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삶의 지층은 단순한 퇴적이 아니다.
그것은 물리적 압력의 결과가 아니라,
시간과 감정이 서로를 관통하며 남긴
비가역적 흔적의 총합이다.
지질학에서 한 시대의 암석층은
그 시대의 대기 조성, 생태, 그리고 침묵의 시간을 품는다.
인간의 내면 또한 이와 유사하다.
감정은 단절되지 않고,
퇴적된 기억의 압축 속에서
형태를 바꾸며 존재한다.
우리가 ‘지금의 나’라고 부르는 것은
결국 수많은 감정적 지층의 단면일 뿐이다.
그렇다면 인간의 시간은 무엇으로 구성되는가.
그것은 선형의 연속이 아니라,
누적과 침전, 그리고 간헐적 폭발의 연쇄다.
기쁨은 얇은 층으로 쌓이고,
상실은 깊은 균열로 새겨진다.
관계는 그 사이를 메우며 새로운 퇴적면을 만든다.
이렇듯 삶은 평탄하지 않다.
그 굴곡이야말로 인간이라는 지질학적 개체의
고유한 형상이다.
우리는 흔히 기억을 ‘재현 가능한 것’으로 착각하지만,
사실 기억은 언제나 퇴적된 시간의 왜곡이다.
과거는 수정되지 않는다.
다만, 다시 호출될 때마다
새로운 맥락의 빛을 입는다.
그 빛의 산란 속에서
우리는 ‘나’를 재해석하며 존재를 연장한다.
삶의 각 층에는 감정의 화석이 남는다.
누군가의 웃음, 누군가의 이별,
그 모든 것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압축되어, 침묵의 형태로 존재한다.
그리고 언젠가 어떤 계기로 다시 드러난다.
문득 떠오른 향기나 낡은 노래 한 구절이
그 압력을 풀어내는 순간,
시간은 방향을 잃고
기억은 현재를 잠식한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안다.
인간은 시간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시간 속에 퇴적되는 존재임을.
나는 사람을 캐릭터라 부른다.
그는 단순한 서사적 주체가 아니라,
하나의 시간적 구조체(temporal structure)다.
그의 몸과 언어, 표정과 침묵은
모두 그가 살아온 층위의 기록이다.
인간은 매 순간 퇴적을 지속하며,
자신의 내면을 하나의 지층으로 확장시킨다.
그 축적은 불완전하지만,
그 불완전성 자체가
존재의 유일한 아름다움이다.
삶은 위로 쌓이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스며드는 일이다.
그 스며듦 속에서 감정은 광물화되고,
사랑은 온도의 결로 남는다.
지층은 단단해지면서 동시에 투명해진다.
그 투명함이야말로,
우리가 세계와 접촉하는 방식이다.
이제 나는 내 삶의 단면을 파본다.
거기엔 오래된 슬픔의 석영과,
한때의 웃음이 남긴 얇은 필름이 있다.
그 아래엔 아직 해석되지 않은 시간,
그리고 여전히 움직이는 나의 진화가 있다.
삶은 끝나지 않은 퇴적이다.
그것은 계속 내려가면서,
또다시 나를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