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자두와 동네 길냥이들
살구가 떠난 지 2달이 지났고 혹독했던 여름도 가고 있다. 이 애들이 여기로 와서 두 번째 여름을 지냈고 그새 살구는 세상을 떠났고 혼자 남은 자두는 아직은 건강하게 씩씩하게 잘 지내고 있다.
살이 빠지고 털갈이를 보기 흉하게 해 외모가 나빠지고 있어 병원에 갔는데 일단 다행히도 딱히 문제가 되는 곳은 없어 보인다고 했다. 일단 노령견이니 종합검사를 해보자고 해서 몇 가지 검사를 했다. 다행히도 노령견 치고는 다 건강하다고 한다. 심장검사도 따로 했는데 심장도 건강하다고.... 물론 노령견이니 언제 나빠질지 모른다는 단서를 달고서... 말이다. 아무튼 너무나 다행이었다. 그렇게 올여름 살구가 떠나고 한동안 우울해하던 자두는 신기하게도 동네 길냥이 호피가 들어온 후 자두에게 활력(?)이 되살아 난 듯했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이 이야길 의사선생님께 했더니 드문 일이긴 하지만 고양이든 다른 동물 때문에 활력이 생기기도 한다고... 그러나 평소 자두는 산책 시 만나는 길냥이만 보면 길길이 날뛰고 호전적이었는데 이 작은 호피가 들어와 진을 치고(?) 있어도 공격하지 않는 게 너무나 신기한 일이었다.
이 애 호피가 언제부턴가 여기로 들어와 테이블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마도 살구가 떠나고 얼마 되지
않을 때즈음인 것 같다. 호피는 처음엔 자두 집 지붕 위에서 이곳을 살피고 내가 간식을 주자 이곳 테이블 위까지 올라왔는데 자두는 처음엔 아주 난리난 반응이었다.
낑낑거리고 공격할 것처럼 하더니 정작 테이블 위로 온 이 작은 애를 보더니 가까이가 냄새를 맡고 싶어 했다.
신기하게 덥석 물거나 공격을 하는 게 아니라 다가가 냄새를 맡으려 하는 것이다. 호피는 경계는 했지만 피하거나 도망가지는 않았다. 이것도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평소의 자두 태도를 보자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어 버릴 것 같았는데 말이다. 아주 어쩔 줄을 몰라하는 것 같았다. 사람으로 치자면 막내 동생이 태어났는데
서너 살쯤 되는 형이 아기를 보고 어쩔 줄 몰라하는 것처럼...
암튼, 자두는 이 애 호피만 오면 낑낑거리고 어쩔 줄 몰라했다. 아침에 정확하게 이 애가 오는 시간에 자두는 낑낑댔다. 그러다 내가 다가가면 그때는 자두가 테이블 위로 다리를 올리고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다. 내가 나오기 전엔 그냥 테이블주위를 맴돌거나 그냥 바닥에 앉아 있거나 했던 자두가 날 보면 적극적으로 변하기 시작하는데 이게 혹시 동맹공격성일까? 하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일단 공격적인 행동은 하지 않는
것으로 봐서 그냥 나를 보면 더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았다(사실 그것도 이상했다) 신기한 건 호피도 마찬가지다
내가 손을 뻗어 만지려 하면 냥펀치로 할퀴어 나는 손에 상처가 많은데 정작 자두에겐 냥펀치를 그다지 날리지 않는 것이다. 초기 몇 번 자두의 얼굴이 가까이 오자 냥펀치를 날리긴 했으나 요즈음엔 그냥 둘이 서로
냄새도 맡는 것 같다. 그렇게 둘인 친구 아닌 친구가 된 것 같고... 테이블 위에서 호피는 뒹굴고 먹을 걸 먹고 쉬고.. 자기 집처럼 행동을 했다. 다만 턱시도가 공격을 해온 이후에는 자두나 내가 있을 때만 테이블 위에
있고 내가 자두를 데리고 나가면 따라서 나왔다가 산책을 하고 다시 들어오면 어디 있다 왔는지 다시 호피는 저 테이블 위로 올라왔다. 그렇게 저 자린 호피의 자리가 된듯했다.
일단 호피는 자두가 냄새 맡고 자기를 핥는 것까지는 봐주는 것 같다.(그것도 이상하다) 그런데 자두가 발로 건드리면 그건 못 참고 하악질을 하거나 정색을 한다. 더 웃기는 건 호피가 발로 자두를 자극하는 것이다.
그러고는 도망을 간다. 그럼 자두는 그런 호피를 쫓아다니고... 마치 연인들이 " 나 잡아 봐라~' 하듯 말이다. 이젠 둘이 '호형호제' 하는 것 같다. 또는 '연인 놀이' 하는것 같기도 하고....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자두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순간 밖에 있던 턱시도가 테이블 위로 와 호피를 공격했고
놀란 호피는 도망을 갔다. 나와 자두가 있던 시간에 밖에서 노리던 턱시도가 이 순간을 놓치지 않고 공격한
것이었다. 그 후엔 나도 있고 자두도 있는 시간에 한 번 더 호피를 공격한 적이 있었다.
그렇게 턱시도조차 이 테이블 위에 올라와 자릴 잡자 자두는 어이가 없어했지만 이 덩치 큰 바보는 턱시도에게도 관심을 보이고 주변을 맴돌았다. 턱시도는 여유 있게 테이블 위에 자릴 잡았다.
자두는 사실 턱시도와는 지난겨울부터 인사를 한 사이였다. 지난겨울 처음 우리 집으로 와 밥을 먹고 현관 앞에서 진을 치고 살았고 점점 자두 우리 근처에 와서 자두와 얼굴을 익히고 있던 사이였다. 다만 우리 밖에서만 있었고 우리 안으로는 들어와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런 턱시도가 자두 우리로 들어온 것이었다.
이것도 신기한 일이었다.
평소 턱시도는 자두 우릴 맴돌며 마치 약을 올리듯 했고 그때마다 자두는 컹컹 짖거나 우리 밖의 턱시도를
공격하려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 턱시도가 떡하니 안으로 들어와 자릴 잡고 누웠으니...
어쨌든 덩치 큰 자두는 이제 호피, 턱시도 등 동네 길냥이들에게 자릴 내주고 호구가 되어가는 것 같았다.
이러다 여기 오는 애들이 다 자두 집에 드나드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자두는 이 동네 길냥이들한테 마음씨 좋은 늙은 언니나 누나로 통하게 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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