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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기철 James Ohn Oct 10. 2021

세종은 왜 한글을 만들었을 까?

한글날에 지음하여


위키 백과 세종대왕


책 본편에서 다룬 조선사 중 관심이 간 이야기는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와 평가에 대한 이야기다. 우리는 세종대왕이 까막눈인 백성들을 위해서 양반들의 반대와 방해를 무릅쓰고, 힘겹게 한글을 만들어 널리 백성들의 삶을 이롭게 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단박에 조선사>가 던지는 해설은 놀랍다.


 

애초에 세종이 한자를 한글로 대체하려고 한 적은 없어요. 한자를 사용하는 데 여러 어려움이 있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이두나 향찰 같이 한자의 음과 훈을 사용하여 우리말을 표현하는 방법이 일반적이었는데, 이것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문자가 등장한 거죠. … (중략) 수만 자의 한자를 익힌 사람은 지극히 소수였어요. 하급 관료들조차 이두가 아니면 명령을 이해하지 못했고, 백성은 대부분 까막눈이었어요. 여기에 여성들가지 고려한다면 한글의 등장이 양반 관료에게 피해를 준다? 그럴 수 없다는 사실을 양반 관료들이 이해하는 데는 결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답니다. '남성-양반-관료'가 주도하며 '하급 관료-일반 백성-여성'이 이를 따르는 구조처럼 한자의 '보완재'로 한글이 존재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돼요. (본문 80)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이 오로지 평민을 위해서 만든 문자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한글의 탄생 배경에는 조금 더 효율적으로 관료들에게 명령을 전달하고, 정치계통을 이끌어나가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는 걸 윗글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 세종대왕이 오로지 이타적인 이유로 만들었던 게 아닌 거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498960


현대어(훈민정음언해 서문 1459)

나라의 말이
중국과 달라
한문·한자와 서로 통하지 아니하므로
이런 까닭으로 어리석은 백성이 이르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끝내 제 뜻을 능히 펴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이를 위해 불쌍히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쉬이 익혀 날마다 씀에 편안케 하고자 할 따름이다.

namu.wiki



용산 국립박불관 옆에 한글 박물관이 있다. 우리부부는 4-5년전에 이곳을 방문 했다. 마침 박불관 해설자가 중학교 학생들에게 벽에 걸린 전시물을 설명하고 있었다. 한글에 대한 자랑거리는 무궁무진 하다. 특히 얼마나 과학적인 문자이며 배우기 쉽고 여러나라의 언어를 표기 할 수 있는 세계에서 보기드문 글자이다. 설명이 다 끝나고 학생들의 질문을 받는 시간이었다. 나는 "한글이 언제 나라의 공식문자가 되었지요?"하고 물었다. 

해설자(docent)가 알고 있는지 궁금 했기 때문이었다. 예상한 대로 대답은 "모른다" 였다. 


1443년에 한글이 만들어졌지만 한글이 조선의 공식문자가 된것은 450년 후인 1894년이었다. 한글이 세계 제일가는 문자 임에는 틀림 없다. 그런데 이런 문자를 가지고 있었던 민족이 나라없는 신세가 되었던 것은 무슨 변고 인가? 만약 세종이 한문을 버리고 한글을 공식문자로 채택 했다면 조선이 일본에게 먹히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우리민족은 오랜동안 무엇인가를 쓸 때는 중국사람들과 똑 같이 썼다. 영어로 써놓은 글을 영문이라고 한다. 중국어로 써놓은 글이 한문이다. 영문을 읽을 때 우리는 본토 사람들과 또 같이 발음 하려고 애을 쓴다. 아마 그 옛날에 한문을 중국사람들과 똑 같이 읽으려고 노력 했을 것이다. 소리를 그대로 적을 수 있는 기호가 없는 세상에 중국말 발음을 모든 사람이 똑 같이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소통이 잘 될리가 없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던 가?  발음기호 처럼 한글로 토를 달아 놓으면 같은 글자를 모두 똑같이 읽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문을 사용한 이래 우리민족은 한문을 같은 발음으로 읽기 위한 노력을 부단히 했을 것이다. 아마 세종대왕은 민간에서 통용되고 있는 발음기호 같은 표기 방법을 총 망라 하여 한글을 만들어 냈지 않았 나 추측해 본다. 


한글을 한문과 섞어 쓰면 우리말 하는 것처럼 문장을 만들 수 있다. 중국말을 배우지 않아도 한자만 익히면 우리말 하는 것처럼 글을 쓸 수 있다. 요지음 사람들이 영어단어를 섞어서 우리말을 하는 것과 대동소이한 현상이다. 


한문을 배울 기회가 없는 사람들은 한글만 배워서 서로 소통 했을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일부러 백성들에게 한글을 적극적으로 가르쳐 주지 않았다. 백성들이 글을 깨우치면 왕실과 양반 계급이 특권을 누리기가 힘들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마 세종이 한글을 만든 목적은 한문을 사용하여 국민과 소통하는 데 좀 더 편리하게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중국말을 그대로 써놓아서는 나라를 다스리든 데 무척 불편 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하명을 한문으로 써 놓으면 말단 관리들 조차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한다. 


이성계는 위화도 회군을 단행하여 구테타에 성공 했다. 정권을 잡고 나서 사대를 내새워 명나라 황제의 인준을 받아 왕의 지휘를 확보 했다. 이를 책봉이라고 한다. 말하자 면 명나라를 섬길 태니 본인을 조선의 왕으로 인정하고 조공을 바치도록 해달라는 거래 였다. 나라의 권리를 반쯤 양보하고 자신과 자손만대의 지위를 확보 한 것이다. 세종은 명나라 섬기기를  확고히 한 임금 이다. 이런 임금이 대국의 문자인 한문을 버리고 한글을 나라 글자로 했을 리가 없다. 


조선은 애초부터 독립국이기를 거부한 나라 였다. 대국에 의지 하여 왕과 집권세력이 안정적으로 특권을 유지 했다. 이 들에게는 국가의 장래나 백성들의 삶은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중국에 두 제국이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동안 조선은 반 독립국가로 명맥을 유지 했다. 한글은 돼지 앞에 진주 였다. 


외세에 의지하여 500년동안 명맥을 유지 했던 조선은 썩을 대로 썩어서 일본의 먹이감이 되었다. 왕실은 물론 백성들은 나라 없는 신세가 되었다. 35년동안 일본치하에 있다가 일본에게서 해방이 되었다고 했지만 북은 소련이 남은 미국이 점령 했다. 그리고 그들은 북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남에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놓고 떠났다. 오늘날 한국사람들은 외세에 의존하던 조선의 신세가 어떻게 되었는 지 꼭 기억 해야 한다. 명나라의 대항마가 미국이 아닌지 항상 살펴야 한다. 한글은 대한민국이 홀로 서는 데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인터넽 세계 강국이 된 것도 한글의 힘이다. 한글은 한국사람들의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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