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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지층

지층탐사-시작지점

by 윤담

아이를 보고 있으면,
나는 종종 멈추게 된다.
그는 어떤 날엔 놀랍도록 이기적이고,
또 어떤 날엔 이유 없이 이타적이다.
자신의 과자를 친구에게 건네다가
이내 다시 빼앗으며 울음을 터뜨린다.
햇빛에 녹은 과자의 단내가
공기 속에 묻어 있었다.
바닥에는 부서진 과자 부스러기가 흩어져 있었고,
그는 그 조각들을 바라보다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순간, 나는 한 인간이
세상을 배우는 과정을 본다.

그 행동은 탐욕이 아니라,
존재의 연습이다.
그는 아직 ‘나’와 ‘너’의 경계를 배우는 중이다.
무언가를 함께 나눈다는 건,
자신이 줄어드는 일임을 아직 모른다.
그러나 그 모름 속에야말로
인간의 첫 순진함이 깃든다.
그 무지를 통해
조금씩 자신을 만들어간다.
나눔은 의식보다 먼저,
손끝의 온도로 배운다.
그가 친구의 손에 닿을 때마다
세상은 아주 조금 더 확장된다.

잠시, 그는 멈춰 섰다.
손에 쥔 과자를 내려다보며
아무 말 없이 바라본다.
그 짧은 침묵이 오히려 배움이었다.
공기에는 미세한 먼지가 부유했고,
그 빛의 입자들이 아이의 머리카락 위에서
작게 흔들렸다.
한낮의 열기가 아직 식지 않은 시간,
그의 눈동자엔 햇빛이 잔잔히 스며 있었다.
인간은 이런 고요 속에서 자란다.
가르침이 아니라, 느려지는 순간 속에서.
침묵이 언어보다 먼저 마음의 형태를 만든다.

도덕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다.
시간의 압력 속에서 퇴적되는 것이다.
기쁨은 얇게, 상실은 깊게,
그리고 사랑은 가장 오래된 온도로 새겨진다.
하루하루가 그에게 새로운 결로 눌린다.
부모의 표정, 목소리의 떨림,
심지어 말하지 못한 망설임까지도
그의 마음 안쪽 벽에 이슬처럼 맺힌다.
그 결이 반복되어
하나의 ‘성격’, 하나의 ‘윤리’가 만들어진다.
윤리란 결국, 배움의 기억이다.
사람은 자신이 받은 온도를
다른 이에게 전하며 자란다.

나는 그를 보며 오래된 나를 떠올린다.
나는 어떤 네 살이었을까.
기억은 희미하지만,
나는 조금 소심하고, 그러나 욕심 많았던 아이였다.
장난감 하나를 놓고 친구와 실랑이를 벌이다가
집으로 돌아와 아무도 없는 방에서
몰래 울곤 했다.
문틈 사이로 저녁빛이 들어와
내 손등 위를 스치던 그 장면이 아직도 남아 있다.
무언가를 얻으면 잃을까 봐 불안했고,
누군가 웃어주면 그 웃음이 내 것인 줄 알았다.
그때의 나는 세상을 사랑하기보다
세상에 붙잡히는 법을 먼저 배웠다.
사랑은 내게 주어지는 게 아니라,
붙잡아야 하는 것이라 믿었다.

이제 생각해보면,
그것이 나의 첫 번째 지층이었다.
소유와 결핍이 뒤섞여 굳어버린 층.
어쩌면 우리는 모두 그 위에 서 있다.
누구도 완전히 새로운 땅 위에서 자라지 않는다.
성장은 새로운 층을 쌓는 일이 아니라,
그때의 자신과 화해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성숙이란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그 표면을 부드럽게 닦아내는 일이다.
거기엔 여전히
어린 시절의 손자국이 남아 있다.

도덕이란 완성된 규범이 아니라,
시간이 덮어온 감정의 결을 읽어내는 해석력이다.
우리가 조금씩 성숙해진다는 것은
그 결을 다시 더듬어보는 일,
그 안에서 타인을 이해하게 되는 일이다.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결국 자신 안의 아이를 이해하는 일이다.
사랑이란 성인이 되어서도
아이의 시선을 잃지 않는 감각이다.

언젠가 내 아이도 이 시절을 잊을 것이다.
하지만 그 표정과 울음,
그리고 한 번 망설였던 순간은
그의 마음 어딘가에 여전히 눌려 있을 것이다.
그는 자라서 또 다른 삶을 살겠지만,
그 아래에는 언제나
이기적 네 살과 이타적 네 살이 겹쳐 있을 것이다.
사람은 자라면서 변하지만,
그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잊히지 않는 것들이다.

그날 저녁,
놀이터엔 아직 햇빛이 조금 남아 있었다.
붉은 금속 그네에 손바닥 자국이 반짝였고,
바닥의 모래는 하루의 열을 품은 채
느리게 식어가고 있었다.
아이는 모래 위에 손자국을 남겼다.
손가락 사이로 미세한 입자들이 흘러내렸고,
그의 숨결이 그 위를 스쳤다.
모래는 곧 바람에 지워졌지만,
그의 마음엔 또 하나의 층이 생겨 있었다.
나는 그 장면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우리의 삶은 결국,
지워지고 남는 것들의 공존으로 완성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불완전함이라는 것을.
삶은 완성되지 않는다.
다만 조금씩 투명해질 뿐이다.
그 투명함이야말로,
우리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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