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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지층

지층탐사-균열의 발견

by 윤담

그 시절의 나는,
내 안에 무언가가 갈라지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꼈다.
누가 삽을 들고 들어온 것도 아닌데,
내 마음의 밑바닥이 서서히 파이고 있었다.
그것은 조용한 균열,
그러나 명확한 진동이었다.

중학교라는 공간은
지질학자의 현미경 아래 놓인 단면 같았다.
층마다 다른 색, 다른 압력, 다른 냄새가 있었다.
교실의 분필가루는 얇은 퇴적층처럼 쌓였고,
복도의 소음은 침전물처럼 귀에 남았다.
우리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자리에서
조금씩 서로의 층을 밟고 있었다.

그 시절의 나에게 ‘질서’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 존재했다.
누가 힘이 센지,
누가 친구를 지배하는지,
누가 선생님 앞에서 웃고,
누가 뒤에서 욕하는지
그것은 압력과 굴절로 만들어진 사회의 암반이었다.
나는 그 위를 걸으며 자주 미끄러졌다.
어떤 날은 웃음으로,
어떤 날은 침묵으로 버텼다.

복도의 끝에는 금이 간 콘크리트 벽이 있었다.
거기엔 손톱으로 긁은 듯한 낙서가 줄처럼 새겨져 있었다.
‘자유’, ‘지겨워’, ‘죽고 싶다.’
누군가의 절망이 돌 속에 갇혀 있었다.
나는 그 문장들을 천천히 읽었다.
이름 없는 감정들이,
퇴적층의 화석처럼 박혀 있었다.
그 문장들은 교과서보다 진실했다.

점심시간이면 운동장 옆 공터에서
아이들이 모여 담배를 피웠다.
연기가 허공에 쌓이고,
그 아래서 웃음이 터졌다.
그 웃음은 공포와 자부심이 뒤섞인 소리였다.
그들은 어른을 흉내 내며,
사실은 어른보다 더 처절하게 존재하려 했다.
그건 반항이 아니라, 존재의 실험이었다.
나는 멀찍이 서서 그 모습을 보았다.
두려움과 부러움이 한꺼번에 솟구쳤다.
그들의 세계는 뜨거웠고,
내 세계는 여전히 굳어 있었다.

나는 종종 그들과 나 사이의 거리를 생각했다.
같은 학교에 있지만,
다른 지층에 속한 존재들 같았다.
그들은 화산처럼 분출하며 살았고,
나는 지하의 점토처럼 눌려 있었다.
누가 옳은지는 몰랐다.
다만 나는, 스스로를 파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왕따를 당하던 한 친구가 있었다.
그는 말을 더듬었고,
항상 구석에서 도시락을 먹었다.
누군가가 그 도시락을 엎었을 때,
교실은 잠시 조용해졌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던 듯 수업이 시작됐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의 침묵이 내 안의 지층을 크게 흔들었다.
양심은 마그마처럼 끓었지만,
입은 돌처럼 굳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인간의 도덕은 퇴적의 결과라는 걸.
우리는 정의를 배우기 전에,
침묵을 먼저 배운다.

방과 후, 거리를 걷던 기억이 있다.
하늘은 낮게 깔리고,
전봇대 위의 전선이 바람에 흔들렸다.
그 아래서 친구들이 오토바이를 몰았다.
머플러의 열기가 공기를 찢었다.
그 냄새는 아스팔트와 철, 그리고 청춘의 냄새였다.
그들은 세상을 향해 달리고 있었지만,
실은 도망치고 있었다.
나 역시 그 냄새를 맡으며,
어딘가로 달리고 싶었다.
단 한 번이라도, 내 뜻대로.

집에 돌아와 거울을 보면
피부 밑에서 또 하나의 나가 자라고 있었다.
눈빛은 더 어두워졌고,
표정은 스스로의 그림자를 닮아갔다.
나는 그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넌 누구냐.”
대답은 없었다.
다만, 그 침묵이
이 시기의 모든 진실을 대신했다.

그해 여름, 나는 일기장을 버리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을 문장들.
단어들은 내 안의 퇴적물을 파내는 삽이었다.
문장을 하나 쓸 때마다,
내 속의 돌조각이 조금씩 드러났다.
어쩌면 나는 글을 쓰는 게 아니라,
지층을 탐사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속에는 어린 시절의 모래,
질투의 점토,
후회의 석회질이 층층이 겹쳐 있었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배웠다.
균열은 부끄러운 게 아니라,
생명체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는 걸.
지층은 압력 아래서 단단해지지만,
그 압력의 방향이 너무 오래 지속되면
결국 갈라진다.
나의 사춘기는 바로 그 갈라짐의 시기였다.
나는 스스로의 결을 깨뜨리며
성장의 형태를 배웠다.

이제 와 돌아보면,
그 시절은 내 인생의 단층선을 따라
불안정하게 빛나고 있다.
그 위로 새로운 층들이 덮였지만,
때때로 그 균열은 꿈속에서도 들린다.
금이 간 돌 속에서 새어 나오는 바람처럼,
아직도 그 시절의 열기가 내 안을 통과한다.

세 번째 지층은
불안과 저항, 부끄러움의 혼합물이었다.
그건 유년의 따뜻함이 식고,
성인의 냉기가 스며드는 경계였다.
나는 그곳에서 나 자신을 처음으로 발견했다.
아름답지 않은 형태로,
그러나 진짜로 존재하는 나로.

그리고 지금, 나는 그 지층 위에 산다.
그 균열을 덮지 않는다.
오히려 그 틈새로 들어오는 바람을 믿는다.
그 바람은 오래된 나를 식히고,
새로운 나를 다시 단단하게 만든다.
삶은 그렇게 균열 위에서 자란다.
그 틈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의 나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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