었다. 모래밭도 없고 철제 미끄럼틀도 없고, 휘어지던 담벼락도 없었다. 대신 흰 분필 같은 선으로 주차 구획이 그어져 있었고, 노란 안전 콘이 질서 있게 세워져 있었다. 인근 상가의 창문들은 새 유리로 갈아 끼워져 있었고, 편의점 간판도 다시 살아나 있었다. 저녁 장을 보고 돌아가는 주민들이 비닐봉지를 들고 골목을 지났고, 배달 오토바이가 축축한 매연 냄새를 남기며 빠져나갔다. 오래된 아파트 베란다에는 빨래가 걸려 있었고, 어디선가 된장찌개 냄새가 흘러나왔다.
도시는 늘 이렇게 자신의 상처 위에 생활을 얹었다. 사라진 자리 바로 옆에서 사람들은 라면을 끓이고, 택배를 받고, 아이를 혼내고, 쓰레기를 내다 버렸다. 그것이 비정함인지 회복력인지, 서이언은 오래전부터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중요한 것은 움직임이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도시는 멈추면 죽는다.
그는 방금 그어진 주차선을 밟지 않고 걸었다. 흰 선 사이, 사각형의 빈 폭 안을 골라 한 칸 한 칸 지나갔다. 그러다 한 지점에서 멈췄다. 바닥에 아주 얇은 긁힌 자국이 있었다. 금속으로 그은 것도, 아스팔트가 갈라진 것도 아니었다. 선이라기엔 방향이 없고, 얼룩이라기엔 너무 가늘었다. 마치 선이 되려다 실패한 무엇이 표면 바로 밑에서 한 번 몸을 뒤튼 흔적처럼 보였다.
“거기서 사람들 다 멈춰 서요.”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편의점 비닐봉지를 든 할머니 하나가 서 있었다. 연회색 머리를 짧게 자른, 등이 약간 굽은 몸. 그녀는 서이언이 서 있는 자리를 턱으로 가리켰다.
“그 선 같은 데를 다들 한번씩 보더라고.”
“왜 그런다고 생각하십니까.”
할머니는 대수롭지 않게 어깨를 으쓱했다.
“몰라요. 옛날에 저기 애들 놀이터 있었거든. 없어진 다음부터 그냥 좀 이상해. 사람들이 그 자리에 오면 뭐 하나 잊은 얼굴이 돼. 바로 다시들 가지만.”
그녀는 말을 마치고 비닐봉지 손잡이를 손등에 고쳐 걸었다.
“도시는 늘 뭐 하나씩 잊고 사니까. 우리도 그렇고.”
그리고 더 말할 것 없이 골목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서이언은 그 뒷모습을 한동안 보았다. 할머니의 발은 느렸지만 정확했다. 움푹 팬 인도 틈을 피해 걷는 발. 오래 살아남은 사람들의 걸음. 그런데 그 걸음도 자세히 보면 어디에도 완전히 정박하지 않은 사람의 움직임이었다. 집으로 가는 걸음 같으면서도, 늘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은 조심스러운 체중. 도시의 사람들은 모두 제 주소를 갖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누구 하나 완전히 도착한 얼굴로 걷지 않았다.
다음 주, 서이언은 새 현장에 투입되었다. 이번에는 큰 사건이 아니었다. 제9지하차도 벽면 타일 하나가 들뜨고, 야간 순찰 대원이 그 틈에서 누군가 숨 쉬는 소리를 들었다고 보고한 정도였다. 야간 순찰 대원은 쉰을 넘긴 남자였는데, 그는 보고서를 읽는 동안 몇 차례 같은 말을 반복했다.

“분명 여자 숨소리 같았습니다.”

“바로 귓등에서 나는 것처럼.”

“타일 뒤에 사람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서이언은 늘 하듯 타일 간격을 재고, 위상 수치를 측정하고, 결속핀을 박았다. 푸른 선이 벽을 타고 얇게 퍼졌다. 숨소리는 멎었다. 작업은 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철수 직전, 오만석이 현장에 도착했다. 그는 야전 재킷 지퍼를 목까지 올리고 있었고, 머리 위 콘크리트 천장에서는 빗물이 한 방울씩 떨어졌다. 지하차도의 형광등은 반쯤 나가 있어 공기가 누렇게 보였다. 자동차 매연이 벽면에 얇게 들러붙은 냄새가 났고, 젖은 먼지 냄새가 그 아래에 엷게 깔려 있었다.
“간단하네.”
오만석이 말했다.
“예.”
“야간 순찰 대원은 뭐래?”
“여자 숨소리라고 진술했습니다.”
“다들 그렇게 말하지.”
오만석은 타일 벽을 한번 손등으로 두드려 보고는 웃지도 않은 얼굴로 덧붙였다.
“누구는 아들 목소리 듣고, 누구는 죽은 아내 냄새 맡고, 누구는 자기가 살던 집 본다 그러고. 도시가 참 친절해. 꼭 필요한 것만 골라서 보여주거든.”
그는 그 말이 우스운 농담이라도 되는 것처럼 담배를 꺼냈다가, 금연 표지판을 보고 다시 넣었다. 그리고 서이언을 쳐다보며 물었다.
“너도 가끔 보이냐?”
서이언은 즉답하지 않았다.
오만석은 다시 물었다.
“안 보이는 척할 필요 없어. 오래 버틴 놈들은 대개 한번쯤 본다.”
지하차도 끝에서는 차들이 물기를 가르며 지나가고 있었다. 헤드라이트 빛이 젖은 벽에 길게 번졌다가 끊겼다. 그 빛이 오만석의 얼굴을 스칠 때마다, 그의 눈동자 안에는 깊이가 아니라 오래된 마모 같은 것이 드러났다. 사람은 무엇인가를 너무 오래 닫다 보면, 닫는 행위 자체로 닳는다. 오만석의 얼굴에는 그런 마모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상처처럼 갖고 다니지 않았다. 구두 밑창이 닳는 것과 비슷한 일로 받아들인 듯했다.
“가끔,” 서이언이 말했다.
오만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원래 다 그렇다.”
“팀장님도 그렇습니까?”
“나?”
그는 잠깐 생각하는 듯했으나, 곧 어깨를 으쓱했다.
“옛날엔 좀 봤지. 지금은 별로. 많이 보면 익숙해지고, 더 많이 보면 질리고, 그보다 더 지나면 아예 안 궁금해져.”
“안 궁금해진다고요?”
“그래.” 오만석이 벽에 등을 기대며 말했다.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결국 남는 건 보고서 한 장인데, 궁금해하면 뭐 하냐.”
그 말투에는 냉소도 없었다. 오히려 자기 몸 어디엔가 있던 감정을 오래전에 다 써 버리고 난 사람의 피곤한 솔직함이 있었다.
“처음엔 나도 그랬다. 누가 왜 들어갔는지, 뭘 봤는지, 마지막에 무슨 표정이었는지. 다 궁금했지. 하나하나 의미 붙이고. 근데 그러다 보면 일을 못 해. 도시는 하루에 한 번만 금 가는 게 아니거든.”
그는 손가락으로 허공에 가느다란 선을 하나 긋듯 움직였다.
“여기 한 줄, 저기 한 줄. 사라지는 사람도 계속 나오고, 남는 사람도 계속 남아. 그걸 전부 마음에 남겨 놓고 어떻게 계속 닫냐.”
“그래서 신경을 끊으셨습니까?”
“끊은 게 아니라 신경이 닳은 거지.”
오만석은 고개를 들고 형광등을 바라보았다. 천장 틈에서 떨어진 물방울 하나가 그의 어깨에 닿았다. 그는 닦지 않았다.
“도시라는 건 결국 거대한 환승역 같은 거야. 다들 어딘가로 가는 중인데 잠깐 멈춰 서 있는 척하는 거지. 집도 직장도 결혼도 주소도 다 정류장 비슷한 거고. 완전히 도착한 사람은 없어. 그런데 사람들은 자꾸 도착했다고 믿고 싶어 해. 그래야 버티니까.”
그는 말끝을 조금 눌렀다.
“그러다 누가 먼저 문 하나 잘못 열면, 남은 사람들은 그걸 불행이라고 부르고 말이야”
서이언은 대답하지 않았다. 지하차도 벽면의 타일 사이에서 더 이상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푸른 결속선은 안정적이었고, 수치는 기준치 안에 있었다. 현장은 종료였다. 그러나 오만석의 말은 끝난 현장 위에 얇은 먼지처럼 남아 있었다.
며칠 뒤 비가 내렸다. 낮부터 오던 비가 해 질 무렵 더 짙어져, 중앙청사 창문들은 수면 아래 잠긴 것처럼 뿌옇게 흐려졌다. 사무실 사람들은 하나둘 퇴근했고, 마지막으로 남은 형광등 몇 개가 텅 빈 책상들 위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오만석은 드물게 서이언을 자기 방으로 불렀다.
팀장실은 예상보다 좁았다. 책상 하나, 철제 캐비닛 두 개, 벽에 붙은 도시 지도와 오래된 시계. 창문은 있었지만 블라인드가 반쯤 내려와 있어 밖의 비빛이 회색 막처럼 스며들었다. 방 안에서는 담배 냄새가 났다. 실제로 피우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으나, 오래 몸에 밴 냄새는 벽지에도 스민다. 오만석은 책상 위 파일 더미를 옆으로 밀고 의자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는 비 오는 날의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마른 날이나 젖은 날이나 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얼굴이었다.
“앉아.”
서이언이 맞은편 의자에 앉자 오만석은 캐비닛 서랍에서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오래된 사건 목록이었다. 연도와 섹터 번호, 간단한 분류 기호. 이름은 거의 없었다. 대부분 실종자 A, 미상 1, 민간인 2, 식별 불가. 서이언은 한참 그 종이를 보았다. 숫자들이 계단처럼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도시의 다른 해들, 다른 계절들, 다른 골목들의 사라짐이 한 장의 목록 속에서 같은 활자로 눌려 있었다.
“네가 전에 물었잖아.” 오만석이 말했다.

“내가 이 일에서 신경을 끊었냐고.”
서이언은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예.”
“신경 쓰이지 않는 게 아냐. 진짜 닳고 닳은 거지.”
오만석은 손가락으로 목록의 중간쯤을 짚었다.
“이게 내가 균열 관련 일을 처음 맡은 해에 쓴 보고서들이야. 그때는 나도 젊었고, 도시를 철썩 같이 믿었지. 균열을 닫으면 끝나고, 균열을 막으면 뭔가가 지켜지고, 그것을 숨기면 시민들이 살 수 있다고 생각했어. 뭐, 틀린 말은 아니야. 지금도 어느 정도는 맞아.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지.”
그는 다른 줄을 짚었다.
“닫았는데 또 열려. 막았는데 다른 데서 금 가. 숨겼는데 사라진 사람이 없어지진 않지. 남은 사람들 얼굴엔 계속 뭐가 남고.”
오만석은 말을 멈추고 창밖의 비를 한동안 바라보았다. 블라인드 틈으로 들어온 회색 빛이 그의 턱선을 눌렀다.
“나도 예전에 아내가 있었다.”
서이언은 고개를 들었다. 오만석이 자신의 개인사를 입 밖에 내는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은 없습니까?”
“살아는 있어.” 오만석이 말했다.

“다른 도시로 십삼 년 전에 나갔다. 딸도 같이 데리고.”
그 말은 놀랍도록 평평했다. 아내가 떠났다는 고백이 아니라, 주소 이전 사실을 보고하는 목소리였다. 그러나 바로 그 평평함 때문에 오히려 오래 눌린 것이 느껴졌다.
“왜 떠났는지 아냐?”
그는 묻고 바로 스스로 대답했다.
“내가 집에 있어도 이 정신이 늘 딴 데 있었거든. 사건 끝나고 돌아가면 밥 먹다가 멈추고, 애 자는 얼굴 보다 말고, 창문 잠금 확인하고, 물소리 나는 데 쳐다보고. 처음 몇 년은 견뎠지. 그러다 어느 날 아내가 그러더라. 당신은 항상 우리를 지키겠다고 말하는데, 정작 한 번도 여기 있는 적이 없다고.”
서이언은 말이 없었다. 오만석은 웃지도 않은 채 계속했다.
“맞는 말이었지. 나는 늘 닫힌 문 쪽 귀를 기울이고 있었거든. 집 안에 앉아 있어도 도시의 다른 틈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다 보면 자기 집도 결국 임시 대피소처럼 보이기 시작해. 그러니 누가 견디겠냐.”
그는 서류를 한번 툭 쳤다.
“아내는 나갔고, 딸은 자라서 지금은 얼굴도 잘 기억 안 난다. 사진으로 보면 알겠지. 근데 실제로 문 열고 들어와도 바로 못 알아볼 것 같아.”
그 고백은 비극처럼 들리지 않았다. 오만석에게 이미 오래전에 말이 끝난 문장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듣는 사람에게는, 그가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상관없는 사람이 된 이유의 한 귀퉁이가 살짝 드러나는 정도였다. 사람은 처음부터 무심한 게 아니라, 너무 오래 무엇에 반응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더는 견디지 못해 무심함 쪽으로 말라붙기도 한다.
“그래서 상관없어지신 겁니까.”
서이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오만석은 한참 생각하다 대답했다.
“처음엔 상관있었지. 그러다 어느 날부터 상관없는 척을 한 거고. 더 지나서는 진짜로 덜 상관있어졌고.”
“지금은.”
그는 빗소리를 듣듯 조용히 말했다.
“지금도 아주 없진 않다. 다만 상관있는 걸 티 내서 해결된 적이 없더라.”
방 안이 한동안 조용했다. 빗물이 창틀을 때리는 소리만 들렸다. 오만석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캐비닛 아래 칸에서 낡은 도시 지도를 하나 꺼냈다. 종이는 오래 접힌 탓에 선들이 희미하게 갈라져 있었다. 그는 지도를 책상 위에 펼쳤다. 현재의 도로망 위에 손으로 덧그은 오래된 골목들과 사라진 건물들, 철거된 상가와 매립된 지하통로가 빼곡했다.
“이게 뭔지 아냐.”
“예전 지도입니까.”
“예전이 아니라 겹친 지도다. 지금 도시 위에 사라진 도시들 겹쳐 놓은 것.”
오만석의 손가락이 선들을 더듬었다. 지금은 광장이 된 자리 아래 예전 시장통, 고가도로 아래 매립된 냇물, 아파트 단지 밑으로 눌린 동네. 지도는 한 장이 아니라 여러 장의 시간을 포개 둔 두께처럼 보였다.
“우리가 걷는 길 밑에는 늘 다른 길이 있다. 다들 자기 집 간다고 걷지만, 사실은 사라진 주소들 위를 밟고 가는 거지. 도시가 정해져 있어 보이는 건 표면뿐이야. 바닥 밑은 계속 움직인다.”
그는 블라인드 틈으로 밖을 한번 보았다. 비 오는 거리에서 사람들은 우산을 들고 각자 다른 방향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교차로에서 서로 스치고, 횡단보도에서 멈추고, 버스정류장 지붕 아래 모였다가 다시 흩어졌다. 누구나 자기 목적지를 가진 얼굴인데도, 멀리서 보면 모두 같은 회색의 흐름에 실려 가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그러니 결국 다 유랑자지.”
오만석이 중얼거렸다.
“정착한 척하는 유랑자.”
그 말은 그가 처음으로 꺼내는 진심 같았다. 아니, 진심이라기보다 오래 입 안에 굴리다 이제야 바깥공기를 쐬는 생각 같았다. 그는 지도를 접지 않고 그대로 둔 채 의자에 다시 앉았다.
“그 소년도 그랬겠지. 어딘가 도착하고 싶었을 거다. 안 됐고. 네가 보기엔 죽음이고, 걔 보기엔 출구였겠지.”
서이언은 낮게 말했다.
“출구는 아닙니다.”
“알아.”
오만석은 쉽게 수긍했다.
“출구 아니지. 대부분은 그냥 사라짐이다. 그래도 사람은 자기가 나가는 중이라고 믿으면서 들어가더라.”
“그건 자유가 아닙니다.”
오만석은 잠시 서이언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피곤했지만 흐리지 않았다.
“그럼 네 자유는 뭐냐?”
질문은 조용했으나 곧았다. 서이언은 답을 바로 내놓지 못했다. 그는 오랫동안 자유라는 말을 적극적으로 정의해 본 적이 없었다. 다만 자신이 아닌 다른 종류의 자유를 경계해 왔다. 선택이 많아질수록 사람은 흔들리고, 흔들리면 틈이 생기고, 틈이 생기면 누군가 죽는다. 그 경험이 그의 세계를 만들었다. 그러니 그에게 자유란 바깥으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바깥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였다. 정해진 절차 속에서, 닫힌 문 안에서, 할 일을 알며 사는 것. 선택으로 인해 누군가를 잃지 않는 것.
“무너지지 않는 겁니다.”
그가 결국 말했다.
“경계 안에 있는 것. 제자리를 알고, 바깥으로 새지 않는 것.”
오만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너답네.”
그는 더 반박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표정에는 아주 희미한 슬픔인지 피로인지 모를 것이 스쳤다. 마치 오래전 자신도 비슷한 말을 믿었던 적이 있다는 듯한 표정.
그날 이후 서이언은 몇 차례 더 오만석과 현장을 함께 나갔다. 작은 균열들, 막다른 골목의 푸른 틈, 엘리베이터 거울 뒤에서 들렸다는 환청, 지하주차장 기둥 옆에 생긴 검은 선. 사건들은 대부분 경미했고 절차대로 닫혔다. 그러나 도시의 표면 아래를 더 자주 의식하게 된 것은 그 무렵부터였다. 횡단보도 흰 줄 아래 또 다른 흰 줄이 눌려 있을 것 같은 감각, 아파트 단지 사이 산책로가 오래전 누군가의 골목길 위에 덮여 있다는 상상, 지하철 플랫폼에 서 있는 사람들 발밑으로 사라진 계단참과 매몰된 방들이 겹쳐 있다는 생각. 도시의 반듯함이 오히려 얇게 느껴졌다. 얇은 유리판 위에 사람들이 너무 많이 올라서 있는 것 같은 느낌. 겉으로는 제자리를 알고 걷지만, 실은 모두 미세하게 떠다니는 사람들.
출근길에 보이는 얼굴들도 그때부터 조금 다르게 보였다. 대형마트 유니폼을 입은 젊은 여자, 등교하는 고등학생들, 유모차를 밀며 이어폰을 꽂은 남자, 편의점 앞에서 삼각김밥을 먹는 택배 기사. 그들 모두는 분명 어디론가 가고 있었으나, 이상하게도 누구 하나 완전히 도착한 표정은 아니었다. 버스 손잡이를 쥔 손, 교통카드를 찍고 지나가는 어깨, 건널목 앞에서 발끝으로 작은 원을 그리는 습관들. 모든 몸짓에는 약간의 임시성이 있었다. 오늘도 지나가야 하는 자리를 잠깐 빌려 걷는 사람들의 몸짓.
그해 가을 초입, 서이언은 오만석과 야간 순찰을 돌았다. 비가 그친 뒤라 도시는 젖은 금속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간선도로는 여전히 환했고 광고판들은 새 상품과 새 아파트와 새 삶을 팔고 있었지만, 그 빛이 닿지 않는 이면도로는 훨씬 오래된 시간을 머금고 있었다. 배수로 근처에서는 썩은 나뭇잎 냄새가 났고, 폐업한 세탁소 유리에는 지워지지 않은 글자가 뒤집혀 붙어 있었다. 어둠 속 건물들은 마치 낮의 주소를 잠시 벗어 둔 것처럼 낯설어 보였다.
둘은 오래된 주택가를 걸었다. 골목은 좁았고, 전신주 위 전선들은 하늘 대신 서로를 향해 엉켜 있었다. 집집마다 현관등이 켜져 있었지만, 그 불빛들은 바깥을 비추기보다 안쪽의 존재를 겨우 표시하는 점처럼 보였다.
오만석이 문득 말했다.
“이런 데가 제일 먼저 금이 가.”
“노후 구역이라서 그렇습니까.”
“그것도 그렇고.”
그는 주택 담벼락 위로 비집고 나온 나뭇가지를 손등으로 밀어냈다.
“여기서 사람들이 오래 버텼거든. 오래 버틴 데는 늘 눌린 게 많아.”
그 말은 놀랍도록 정확했다. 균열은 화려한 빌딩 숲보다 이런 오래된 주택가, 재개발이 멈춘 변두리, 철거가 예고되었다 취소된 구역, 기억과 생활이 반쯤 포개진 동네들에서 더 자주 나타났다. 도시는 늘 바깥으로 넓어지지만, 안쪽의 오래된 층은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사라지지 못한 것들이 눌리고 쌓이고, 어느 날 문턱 하나가 견디지 못하면 거기서 금이 간다.
골목 끝에 다다랐을 때, 2층 창문 하나에 어린아이의 그림자가 비쳤다. 커튼 뒤에서 누군가 방 안을 천천히 오갔다. 그 그림자를 보며 오만석이 아주 낮게 말했다.
“저 안에 사는 아이도 언젠가는 어디론가 떠날 거야.”
“어딜 말입니까.”
“다른 동네든, 다른 도시든, 아니면 더 먼 데든.”
그는 웃지 않았다.
“사람은 결국 다 떠나. 살아서든, 죽어서든, 그리고 사라져서든.”
서이언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말은 그의 안쪽 어디엔가 얇게 걸렸다. 떠나는 것과 자유는 같은 말이 아니다. 떠난다고 해서 다 해방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도시의 모든 삶은 결국 이동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출생신고가 되고, 전학을 가고, 취업을 하고, 이사를 하고, 결혼을 하고, 헤어지고, 전출을 하고, 실종되고, 사망신고가 된다. 주소만 바뀌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형태 전체가 이동한다. 남아 있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매일 조금씩 다른 곳으로 미끄러지고 있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 오만석은 인사 발령서를 받았다. 승진도 강등도 아닌, 중앙청 내부 행정직 전환이었다. 더 이상 현장에 직접 나가지 않아도 되는 자리. 대부분은 그런 발령을 반길 것이다. 오만석은 봉투를 뜯어 본 뒤 책상 위에 내려놓고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가십니까?”
서이언이 물었다.
오만석은 서류를 다시 한번 보고는 말했다.
“가라면 가야지.”
“원하셨습니까?”
“모르겠다.”
그는 종이 가장자리를 손톱으로 한번 눌렀다. 종이가 얇게 휘었다가 펴졌다.
“현장 그만 보고 싶었던 건 맞는데, 막상 빼 준다니까 그것도 기분이 이상하네.”
“행정직이면 덜 피곤하실 겁니다.”
오만석은 그제야 아주 옅게 웃었다. 피곤한 사람이 아니라 피곤 자체가 잠깐 형태를 취한 것 같은 웃음이었다.
“덜 피곤하겠지. 대신 더 많이 뭔가를 지우게 될 거다. 현장에서는 문을 닫고, 안에서는 이름을 지우고. 별 차이 없네.”
발령 전 마지막 주, 그는 서이언을 옥상으로 불렀다. 겨울바람이 높게 불었고 도시의 불빛은 저녁 안개 위로 층층이 떠 있었다. 아래로는 고가도로의 헤드라이트가 강물처럼 흘렀고, 멀리 변두리 물류단지의 주황등이 낮은 별자리처럼 깜박였다. 그 모든 빛은 질서정연했지만, 멀리서 보면 이상하게도 한 곳으로 모이지 않고 각자 다른 속도로 표류하는 점들처럼 보였다.
오만석은 난간에 기대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규정을 어기는 걸 알면서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도시는 말이다. 위에서 보면 좀 자세하게 볼 수 있어.”
그가 말했다.
“뭐가 말입니까.”
“사람들이 갈피를 못 잡고 유랑하는 게 자세히 보이거든.”
서이언도 난간 아래를 보았다. 퇴근하는 차들, 골목을 건너는 사람들, 플랫폼에 멈춘 전철, 다리 위의 빨간 후미등들. 정말로 모두가 흐르고 있었다. 정지해 있는 건 건물뿐이었고, 그 건물조차 자세히 보면 내부의 불빛이 켜지고 꺼지며 끊임없이 사람이 빠져나가고 들어왔다. 도시의 정해진 구조는 사실 움직이는 것들을 잠시 붙잡아 두기 위한 외곽선에 지나지 않는지도 몰랐다.
오만석이 담배 연기를 길게 뱉었다.
“너한테 한 가지만 말해 둔다.”
서이언은 고개를 돌렸다.
“계속 균열을 닫아라. 그건 맞는 일이야.”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
“근데 가끔은 말이야. 사람들이 왜 그 균열을 열려고 하는지도 잊지 마라.”
서이언은 낮게 물었다.
“기억한다고 해서 달라집니까?”
“달라지진 않지.”
오만석은 솔직하게 말했다.
“그래도 그것을 잊으면,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저 네가 스스로 그냥 잠긴 문이 돼버리는 거라고.”
그 말은 이상하게도 오래 남았다. 문이 된다는 것. 사람은 평생 문을 다루다가 문 그 자체가 될 수도 있다. 열리고 닫히는 경계, 누군가의 통과를 허락하거나 막는 구조물. 감정도 없이 서 있는 판과 경첩과 잠금장치. 서이언은 자신이 늘 경계를 중시해 왔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을 문처럼 만들고 있는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오만석은 담배를 난간에 비벼 껐다. 도시 아래에서는 여전히 수많은 불빛이 움직이고 있었다.
“나도 한때는 내가 다 처리할 수 있을 줄 알았어. 그게 내 일인 줄 알았고. 근데 오래 보다 보니, 사람들은 막는다고 안 떠나는 게 아니더라. 몸이 남아 있어도 이미 떠난 사람도 많고.”
그는 난간 아래 어둠을 내려다보며 덧붙였다.
“사람은 언젠가 때가 되면 그 스스로가 항거할 수 없는 흐름에 의해 떠밀려가듯 어디론가 이동해. 나는 그것을 도시유랑이라고 부르지.”
그날 이후 며칠 지나 오만석은 자리를 옮겼다. 그의 방은 금세 비워졌고, 책상 위에는 담배 냄새만 희미하게 남았다. 도시 지도도, 오래된 사건 목록도, 낡은 종이컵 자국도 사라졌다. 중앙청사는 새 팀장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사람 하나가 빠진 자리는 늘 그렇듯 서류 두 장과 명패 하나로 정리되었다.
서이언은 여전히 현장에 나갔다. 균열은 계속 생겼고, 그는 계속 닫았다. 폐상가 복도에서, 지하주차장 기둥 옆에서, 강변 산책로의 난간 아래에서, 재개발 예정지 가림막 뒤에서. 어떤 날은 너무 쉬웠고 어떤 날은 간신히 막았다. 보고서에는 늘 마지막 줄이 같았다. 폐쇄 완료. 조치 종료. 추가 관측 예정. 혹은 없음.
그러나 겨울이 깊어 갈수록, 그는 가끔 아주 짧은 순간 멈추는 일이 생겼다. 문고리를 잡기 직전, 결속핀을 던지기 직전, 붕괴 반경을 계산하며 눈을 들기 직전. 그의 머릿속에는 해겸의 마지막 표정보다, 오만석이 옥상에서 말했던 문장이 더 자주 떠올랐다. 몸이 남아 있어도 이미 떠난 사람. 유랑이라는 게 꼭 걷는 건 아니라는 말. 그리고 도시 아래를 흘러가던 무수한 불빛들.
연말의 어느 밤, 그는 다시 제31섹터를 지났다. 주차장은 완성되어 있었고 차들이 몇 대 서 있었다. 흰 차선 위에 차들은 정확히 맞춰 들어가 있었고, 진입 차단기는 일정한 간격으로 오르내렸다. 맞은편 상가에서는 치킨집이 늦게까지 불을 켜 두고 있었고, 배달 기사 둘이 오토바이 옆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모든 것이 정상적이었다. 너무 정상적이어서 오히려 얇아 보였다.
그는 주차장 가장자리에서 멈췄다. 차선 한 칸의 빈자리에 빗물이 얕게 고여 있었다. 그 물 위에 네온사인이 반사되어 흔들렸다. 그리고 아주 잠깐, 그 안에 다른 빛이 겹쳤다. 형광등이 반쯤 켜진 식탁, 컵 두 개, 젖은 우산. 그는 이번에는 눈을 바로 감지 않았다. 조금 더 오래 보았다. 그러자 방은 더 선명해지는 대신, 물결 속으로 미끄러지듯 멀어졌다. 마치 원래부터 닿을 수 없는 깊이에 있었던 것처럼.
서이언은 그제야 눈을 감았다 떴다. 물은 다시 네온사인만 비췄다.
그는 여전히 해겸의 선택을 자유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것은 죽음이었다. 의미를 덧칠해도 바뀌지 않는 죽음. 도시 바깥으로 나가는 문이 아니라, 더 이상 돌아올 수 없는 소실. 그 판단은 지금도 변함없었다.
그런데도 한 가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해겸은 끝내 끌려간 얼굴이 아니었다. 누가 등을 떠밀어 들어간 얼굴도 아니었다. 그 표정에는 도착과 닮은 것이 있었다. 그것이 착각이든 광기든, 혹은 인간이 자기 마지막을 설명하기 위해 끝까지 붙드는 이름이든 간에. 서이언은 그 도착감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목격했다는 사실만은 지울 수 없었다.
그는 주차장을 돌아 나와 큰길로 걸었다. 신호등이 초록으로 바뀌었고 사람들이 한꺼번에 건넜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여자 둘이 웃으며 지나갔고, 중년 남자가 종이봉투를 겨드랑이에 낀 채 발걸음을 재촉했고, 교복 입은 아이 하나가 이어폰을 끼고 고개 숙인 채 걸었다. 그 많은 몸들이 같은 방향으로 흐르다가도 중간에 갈라지고, 다시 다른 곳에서 합쳐졌다. 누구나 집으로 가는 것 같고, 누구나 떠나는 것 같았다. 어느 얼굴도 완전히 멈춘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도시는 정해져 있었다. 도로망도, 건물 번호도, 구획도, 출입 통제도. 그러나 그 안을 걷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이동 중이었다. 주소를 갖고 있지만 안착하지 못한 사람들. 약속된 시간에 출근하고 귀가하면서도 어딘가를 지나치고 있는 사람들. 겉보기에 정착한 세계 위를, 실은 모두가 유랑자의 몸으로 걷고 있었다.
서이언은 횡단보도 한가운데서 잠시 걸음을 늦췄다. 차들이 멈춰 있는 선, 사람들의 발소리, 겨울 외투의 스침, 붉은 후미등, 멀리서 울리는 사이렌. 그 모든 것이 한순간 같은 층에 포개졌다. 그는 문득 생각했다. 자유란 어쩌면 제자리를 지키는 일과 떠나는 일 사이 어느 한쪽만을 뜻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어떤 사람에게는 틀 안에 남아 무너지지 않는 것이 자유이고, 어떤 사람에게는 정해진 좌표를 거부하는 것이 자유일 수 있다. 다만 도시는 그 둘을 동시에 허락하지 않는 방향으로 자꾸 설계된다는 것. 그래서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 떠돌게 된다는 것.
신호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남은 시간이 짧았다. 서이언은 다시 속도를 맞춰 걸었다. 끝까지 건너야 했다. 선은 선이었고, 그는 여전히 선 안에서 걷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만큼은, 길을 다 건너고도 자신이 어디에 도착한 것인지 바로 말할 수 없었다.
돌아가는 길에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은 낮았고, 찢어진 틈은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하나였다. 그 사실은 여전히 중요했다. 그럼에도 도시의 불빛 아래를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모두가 보이지 않는 다른 지도를 각자 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현재의 도로 위를 걷되, 마음속에는 사라진 골목 하나씩을 갖고 사는 사람들. 돌아갈 집이 있으면서도 끝내 도착하지 못하는 사람들. 혹은 도착했다 믿는 순간조차 이미 다른 쪽으로 조금씩 이동 중인 사람들.
그는 중앙청사로 돌아와 마지막 보고서를 정리했다. 사건번호, 섹터, 조치 내용, 잔류파 수치, 종료 시간. 펜 끝이 종이를 긁는 소리는 건조했고 정확했다. 마지막 줄에 그는 익숙한 문장을 적었다.
폐쇄 완료.
그리고 아주 잠깐, 아무도 읽지 않을 여백을 바라보았다.
오만석은 이제 다른 층 어딘가에서 이름을 지우고 있을 것이다. 해겸은 어느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 곳으로 사라졌다. 서이언은 여전히 닫는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셋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도시를 떠돌았다. 하나는 사라짐으로, 하나는 무심함으로, 하나는 질서로.
창밖에서는 밤의 도시가 켜지고 있었다. 동쪽 수처리장의 붉은 불, 고가도로의 연속된 헤드라이트, 변두리 물류단지의 주황등, 아파트 창마다 다른 색의 생활등. 그 빛들은 정해진 자리에서 켜지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자세히 보면 모두 미세하게 흔들리며 흐르고 있었다.
서이언은 그 불빛을 오래 보았다.
도시는 거대한 구조물이고, 표면은 반듯하고, 주소는 정확하다. 그런데도 그 안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론가 향하는 중이다. 머물기 위해 걷고, 걷기 위해 머물고, 떠나지 않기 위해 매일 떠나는 연습을 하는 사람들. 그렇게 보면, 도시는 정착의 장소가 아니라 호흡을 잠시 고르는 장소인지도 모른다.
그는 창문에 비친 자기 얼굴을 보았다. 뒤편 어둠 속에서 아주 짧게 다른 방 하나가 겹쳐지는 것 같았으나, 이번에는 굳이 눈을 감지 않았다. 방은 곧 사라졌다. 사라지지 않더라도 붙잡을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는 알고 있었다. 문을 닫는 사람에게도, 때로는 문 너머를 상상하게 만드는 밤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상상이 사람을 곧장 무너뜨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어쩌면 그 상상 덕분에, 문이면서도 끝내 완전한 문은 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불을 끄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복도 끝 창문 밖으로 도시의 불빛들이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정해진 것처럼 보이는 세계 위를, 오늘도 수많은 유랑자들이 저마다의 속도로 건너가고 있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