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층탐사-날 것의 윤리와 질서
학교라는 세계는 나에게 두 번째 지층이었다.
그곳은 내가 처음으로 ‘우리’라는 단어를 배운 장소였다.
그 전까지 세상은 나와 가족, 그리고 몇 개의 장난감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교실 문을 열자, 세상은 갑자기 복잡해졌다.
이름이 다르고, 목소리가 다르고, 표정이 다른 아이들이
하루라는 단위를 함께 살아가는 공간.
그때부터 나는 세상을 ‘관계’로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의 공기는 늘 분필 냄새와 먼지로 가득했다.
칠판 위에서 글씨가 사라질 때마다
하얀 가루가 공중에 흩어졌다.
그 작은 입자들이 교실의 모든 숨결을 감싸고 있었다.
아침 조회 시간의 경례, 점심시간의 소란,
운동장 위로 쏟아지는 햇빛.
그 모든 순간이 하나의 ‘질서’로 나를 훈련시켰다.
나는 비교적 조용한 아이였다.
하지만 조용함은 언제나 안전을 보장하지 않았다.
조용하다는 이유로 무시받거나,
참는다는 이유로 더 많은 짐을 떠안는 날도 있었다.
세상은 침묵을 미덕이라 가르쳤지만,
아이들의 세계는 그렇지 않았다.
말을 해야 존재했고,
웃음을 만들어야 받아들여졌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자연스러운 나’와 ‘보여지는 나’ 사이의 틈을 배웠다.
점심시간, 친구들과 밥을 먹던 기억이 있다.
한 아이가 김을 많이 가져왔다.
모두가 그 아이를 부러워했다.
그때 나는 이상한 감정이 들었다.
부러움이 아니라,
‘그 아이가 김을 나눠주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이었다.
그건 아주 작고 투명한 질투였다.
그 순간 나는 스스로 놀랐다.
이기심이란 내가 싫어하던 성질인데,
어느새 그게 내 안에 있었다.
그때 느낀 부끄러움이 내 마음의 표면에 얇게 남았다.
그게 바로 두 번째 지층의 시작이었다.
운동장에서는 언제나 편이 갈렸다.
달리기를 잘하는 아이가 인기를 독차지했고,
말이 빠른 아이가 분위기를 주도했다.
나는 둘 다 아니었다.
그저 눈치를 보며 줄을 섰다.
누가 이기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지면 마음이 쓰렸다.
그 감정이 무엇인지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나도 누군가가 되고 싶다’는 원초적인 욕망이었다.
그 욕망은 나를 세상으로 밀어내는 동시에,
나를 가장 멀리 고립시켰다.
교실 안에는 늘 몇몇 규칙이 있었다.
“손들고 말하기.”
“친구 괴롭히지 않기.”
“숙제는 스스로 하기.”
하지만 어른들이 세운 그 규칙은
아이들 사이의 질서와는 달랐다.
진짜 규칙은 눈빛으로 전해졌다.
누구와 짝이 되는지,
누구와는 말을 섞지 말아야 하는지,
누가 웃음을 주도하는지.
나는 그 규칙을 어기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 노력은 곧 나의 성격이 되었다.
그리고 그 성격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나를 지배한다.
어느 날, 미술 시간에 ‘가족을 그리라’는 숙제가 나왔다.
모두가 알록달록한 크레파스를 꺼냈다.
나는 검은색으로만 밑그림을 그렸다.
선생님이 다가와 물었다.
“왜 색을 안 쓰니?”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단지, 그때의 마음이 복잡했다.
행복을 그려야 할 것 같지만
그림 속의 웃음이 너무 가짜 같았다.
그래서 나는 색을 버리고, 선만 남겼다.
그 선이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세상에 그어본 첫 번째 경계였다.
그 경계는 나를 보호했지만, 동시에 나를 가두었다.
시간이 지나며 나는 조금씩 사회의 얼굴을 익혔다.
‘미안합니다’를 빨리 말하는 법,
억울해도 웃는 법,
칭찬을 받을 때 겸손하게 손사래 치는 법.
그 모든 제스처가 하나의 언어였다.
나는 그 언어로 세상과 대화했고,
그 대화 속에서 조금씩 나를 잃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잃음이 나를 성장시켰다.
세상을 이해한다는 건
언제나 조금은 자신을 잃는 일이라는 걸
그때는 몰랐다.
가끔은 그 시절의 꿈을 꾼다.
여름의 운동장,
누군가의 외침,
휘날리던 흙먼지와 땀 냄새.
그 한가운데서 나는 늘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이기적이지도, 이타적이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저 ‘어울리는 법’을 배우려는 얼굴로.
그 얼굴이 지금의 나와 겹칠 때가 있다.
나는 여전히 세상의 온도를 재며 살아가고 있다.
다만, 이제는 조금 더 느린 속도로.
인간의 두 번째 지층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타인의 시선 속에서 다듬어지고,
비교 속에서 굳어지고,
침묵 속에서 단단해진다.
그 위에 새로운 관계들이 쌓인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여전히
첫 번째 지층의 온기가 남아 있다.
그 온기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한,
우리는 다시 배우고, 다시 따뜻해질 수 있다.
그때의 나는 몰랐다.
어린 시절의 비교와 부끄러움이
훗날 인간을 더 깊게 이해하게 만드는 밑바탕이 될 줄을.
그게 바로 ‘사회의 얼굴’이었다.
세상에 맞추기 위해 만들어낸 가면이면서도,
누군가에게 미소를 건네는 유일한 통로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얼굴을
오늘도 조금씩 벗기며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