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아이들과의 추억- 살구
이 애들은 서로 행동을 모방하기도 하는데 대개는 자두가 내게 하는 행동을 살구가 따라 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서열이 높은 애의 행동을 낮은 애가 따라 하는 것 같았다. 잘 때 이러고 자는 경우, 자두가 자릴 잡고 누우면 살구는 뒤에 따라 눕기도 하지만 절대 붙어서 자는 경우는 없다. 절대로....
질투심은 얼마나 강한지 살구는 자두에게 내가 하는 걸 자기에게도 해달라고 하고 무시하면 내 품으로 파고들며 요구를 하기도 한다. 대개는 자두가 먼저 내게 와서 머릴 비비고 만져달라고 하고 그다음
살구가 와서 내 품에 머리를 박고 비비거나 주둥이를 내게 비빈다.
자기의 체취를 내게 묻히려는 행동 같았다.
자두가 하면 자기도 와서 꼭 그렇게 자기 냄새를 내게 묻힌다.
살구는 소심하고 겁이 많아서 산책 시 만나는 사람들을 경계하거나 무서워했다. 또한 상대방 개가
공격성을 보이면 얘는 벌써 무서워하고 겁을 먹는데 길 가다 만난 개와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면 자두는 싸우려 덤비지만 얘는 피하고 만다.
진도견으로써 가문의 먹칠을 하는 애다.
다만 산에서 만나는 산짐승에는 반응을 하는데 자두만큼 심하게 반응하지 않는다. 어차피 자기가 잡을 수 없는 애들이란 걸 아는 건지(나무 위 청설모,
새들) 자두가 공격하려고 으르렁 거리면 살구는
그 광경을 구경하듯 처다 보고만 있다. 고라니를
만났을 때는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는데
자두만큼 맹렬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쥐가 나타나면 아주 광분하여 둘이 난리가 나고 결국 잡아 내고
마는데 이 경우에도 자두에게 물릴 때가 있다.
둘이 우당탕탕 쥐 잡기 전쟁을 벌이다 둘이 부딪히기라도 하거나 자두가 자리 잡고 있는데 살구가 같이 사냥하려 머릴 디밀면 자두가 물어 버리기도 한다. 그러한 살구는 한때는 가출을 일삼아 속을 썩였는데 정말 신출귀몰하여 어떤 틈이라도 있으면 그곳으로 탈출하거나 높이가 그리 높지 않은 울타리의 경우 가볍게 뛰어넘어 탈출을 했다. 내 가슴 높이 정도되는 곳은 가볍게 뛰 오르거나 넘어 다녔다
먹는 속도에서도 엄청난 차이가 났는데 개 껌을
주면 살구는 이렇게 앞발로 잡고 뜯어먹듯 하는데 자두는 일단 와그작와그작 씹어먹거나 여러 동강을 내서 몇 번 씹으면 끝이다. 반면 살구는 얌전히 앞발을 모아 그 사이에 간식을 끼고 베어 먹듯, 또는
갉아먹듯 하니 자두보다 몇 배는 느리고 어릴 땐
그래서 자두에게 간식도 다 뺏기기도 했다.
그 후 나는 간식을 줄 때는 분리해서 주거나 내가
가운데 서고 둘을 앉히고 기다리게 한 다음 따로
주면 자두가 먼저 먹고도 뺏어먹지는 않았다.
여기서도 루틴이 있는데 꼭 나를 중간에 두고 자두는 오른쪽, 살구는 왼쪽에서 간식을 받아먹었다.
자리가 그렇게 잡히고 난 후에는 자기들이 알아서 나를 사이에 두고 그렇게 앉아 기다렸다.
또한 머리는 자두가 더 좋은 것 같았고 이건 내 말을 알아듣는 것에 대해 그렇다는 것인데 자두가 알아듣는 단어의 수가 훨씬 더 많았고 그런 자두의 행동을 살구가 따라 하게 되었고 자두는 내 표정이나 내 상태도 읽어내는 것 같았다. 제일 먼저 '앉아', '기다려', '먹어', '안돼' 등을 기본으로 익혔고 그 후 자두는 학습이 좀 더 쉽게 이루어졌다. 먹을 것에 집착하는 애들이 훈련이 더 잘된다는데 아마도 그래서 자두가 더 소위 말하는 길들이기가 더 쉬운 게 아닐까 했다.
소심한 살구는 자두에게 물리는 날이면 안쓰러워
안에 들여놓기도 했다. 일단 덩치에서 밀리니 그렇겠지만 왜 물릴 때 도망가지 않고 악착같이 덤벼서 더 물리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나중엔 자두는 살구를 제압하고 밑에 깔고 위에서 누르고 있으면서 싸움을 끝냈다. 젊을 땐 피를 보고야
마는 싸움을 했는데 늙어가면서는 살구가 배를 보이고 누워있고 자두가 살구 위에서 제압을 하고 몇 분 간 있다가 끝이 났고 또 싸움이 날 것 같으면 내가 자릴 피하면 쉽게 끝이 나기도 했다. 살구에게 안타까운 일이지만 내가 있어 더욱 덤비는 것 같아 자릴 피하는 것인데 진짜 그러면 쉽게 끝이 났다.
살구 편을 들어줄 내가 없어서 그런 것 같았다.
나름의 방법인데 이게 살구에겐 너무나 미안한 방법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자두를 두들겨 패면서 끝이 나야 했다.
살구는 소심하다 보니 민감해서 작은 소리에도 놀라고 긴장하고 짖기도 했다. 택배아저씨, 지나가는 사람등에도 반응을 했고 자두는 사람에 대한 반응은 거의 없었다. 웃기는 건 대문 밖의 사람에 대해 짖거나 경계하다가도 안에 들어오면 짖지 않고 외려 꼬리를 치거나 가서 핥으려 한다는 것이다. 담장이라는 경계만 넘으면 애들이 타인으로 인식을 안 하는 것 같았다. 특히 자두는 집에 오는 사람들에게 너무나 친숙하게 다가가고 핥고 꼬리를 쳐서 사람들이 다 놀라고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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